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중 돌변..."악수 사진으로 모든 걸 덮으려"
아침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신동욱, 김민수, 양향자 최고위원이 차례로 나서서 장 대표의 청와대 오찬 참석을 반대했습니다. 어젯밤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통과된 점을 들어, 사법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여권의 입법독주가 재개된 상황에서 '사진 찍고 밥 먹는' 청와대 오찬 참석은 불가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최고위원들 발언 직전에는 오찬 참석 사실을 재확인했던 장동혁 대표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별도 단독회담이 성사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정치의 잘못으로 힘들어 하는 민심을 대통령께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위원들 발언이 끝나고 회의를 마무리할 즈음 돌변했습니다. "여러 최고위원이 재고를 요청했기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논의하고 최종 결정하겠다"면서 오찬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장 대표는 특히 어젯밤 법사위의 '재판소원법' 처리, 여권의 '공소취소 의원 모임' 출범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협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찬 불참을 사실상 결정한 듯했습니다. 최고위원들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판단을 바꾼 것인지, 사전 협의에 따라 최고위원들이 자락을 깔고 장 대표가 불참을 결단하는 방식을 취한 것인지는 추정의 영역이겠지만 개인적으로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공식 발표는 오찬 1시간 전인 오전 11시쯤 나왔습니다. 국민의힘은 장동혁 대표 불참 사실을 청와대 홍익표 정무수석에게 공식 통보했습니다. 이어서 오후에 열릴 국회 본회의에도 불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청와대 오찬을 계기로 여야 협치의 물꼬가 열릴 수 있다던 낙관적 전망은 일순 사라졌고, 강 대 강 전면적 대치 분위기로 돌변했습니다.
靑 "깊은 아쉬움"...민주 "무례한 간잽이"
홍 수석은 "회동 무산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특별한 말씀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시간이 없다" "국회 입법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답답함을 호소했었죠. 야당보다 오히려 여당에 전하는 메시지였다는 해석도 나오던 터였습니다. 오찬 무산의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청와대로선 입법 속도 지연에 대한 우려가 커진 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경악' '무례' 같은 격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 작태에 경악한다"면서,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전용기 의원의 비판은 보다 거칩니다. "밥 달라더니 차려준 밥상도 걷어차고 도망가는 '간잽이'. 단식까지 하면서 온갖 생떼를 쓸 때는 언제고 이 대통령이 민생 회복을 위해 오찬 회동이라는 멍석을 깔아주자 당일 아침에 냅다 줄행랑을 쳤다. 비겁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번 청와대 오찬 회동은, 장동혁 대표가 단식을 하면서 요청했던 이른바 '영수회담'의 변형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죠. 장 대표가 영수회담을 요청했을 당시, 정치권의 많은 사람들이 상황과 의제가 애매해서 성사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던 터였습니다. 한미 관세협상 후속 입법조치는 여야가 먼저 대화에 나서야 할 의제이고, 내전 수준의 당내 갈등을 빚고 있는 국민의힘 상황을 생각했을 때도 이재명 대통령이 장동혁 대표와 따로 만나는 장면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관측이 다수였습니다.
그럼에도 어제 청와대가 오찬 회동을 전격 제안했던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정도 꼽고 있습니다. 첫째는 순한 맛 분석입니다. 민주당 역시 조국혁신당 합당 문제로 당내 갈등이 심했던 터라, 민생과 경제 문제로 국정 중심축을 옮기고 싶은 이재명 대통령이 합당 문제 매듭이 지어진 때에 맞춰 전격적으로 청와대 오찬 회담을 제안했을 거란 추측입니다. 두 번째로 조금 고약한 맛 분석을 해보자면, '윤석열 절연'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장동혁 대표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힘을 혼란과 무기력에 묶어두는 정치적 효과가 있을 거라는 판단도 작용했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민생과 협치, 소통이라는 명분도 살리고, 정치적으로도 상대의 발밑을 약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으로 추측해 봤습니다.
장동혁 식 여권 갈라치기?
장 대표는 "정청래 대표는 진정 이 대통령의 '엑스맨'이냐. 특검 추천도 마찬가지고 여러 문제에 있어서 대통령의 엑스맨을 자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오찬 회동이 잡힌 다음에 이런 악법(재판소원법 등)을 통과시킨 것은 이재명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과 오찬이 잡히면 반드시 그날이나 그 전날에는 이런 무도한 일들이 벌어졌다. 우연도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습니다.
무례하다는 정청래 대표의 비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불러 오찬 회동을 하자고 한 직후 그런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은 진정 예의 있는 행동이냐"고 맞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봐도 오늘 오찬은 이 대통령과 정 대표 두 분이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슬쩍 비꼬았습니다. 최근 조국혁신당 합당 제안을 둘러싼 민주당 내 갈등을 '명청대전' 프레임으로 부각하면서, 합당 갈등에서 패배한 정청래 대표가 청와대 오찬에 재를 뿌리기 위해 어젯밤 여야 갈등 입법을 밀어붙였다는 주장인 겁니다.
장동혁 대표는, 자신의 요청으로 성사된 청와대 오찬을 스스로 무산시킨 것에서 오는 정치적 부담과 대여 강경 투쟁으로 기조를 전환하는 것에서 오는 정치적 기회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 걸로 보입니다. 청와대 오찬을 통해 명실상부한 야당 대표 선수라는 상징성을 확보하는 것이 당내 갈등과 '윤 절연'압박을 돌파하는 데 유리할 거란 판단에서 처음에는 오찬 회동 제안을 받아들였겠죠. 이런 생각이 하룻밤 만에 바뀐 셈인데, 여야 대치와 여권 내부 갈등을 연결시키고 즉 장동혁 식 여권 갈라치기를 하면서 자신은 '대여 강경 투쟁의 상징'으로 위치 짓는 것이 당내외 고민들을 돌파하는 데 더 낫겠다고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글쎄요. 하지만 그런 얘기를 청와대 오찬에 가서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오히려, 장 대표가 원하는 대여 투쟁의 상징적인 장면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혹시 설 연휴 직후에 나오는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재판 1심 판결을 앞두고, 민생-소통 국면보다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더 필요했던 건 아닐까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결국 평가는 국민들이 하시겠죠. 다만 앞으로는 장 대표가 여야 영수회담 하자는 얘기를 다시 꺼내기는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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