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2·3 내란을 보면서 과거 12·12 군사반란을 떠올린 분들도 계실 겁니다. 두 사건 모두 군이 동원된 점에선 비슷하지만, 내란의 주체와 목적, 성격 측면에선 다른 점이 많습니다.
배준우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지난 1979년 '10·26 박정희 시해 사건' 약 두 달 만인 12월 12일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은 권력 찬탈을 노렸습니다.
전 씨를 위시한 신군부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했고,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압박해 사후 재가까지 받아냈습니다.
이들과 이튿날인 12월 13일 보안사 건물 앞에 모여 내란의 시작을 기념한 전 씨는, 3권 장악 후 '체육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내란을 완성했습니다.
[(1980년 9월 1일, 잠실 실내체육관)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취임식을 거행하겠습니다.]
하극상 그 자체였습니다.
반면,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 무력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과 헌정 질서 수호'를 명분으로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계엄군을 투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총리를 비롯한 일부 국무위원 등 '엘리트 관료'가 동원됐습니다.
[박억수/특검보 (지난달 13일) : 이번 재판을 통해 공직 엘리트들이 자행한 헌법 질서 파괴 행위를 전두환, 노태우 세력에 의한 단죄보다 더 엄정하게 단죄함으로써 헌정 질서를 수호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지귀연 재판부도 내란죄를 가장 먼저 판단한 한덕수 전 총리 사건 재판부에 이어 12·3 내란의 성격을 '친위 쿠데타'로 규정했습니다.
[이진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재판장 (지난달) :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데,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귀연/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재판장 : 군에 대한 통수권을 가지는 행정부의 수반은 언제든지 군을 동원해 의회의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행정부의 정책 추진을 밀고 나가려는 강한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12·12 군사반란이 군사독재의 서막을 예고했다면, 12·3 내란은 힘들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단숨에 추락시켰습니다.
(영상취재 : 김남성, 영상편집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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