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오른쪽 끝)이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사전 브리핑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중동사태발 고유가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高)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20조 원대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내놨습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주요 산업부문별로 공급망 차질이 빚어지는 복합위기에 대한 처방전 격입니다.
신속한 추경 편성으로 전례적인 대외악재의 충격파를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추경으로 올해 성장률에 0.2%포인트(p) 플러스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관건은 유동성이 추가로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점입니다.
정부는 우리 경제의 수요가 공급에 못 미치는 데다, 국채발행 없이 초과세수로만 편성했다는 점에서 물가자극 우려에 선을 긋고 있지만, 가뜩이나 고유가발 인플레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추경발 물가우려를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유가 피해지원' 취지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실상의 '현금' 지급이 추진된다는 점에서 '선거용 추경'이라는 야당의 비판도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오늘(31일) 발표한 '중동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추경안'은 19일 만에 만들어 낸 긴급 처방입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난 27일 사전 브리핑에서 "지금은 선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하루빨리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고 어렵게 되살린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신속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추경안을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
추경안의 기본 뼈대는 '고유가 대응',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등 3대 분야입니다.
정부는 리터당 2천 원을 넘어서는 고유가로 인한 유류비·교통비 부담을 덜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대중교통 환급에 5조 1천억 원을 새로 배정했습니다.
서민층에는 1인당 10만∼60만 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을 편성했습니다.
에너지 취약계층은 에너지바우처 등으로 추가 지원을 합니다.
이같은 '고유가 부담 완화 3대 패키지'에 총 10조 1천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민생 안정과 관련해선 저소득층·소상공인·취약노동자·농어민 등 취약계층을 위한 8천억 원의 재원을 투입합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청년을 위한 예산에도 1조 9천억 원을 추가 편성했습니다.
'쉬었음' 청년을 경제활동인구로 이끌기 위해 'K-뉴딜 아카데미'를 만듭니다.
고유가로 직격탄을 맞는 산업 피해를 줄이는 데 2조 6천억 원이 투입됩니다.
물류 애로 해소를 위한 수출바우처 확대, 수출 정책 금융, 저금리 정책자금, 재생 에너지 전환, 문화산업 육성, 나프타 수입 비용 지원, 석유 비축 물량 확대·인공지능(AI) 전환 속도전 등을 꾀합니다.
이번 추경은 직접 현금 지원을 통한 '경기 보강'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단일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고유가 피해지원금으로, 추경 총액의 약 18%인 4조 8천억 원이 편성됐습니다.
소득 기준 상위 30%를 뺀 나머지 서민층이 대상입니다.
지방일수록, 취약계층일수록 더 많이 지원한다는 기본 골격을 토대로 1인당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60만 원까지 지원합니다.
지난해 소비 진작을 위한 전 국민 민생 회복 소비쿠폰 규모(12조 1천억 원)의 약 40% 수준의 현금이 풀린다는 의미입니다.
박홍근 장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추경을 통해 0.2%p의 성장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추경 사업의 성질별로 정부 지출 승수를 재정경제부와 함께 별도 계산한 결과입니다.
기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중동전쟁의 불확실성 앞에서 큰 충격을 받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중동산 원유 비중 자체가 높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0.4%포인트(p) 끌어내린 상태입니다.
OECD는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9%로 유지했지만, 한국과 유로존(1.2→0.8%)의 성장세를 큰 폭으로 내렸습니다.
정부는 현재 한국 경제가 공급 능력에 비해 수요가 떨어지는 국내총생산(GDP) 갭률 마이너스 상태이기 때문에, 추경으로 수요를 보강하더라도 물가 자극 우려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용범 기획처 예산실장은 "GDP 갭률이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라며 "초과세수로 국채 발행 없이 추경 예산을 편성했다는 점, 취약계층을 타킷 지원하는 점까지 포함한다면 물가 자극 우려는 없다"고 했습니다.
직접 지원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지적에는 "고유가가 특정 계층만 영향을 미치는지, 전 국민에게 골고루 미치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문제"라며 "특정 계층보다는 더 많은 사람에게 지원금을 주는 게 맞지 않느냐는 문제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응 시점은 적절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가뜩이나 물가·환율 상승 압력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상당한 유동성이 시장에 풀린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말하는 0.2%포인트 성장률 상승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물가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지금은 돈을 풀면 안 될 시점인데, 선거를 앞두고 하는 '벚꽃 추경'이라고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재정투입은 환율·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중동전쟁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회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단이니까 더 나쁜 것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어쩌면 병 주고 약 주는 셈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집행하느냐에 따라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오히려 물가 안정 효과를 만들 수도 있다"며 "집행 방식에 있어서 경기 진작 영역에 집중하기보다는 에너지 가격이나 물가 상승 압력 부담 완화에 집중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사진=기획예산처 제공,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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