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국제공항
"같은 노선인데 몇 달 사이 항공권이 160만 원에서 240만 원까지 올라 있더라고요. 생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결제 버튼이 안 눌러졌어요."
오는 9월 결혼을 앞둔 이 모(31) 씨는 22일 "스페인 신혼여행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며 이같이 토로했습니다.
이 씨는 "오른 항공권 비용은 스페인에서 최고급 호텔에 며칠 더 묵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렇게까지 비용을 쓰면서 가는 게 억울해 여행이 즐겁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해외여행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해 계획보다 서둘러 항공권을 구매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집니다.
대학생 이 모(24) 씨는 올봄 중간고사 후 친구들과 계획했던 동남아 여행을 최근 취소했습니다.
이 씨는 "당초 왕복 항공권을 30만~40만 원대로 예상했지만, 유류할증료가 붙으면서 가격이 눈에 띄게 올라 부담이 커졌다"며 "저가 항공이라 가볍게 다녀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계획을 접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영업자 정 모(35) 씨 역시 예약 직전까지 갔던 여행을 보류했습니다.
정 씨는 "최근 식자재 가격 상승과 매출 감소로 수입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항공권 가격까지 오르자 소비 결정을 미루게 됐다"며 "5월에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 돈을 쓰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됐고 결국 포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대학원생 최 모(27) 씨는 졸업 기념으로 계획했던 미국 서부 배낭여행을 접었습니다.
최 씨는 "유류할증료 상승에 장거리 노선일수록 부담이 더 크게 느껴졌다"며 "학생 신분으로 현지 물가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비용 걱정하며 여행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직장인 최 모(41) 씨는 가족과 오는 5월 동남아 여행을 계획했다가 국내 여행으로 틀었습니다.
그는 "최근 항공료가 치솟으면서 4인 가족이 동남아 여행 가는 비용이 수백만 원으로 올랐다"며 "이 정도 비용이면 굳이 동남아를 갈 필요가 있나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일생 한번뿐인 신혼여행이나 오랜만의 '가족 상봉'이 영향을 받는 경우 타격감은 더 큽니다.
내년 1월 결혼을 앞둔 김 모(29) 씨는 오는 8월 호주에서 웨딩 스냅 촬영을 겸한 여행을 계획했는데 비용이 크게 올라 울상입니다.
김 씨는 "2월 말 항공권을 확인했을 때는 대한항공 기준 103만~105만 원 정도였다"며 "보통 여행 2~3개월 전에 예매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렸는데, 티켓값 인상 소식을 듣고 지난 주말 다시 확인해 보니 같은 구간, 같은 일정인데도 150만 원까지 올라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당초 잡아둔 예산이 있는데 항공료부터 크게 초과해 버려 '이걸 가야 하나' 싶었다"며 "웨딩 스냅 촬영과 헤어·메이크업, 부케 등 현지에서 준비해야 할 비용이 이미 적지 않은 상황이라 항공권 가격 상승이 더 크게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결과적으로 더 비싼 가격에 저가항공을 예매하게 됐다"며 "금액적인 부담도 부담이지만, 이 가격이면 원래 더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독일에서 유학 중인 아들을 만나기 위해 남편과 여행을 계획했던 주부 정 모(53) 씨는 일정을 미뤘습니다.
정 씨는 "항공권 가격이 지난해보다 체감상 두 배 가까이 오른 데다, 경유 노선 역시 선택지가 제한적이어서 부담이 컸다"며 "무리해서 다녀오기보다는 상황이 안정된 뒤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4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이달 적용된 '6단계'에서 무려 12단계나 수직 상승한 '18단계'가 적용됩니다.
이는 2016년 현행 유류할증료 체계 도입 이후 한 달 사이 가장 큰 상승 폭으로,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MOPS) 급등에 고환율 상황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대한항공 기준 장거리 노선인 인천~뉴욕의 경우 유류할증료가 3월 편도 9만 9천 원에서 4월 30만 3천 원으로 세 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인천~런던·파리 등 유럽 노선 역시 7만 9천500원에서 27만 6천 원으로 크게 올랐습니다.
비교적 단거리인 인천~방콕 노선도 3만 9천 원에서 12만 3천 원으로 뛰며 약 세 배 수준으로 증가했습니다.
유류할증료는 항공권 '탑승일'이 아닌 '발권일'을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같은 일정이라도 언제 결제하느냐에 따라 실제 지불 금액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에 여행 시기가 정해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 발권하는 것을 고민하거나, 반대로 부담을 느껴 예약 자체를 미루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행사 관계자 유 모 씨는 "최근 걸려 오는 문의 전화의 절반 이상이 '지금 예약하면 비용이 더 오르느냐', '전쟁 때문에 항공편 운항에 영향이 있느냐'는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4월 유류할증료 인상 가능성을 안내하며 '3월 내 결제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 고객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 단위 패키지 여행의 경우 전체 비용 규모가 크다 보니 결국 예약을 미루거나 아예 진행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여행 수요 자체가 위축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휘영 인하공전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중동 리스크로 정유 시설 타격 가능성과 원유 공급 불안이 커진 상황"이라며 "국제유가는 급등 이후 하락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특성이 있어 단기간에 안정되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교수는 "특히 최근에는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항공사의 비용 부담이 전반적으로 커진 상태"라며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항공권 가격 상승세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며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관광 수요는 그만큼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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