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펌프 보급률 1위, 노르웨이
앞선 기사에서 영국의 이야기를 전했다. 콘월에서는 가스 배관 없는 마을을 봤고, 런던에서는 난방비 0원 고지서를 확인했다. 다만 영국의 겨울은 영상 5도 안팎이다. 한국의 겨울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같은 기술이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으러 노르웨이로 갔다.
노르웨이는 히트펌프 보급률 세계 1위 국가다. 전체 가구의 60% 이상이 히트펌프로 난방한다. 1천 가구당 설치 대수는 632대. 2위 핀란드(524대), 3위 스웨덴(496대)을 크게 앞선다. (EHPA 2025 보고서 2024년 기준)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7도에 달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수치가 가능할까. 오슬로 메트로폴리탄 대학교(OsloMet)의 피터 쉴트(Peter G. Schild) 교수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히트펌프를 쓰는 게 아니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히트펌프는 매우 경제적이고 투자 회수 기간이 짧습니다. 구매한 전기보다 3배 많은 열을 만들어내니까요."
같은 비용으로 3배의 난방.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기에 구조적 조건이 겹쳤다. 전력의 98% 이상이 수력과 풍력에서 나온다. 전기가 깨끗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2020년대 초반부터 파라핀(석유) 보일러 신규 설치가 금지됐다. 쉴트 교수에 따르면, 금지 이후 많은 사람들이 히트펌프를 선택했다. 기존 온수 라디에이터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보일러만 히트펌프로 바꾸면 되니, 전환이 간단했다.
정부의 설계도 치밀했다. 국가에너지청과 지방자치단체 양쪽에서 히트펌프 교체 보조금을 지급하고, 화석연료에는 높은 탄소세를 매긴다.
여기에 건물 에너지 등급제가 맞물린다. A등급을 받으려면 히트펌프나 태양광이 사실상 필수다. 높은 등급에는 그린론 같은 금융 혜택이 따라온다. 쉴트 교수는 칠판 앞에 서서 힘주어 말했다. "규제와 요구사항, 그린론, 에너지 인증이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시장의 힘만 믿으면 느립니다. 2050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겁니다."
단열 기준도 다른 차원이다. 현재 노르웨이 건축 규정은 벽 구조에 30센티미터 두께에 해당하는 단열을 요구한다. 열 회수 환기 시스템도 의무화 돼 있어, 건물에서 빠져나가는 열의 80%를 회수한다. 쉴트 교수가 웃으며 덧붙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는 단열이 없었습니다. 그냥 나무벽이었죠. 지난 100년간 건축 규정의 발전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그런데 숫자만으로는 부족했다. 보급률이 아무리 높아도, 정말 혹독한 추위에서 히트펌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곳이 오슬로 시내에 있었다.
200년 된 대학, 히트펌프의 한계를 시험하다
2024년 6월, 이 대학 강당에서 유럽 한냉지 히트펌프 연구 컨소시엄(ECAHR)이 출범했다. 오슬로메트가 주축이 되고,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NTNU),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교가 함께한다. 이 컨소시엄에 산업 파트너로 LG전자가 참여하고 있다. 세 대학과 기업이 극한 추위에서 히트펌프 성능이라는 공동 과제를 놓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이 대학에서 한냉지 히트펌프 연구를 이끄는 김문근 교수에게 왜 하필 오슬로인지 물었다. "오슬로는 영하 10도 이하가 두 달 이상 지속됩니다. 거기에 연간 강우량이 600밀리미터 이상이라 습도가 극도로 높아요. 이런 저온다습 조건은 오슬로가 유일합니다." 습도가 높으면 실외기 표면에 얼음이 빠르게 형성된다. 얼음이 붙으면 열을 흡수할 수 없어 히트펌프 성능이 급락한다. 김문근 교수는 "유럽에서 히트펌프의 성능과 신뢰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가혹한 환경"이라고 했다. 여기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다른 곳에서는 당연히 된다.
