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단종 스스로 죽음 택했다?
02:24 '단종 타살설’, 왕에게 인정되기까지 꼬박 242년
1. 단종 스스로 죽음 택했다?
우리는 역사를 기록의 망원경을 통해 봅니다. 아무래도 사건이 벌어진 당대, 공식적으로 기록된 정사가 가장 정확하다는 믿음이 있죠. 단종 사망 시기와 가장 가까운 정사,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은 단종의 최후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세조 3년 10월 21일 (1457년 기록 - 단종 사망) 송현수(단종의 장인)는 교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아울러 논하지 말도록 하였다.… 노산군(단종)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 매어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
그러니까 당대의 공식 기록, 단종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겁니다. 세조가 처형을 직접 지시한 게 아니란 뜻이죠. 하지만 이 기록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단종의 최후하고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이런 의심은 당대에도 나왔다고 해요.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6명의 신하. 즉, 생육신 가운데 한 명인 조려는 <어계집>에서 단종 사망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어계집> 생육신 유학자 조려의 문집 (1516년 간행 - 단종 사후 59년) 금부도사가 사약을 가지고 영월에 왔다. 노산군은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금부도사가 사약을 올리지 못하자, 공생(심부름꾼)이 활시위로 노산군 목을 졸라 죽였다. 그러자 공생이 아홉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세조가 단종의 처형을 직접 명했다는 거죠. 당시 선비인 이자는 심지어 이렇게 직설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음애일기> 조선 중종 시기 문신 이자의 일기 (1509년쯤 기록 - 단종 사후 52년) 사기에 말하기를 ‘노산이 영월에서 금성군 실패를 듣고, 자진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여우나 쥐 같은 놈들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붓장난이다.]
2. '단종 타살설’, 왕에게 인정되기까지 꼬박 242년
그런데 조선 중기 들어 사림들의 정계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사림들은 절의를 중요하게 여겼거든요.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사육신을 높게 평가했는데 문제는 세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대 왕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리스크가 있었습니다. 이걸 부정하는 건 역모죄입니다. 선비들은 이 간극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조선왕조실록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인종실록> 인종 1년 4월 9일 (1545년 기록 - 단종 사후 88년) 시강관 한주가 아뢰기를 “세조께서 사육신에 대해 … 위태롭고 의심스러울 때이므로 어쩔 수 없이 죄를 줘 인심을 진정시켰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조가) 당대의 난신이 후세의 충신이라 하였으니…”]
그러니까 세조 역시 사육신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당시 상황상 불가피하게 처벌을 했을 뿐이라는 내용입니다. 세조가 정말 “당대의 난신이 후세의 충신”이란 말을 했는지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조 역시 사육신을 재평가했다는 것은 신하들 입장에선 단종에 대한 절의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단종의 최후에 대한 진상규명은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합니다. 신하들은 왕 앞에서 단종의 타살설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게 됐죠. 이게 이런 식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선조 2년 5월 21일 (1568년 기록 - 단종 사후 111년) 기대승이 아뢰길 “(신하들이 단종을) 처치하길 청하니 세조는 물정에 구애돼 허락했습니다. 금부도사를 보내 영월에서 사약하였으니 공사가 지금도 금부에 남아 있습니다.]
급기야 왕의 입을 통해 세조에 의한 단종 타살설은 공식화됐습니다. 조선 숙종 때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숙종 25년 1월 2일 (1699년 기록 - 단종 사후 242년) 상(숙종)이 말하길 “단종대왕이 영월에 피해 계실 때…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이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즉시 아홉 구멍에 피를 쏟고 죽었다.”]
지금까지가 단종의 최후에 관련된 역사적 기록입니다. 단종 사망에 대한 첫 공식기록 자결이었지만 당대에도 이 기록에 대한 반박이 나왔습니다. 절의를 중요하게 여긴 사림들은 단종 사망의 직접적인 가해자가 세조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사림들이 정계 전면에 나서면서 단종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은 더욱 활발해지게 됐습니다. 단종이 세조에 의해 직접적으로 희생됐다는 타살서사가 왕이 있는 정치공간에서 직접 거론된 데 이어서 결국 왕이 자신의 입으로 단종의 타살을 인정하는 흐름입니다. 단종 타살설이 왕에게 인정되기까지 꼬박 242년이 걸린 셈입니다.
(취재 : 이경원,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 설민환, 영상편집 : 안준혁, 디자인 : 양혜민, 영상출처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EPK, 제작 :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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