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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실패를 반복하도록 설계된 질문

[취재파일] 실패를 반복하도록 설계된 질문
통상 여경과 관련된 논의들은 다음 질문을 전제한다. 사건은 예정된 질문을 호출하는 역할일 뿐, 질문은 논쟁의 방향과 결론까지 정해두고 있다.

"과연 여성 경찰은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래서일까. 여경 관련 논의들은 주로 맥락보다 장면 위주로 재현된다. 경찰 매뉴얼에 규정된 단계적 대응 여부에 대한 확인은 누락되고, 맨손 제압에 성공했는지가 관건이 된다. 동일한 사건도 '치안의 한계'가 아니라 '여경 무능'으로 재구성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는 여경을 방어하고, 어떤 이는 한계를 지적한다. 질문 그 자체를 흔들지 못했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수년 째, 여경 관련 논의들은 제도를 설명의 바깥에 두는 '실패'를 반복하는 데 '성공'할 뿐이다.

뉴스토리 캡처화면
뉴스토리 화면 캡쳐


올해 첫 시행을 앞둔 순경 통합 선발 논의가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동안 순경 공채는 남녀를 분리해 모집해 왔다. 여성 정원은 일정한 숫자(20% 안팎)에 제한됐다. 체력 시험 역시 기존엔 남녀가 각기 다른 기준에 의해 종목별 점수를 경쟁하는 식(점수제)이었다. 반면, 새로 도입되는 순환식 체력시험(통과제)은 기록 경쟁 대신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이동하여 장애물을 넘고 구조 과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남녀 동일 기준이다. 이전과 다른 질문이 던져 진 셈이다.

"무엇이 경찰 직무 수행의 최소 조건인가"

아쉽게도 기대와 달리, 관련 논의들은 시험의 설계나 직무 연관성으로 이동하지 못한 채 성별 유불리 계산을 되풀이하고 있다. 논쟁은 생산적으로 진화하기보다 익숙한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 대목에서 해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앞서 다른 국가들은 경찰 채용 과정에서 성별을 진정직업자격(BFOQ) 1) 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 자연스럽게 논의의 축을 이동시켰다. '누가 더 적합한가'가 아니라,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 기준은 무엇인가'를 묻는 방식으로 말이다. 타이완, 영국, 캐나다 등은 성별 분리 채용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면서, 채용 단계에서는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 기준을 설정하고 현직 경찰들에게 훈련과 관리 책임을 강화했다. 다시 말해 체력 시험은 유지됐지만, 선발 단계의 변별 장치가 아니라 직무를 정의하는 도구로 재설계됐다. 중요한 것은 평등의 선언이 아니라, 질문의 이동이다. 이 과정에서 차이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변수로 다뤄졌다. 경찰의 역량은 성별이 아니라 조직이 어떻게 훈련하고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1) 진정직업자격(Bona Fide Occupational Qualification)은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 데 본질적으로 필요한 요건으로, 차별처럼 보이더라도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기준을 말한다. 핵심은 성별·연령 자체가 아니라, 그 조건이 없으면 직무의 본질적 수행이 불가능한지에 있다.
줄리아 예거 / 前 영국 경찰, IAWP (국제여경연합회) 회장 인터뷰 - 뉴스토리 549회 자료화면

여경 논란을 젠더 갈등으로 호명하는 순간, 사안은 제도와 직무의 문제라기보다 감정적 대립으로 전치된다. 경찰 직무가 어떻게 정의돼 왔고, 채용·훈련·배치 과정에서 어떤 기준이 반복 적용돼 왔는지에 대한 질문은 밀려난다. 그 결과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만 전면에 등장하고, 여성 경찰은 문제를 검토하거나 설명하는 주체로 서기보다 논쟁 속에서 축적된 불만과 제도적 실패를 대표해 감당하는 존재로 위치 지워진다. 성별은 분석의 변수가 아니라 갈등의 표식으로 호출된다.

그렇기에 기존의 논쟁을 반복하거나 같은 입장을 보태는 시도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논쟁이 어떤 질문 위에서 작동해 왔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지금까지 무엇을 경찰의 능력이라 불러왔는지, 무엇을 직무의 본질로 상상해 왔는지, 그리고 그 상상이 어떤 제도와 재현 방식을 통해 유지돼 왔는지를 점검하는 작업 말이다. 이는 여경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개입이다. 논쟁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한 발 뒤에서 해체하는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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