디젤 보일러를 뜯어낸 자리
실외기 세 대를 설치한 데는 이유가 있다. 영하 5도일 때는 한 대만, 더 추워지면 두 대, 영하 28도 최악의 조건에서는 세 대를 모두 가동한다. 외기 온도에 따라 몇 대를 운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실측하는 연구다.
실외기 앞에 열화상 카메라를 갖다 댔다. 영하의 바깥 공기에서 실외기가 열을 빨아들이는 과정이 색깔로 보였다. 영하 3도든 영하 28도든 공기 중에 열은 있다. 문제는 그 열을 끌어올 때 생기는 얼음이다. 실외기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뭔가 타는 게 아니라 얼음을 녹이는 과정이었다. 김문근 교수가 실외기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얼음을 녹여주는 게 핵심입니다. 언제, 어떻게 녹여줄 것이냐가 이 히트펌프의 기술적 핵심이에요."
영하 28도에서도 난방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물었다. 김문근 교수에 따르면, 영하 10도에서는 100% 운전이 가능하고, 그 이하의 극저온에서도 최적의 운전을 통해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연구진의 실측에 따르면, 이 히트펌프는 기존 디젤 보일러 대비 비용은 66%, 이산화탄소 배출은 99% 적었다. 연구 결과는 유럽 냉난방공조 학술지 REHVA Journal에 게재됐다.
77%가 아파트인 나라
그런데 김문근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좀 달라졌다. 한국의 아파트 구조가 히트펌프에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히트펌프는 낮은 온도로 난방할 때 효율이 가장 높다. 유럽에서 흔한 라디에이터는 40~55도의 물이 필요하지만, 바닥난방은 35도면 충분하다. 김문근 교수는 "바닥난방이 히트펌프에는 최고의 옵션"이라며 노르웨이의 변화를 예로 들었다. "노르웨이도 최근 신축 주택의 70% 이상이 바닥난방을 씁니다. 이 사람들도 바닥난방이 좋은 걸 알아요."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지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여름에 에어컨, 겨울에 가스보일러를 쓴다. 두 가지 시스템을 따로 운영하는 셈인데, 김문근 교수는 "사실 에어컨이 히트펌프"라고 했다. "방향만 바꾸면 됩니다. 히트펌프 하나로 냉방과 난방을 모두 해결할 수 있어요. 한국은 지금 두 가지 시스템을 동시에 쓰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기존 아파트의 구조다. 도시가스 배관에 맞춰 설계된 평면, 실외기를 놓을 공간이 따로 없는 설계. 김문근 교수의 제안은 구체적이었다. "냉장고 들어갈 공간을 따로 설계하듯, 히트펌프와 물탱크가 들어갈 자리를 설계 단계에서 확보해야 합니다. 히트펌프를 모듈화 하면 됩니다." 기존 아파트는 에너지 등급을 매겨 단열 보강과 히트펌프를 결합했을 때의 절감 효과를 수치로 보여주고,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연결하면 전환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누진제의 벽, 움직이기 시작하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제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3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은 히트펌프 가정의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히트펌프 가동에 쓰인 전력만 별도로 분리해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일반용 요금을 적용 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지열 설비에만 허용되던 방식인데, 공기열 히트펌프까지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제주에서만 적용되던 계절·시간대별 요금제도 육지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김문근 교수가 노르웨이 사례로 말한 바로 그 구조다. 4월 1일부터 시행된다.
한국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 온실가스 518만 톤 감축을 목표로 내걸었다. 아파트 117세대 대상 실증 사업이 착수됐고, 공동주택 건설기준 개정도 추진 중이다.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는 법 개정도 진행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확인한 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영하 28도에서도 작동하는 히트펌프는 이미 존재한다. 남은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다. 77%가 아파트인 나라에서 이 전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그 답은 노르웨이에도 없다. 한국이 스스로 만들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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