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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예측 불가능성만 예측 가능"…옅어진 기대감, 대화에서 대비로 [취재파일]

김정은 "예측 불가능성만 예측 가능"…옅어진 기대감, 대화에서 대비로 [취재파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지금의 국제 현실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말은 '예측 불가능성'일 겁니다. 자고 일어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또 어떤 발언을 올렸을지, 이번에는 또 어떤 선택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줄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예측 불가한 트럼프를 가장 뼈아프게 경험했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입니다. 트럼프와 세 차례 대좌했던 김정은은 4년 만에 돌아온 트럼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때는 지난해 1월입니다. 1년 2개월 동안 김 위원장이 내놓은 직간접적인 대미 메시지는 대표적으로 3건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9월 21일 제14기 제13차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과 올 2월 20~21일 노동당 대회 사업총화보고, 지난 23일 있었던 제15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입니다. 해당 발언들을 복기해보면, 북한의 대미 인식이 어떻게 유지되었고 또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공통된 메시지는 미국과의 대화 여지를 계속해서 남겨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만약 미국이 허황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한다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달에는 "조미 관계의 전망성은 미국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면서 "평화적 공존이든 영원한 대결이든 우리는 모든 것에 준비돼 있으며 그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달 시정연설에서는 미국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으나 적수라는 표현으로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대결이든 평화적 공존이든 "그것은 그들이 택할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북미 대화로 진입하는 문을 자신들이 먼저 닫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그래서인지 미국의 패권 추구 정책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만큼은 직접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김정은의 메시지뿐 아니라 관영매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내부적으로 트럼프 개인 비방을 삼가라는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트럼프 하 미국에 대한 기대감이 옅어진 듯한 모습도 세 건의 메시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첫 메시지에서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어느 순간 트럼프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습니다. 당시에도 물론 '개인적' 관계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미약하게나마 트럼프와의 지난 인연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속내가 읽혔는데 이런 대목이 사라진 겁니다. 미국과의 좋은 관계가 가능하다는 구체적 발화도 줄어든 모양샙니다. "우리도 미국과 마주서지 못할 리유가 없다"(지난해 9월),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리유가 없다"(지난 달)는 발언은 이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선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대화 가능성은 남겨두지만, 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은 삼가고 있는 겁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적대시 정책 철회' 같은 조건을 내건 대화 요구가 이번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는 것인데, 대화를 위해 문턱을 없앴다기보다는 기대감 조정에 따른 변화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체포된 마두로

첫 메시지와 두 번째 메시지 사이에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한밤 중에 미군에 의해 체포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메시지 사이에는 미국이 이란을 향해 군사작전을 감행해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란은 미국과 핵협상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두 사건을 지켜본 이후 시점, 즉 지난 23일 연설에서 김정은은 '대화'의 언어보다는 '대비'의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예측 불가능성은 오늘의 세상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정세 전망"이라며 "예측 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이라고 했습니다. 또 "항상 편안함보다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며 단기적, 가시적 이익보다 장기적, 전략적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예측 불가능성을 예측 가능함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말은 트럼프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즉 트럼프와 우호적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미국은 어쩔 수 없는 미국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단기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 이익을 강조한 발언은 북한으로선 이미 트럼프 이후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트럼프와의 협상에 자칫 잘못 응했다가는 핵보유국 지위를 통한 경제적 번영이라는 자신들이 목표가 오히려 어설프게 어그러질 수 있다고 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북한이 대화의 문을 먼저 닫으며 미국을 자극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크지 않아 보입니다.

정리하면 상대의 선택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 그것이 지금 북한이 택한 방식으로 보입니다. 단기적인 이벤트에 목메기 보다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것,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상대에 대해서는 철저한 대비하겠다는 것이 북한이 설정한 큰 틀의 대미 기조로 분석됩니다. 사실, 지금은 미국이 중동에 터진 불부터 꺼야 하는 터라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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