'미국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다시 내려질 수도 있는 이번 재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 즉시 서명한 '출생 시민권 금지' 행정명령에 소송이 제기되면서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역대 현직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대법원의 구두 변론이 진행되는 법정에 자리한 채 방청석 맨 앞줄에서 재판을 지켜봤습니다.
재판이 갖는 정치적 함의와 파장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관들과 정부 측이 헌법 해석을 놓고 남북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치열한 논리 대결을 펼친 이번 재판 결과는 6월 말 또는 7월 초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북전쟁 후 개정된 미국 헌법의 출생 시민권, 부모 중심? 자녀 중심?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에 귀화했고, 미국의 관할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과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라는 내용으로, 1868년 남북전쟁 직후 수정헌법에 들어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헌법이 수정된 역사적 배경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해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인데, 이를 현대에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출생 시민권은 터무니없이 자녀가 미국 시민이 되기를 바라는 중국이나 나머지 지역의 부자들을 위한 게 아니라 노예들의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거나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자녀에게는 출생 시민권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지난해 1월 서명했습니다.
이는 그동안의 정책이나 법 해석을 뒤집는 것이었고, 특히 서명 이후 미국 내 이민자 커뮤니티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결국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이끄는 22개 주와 워싱턴 DC가 행정명령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하급심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준 상황입니다.
부모가 설령 불법 이민자더라도 자녀가 미국의 관할 구역에서 태어났다면 자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기존의 판례이며, 원고 측 주장이기도 합니다.
이 맥락에서 1952년 제정된 이민·국적법에 '미국에서 태어나고 그 관할에 속하는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됐고, 이는 현재까지 유효합니다.
정부 측 "출산 관광은 문제, 부모의 '정착' 따져야"…대법관들 "이상한 논리"
당시 중국인 부모를 두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웡 킴 아크는 미국 시민권을 인정받았는데, 이는 그의 출생지가 미국일 뿐 아니라 부모가 미국에 합법적으로 '정착'한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에 따라 불법 이민자나 임시 체류자인 부모는 미국에 '정착'한 상태로 볼 수 없으며, 이들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정명령이 당시의 판례를 뒤집는 것은 아니라는 게 사우어 차관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닐 고서치 대법관과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수정헌법 14조가 채택된 19세기 당시 논의를 살펴보면 "그 어떤 논의에도 부모가 언급되지 않는다", "그 논의에서 '정착'도 언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직후 버려져 부모가 확인되지 않는 아기를 예로 들어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사우어 차관의 논리적 허점을 따졌습니다.
사우어 차관은 중국 등 '적대국'의 미국 '출산 관광'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며,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자동 출생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정책적 목표도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세계에서 멍청하게도 출생 시민권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사우어 차관의 논리가 "매우 기이하다"면서 "그것(정책 목표)이 우리가 하는 법적 분석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동의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사우어 차관의 주장이 정책적 측면에서는 "좋은 지적"이라면서도 법원의 역할은 "미국의 역사에 기초한 미국 판례를 갖고 미국 법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법관들과 사우어 차관의 문답을 살펴보면 정부의 패소 가능성이 크며, 정부 입장에선 차후 입법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헌법 위반'보다는' 법률 위반'으로 패소하는 편이 나을 상황이라는 게 미 언론의 분석입니다.
트럼프, 현직 대통령으로 전례 없는 대법 변론 방청…패소 땐 정치적 타격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부과의 근거가 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관련 소송 과정에서 대법원 변론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가 막판에 이를 철회한 바 있습니다.
이 소송에서 대법원은 6대 3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및 펜타닐관세 부과가 위법이라고 지난 2월 판결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마저 등을 돌린 데 '배신감'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판결을 앞두고 "멍청한 판사와 대법관으로는 위대한 나라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례를 깨고 이날 대법원으로 가 변론을 방청한 것은 이번 소송에서도 패소할 경우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해 직접 대법관들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출생 시민권 금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 그리고 '투표 시 유권자 신분증 제시 의무화' 법안(일명 'SAVE' 법안) 추진과 함께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이른바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의 어젠다라는 점에서 트럼프의 이날 '대법원 행차'는 지지층 결집 효과를 노린 '한 수'일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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