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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잘되라고 보냈는데…" 해외 한달살이의 비극 [스프]

[지식의 발견] 천근아 소아정신과 교수

아이들
⚡ 스프 핵심요약

선행학습은 무조건 진도를 빼는 게 아니라 지금 배우는 것을 심화·응용하는 것이며, 개념 이해 없이 앞서가면 안다고 착각하다가 나중에 다시 아래 수준부터 쌓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해외 한달살이'는 특히 어린아이들일수록 부모와 함께 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과도한 통제·홈스테이 갈등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

방학에는 초등은 잘 쉬고 멍 때릴 시간과 함께하는 활동을, 중고등은 스스로 스케줄을 관리하며 시행착오를 겪게 하라. 부모는 과도한 통제 대신 '곁에 있지만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학을 선행학습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데?

선행학습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선행학습도 정도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미적분 배우고 그런 것은 0.001% 영재 아니고서는 감당을 못 하거든요. 안다고 착각하는 거죠. 풀어낼 수는 있지만 개념이 뭔지도 모르고 응용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결국은 나중에 모래성 같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데, 진정한 선행학습은 현 단계의 학업을 조금 더 심화하고 응용해 가는 것입니다.

앞선 공부가 자기 것이 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안다고 착각하는, 사실은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응용하지 못하는 지식이라서 대학 입시 때 개념을 다시 잡아야 되거나 오히려 성적이 더 안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아래 수준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되는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진정한 선행 학습은 무조건 진도를 빼고 무조건 앞선 걸 배우는 게 아니라, 지금 배우는 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해외 한달살이'의 기대와 우려
Q. '해외 한달살이' 아이만 보내도 될까요?

고등학교 정도는 혼자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근데 고등학생쯤 되면 우리나라는 (입시에) 달려야 되니까 드물고, 보통 어릴 때 보내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부모가 같이 가면 이상적이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근데 영어를 늘게 하기 위해서 부모 없이 아이 혼자 15세 미만의 아이를 홈스테이나 친척집에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그 연령대까지는 부모의 관리가 필요하고 정서적인 재충전이 함께 이루어질 때 학습도 더 잘될 수 있고, 그때까지는 비판적인 사고라든지 생각을 조직화하기 쉽지 않고, 감정에 휩쓸릴 수 있는 시기예요. 중학교 때까지가.

몸집은 산만 해도 뇌의 전두엽 기능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홈스테이 갔다가 홈스테이 가정 형제자매와 부딪혀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이모니까, 고모니까 자기 자식처럼 잘 돌봐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냈는데, 이모나 고모는 아이를 맡겨줬으니까 잘 돌보려는 욕심에 과도하게 아이를 통제하고 관리한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아서 트라우마를 겪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 한달살이 좋은데 어린아이들일수록 부모하고 함께 가라.

Q.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영어 공부하러 왔으니까 확실하게 배워가야 돼' 하는 이모가 있어요. 엄마 못지않은 거죠. 근데 그게 과도해서 아이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쪼개서 관리하는데, 이모 자녀들은 미국에 살고 있으니까 얼마나 널널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왜 나만 이렇게 쉴 틈 없이 돌리고 동생들은 노냐' 그러면서 갈등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여기 놀러 왔냐, 엄마가 너를 여기에 왜 보냈는데' 하면서 계속 싸우게 된 거예요.

급기야 아이가 한국으로 전화해서 '바로 한국 가고 싶다' 그랬더니 엄마는 '그거 하나 못 견디고 이모와 갈등이 생기면 어떡하니?' 그러면서 아이 탓을 하고. 집에서도 안 받아본 경험을 이모나 홈스테이 주인에게 받으니까 아이가 스트레스받아서 튕겨 나왔던 사례들이 적지 않습니다.

Q. 부모들에게는 방학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팬데믹 때 이미 많이들 경험하셨잖아요. 누가 돌봐주든 어딘가 공부를 시키려고 학원을 보내든 돈이 들고, 돌봄 이슈와 비용 이슈. 그리고 부모와 아이의 마음이 동상이몽이에요. 아이들은 방학 숙제도 없겠다, 딱 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부모는 학기 중에 못했던 학업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방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학이 끝나면 병원으로? 부모-자녀 갈등이 폭발하는 이유
Q. 방학 동안 부모-자녀 갈등으로 소아정신과까지?

부모 눈에 아이가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 같고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 같아서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평소에도 부모와 관계가 안 좋았기 때문에 '양치질할까, 씻을까, 식사하러 나오렴' 하는 말에도 발끈하는 거죠. 엄마는 억울하잖아요. 밥 먹으러 나오라고 했을 뿐인데, 양치질하라고 했을 뿐인데. 그러면 아이와 계속 갈등이 생기고, 엄마는 아이에 대한 분노가.

방학 끝나고 오면 엄마와 아이가 서로 쳐다보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앉아요. 엄마가 '방학 동안 계속 싸우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면 아이는 '나도 힘들었어! 엄마만 힘들었는 줄 알아?' 그런 상황이 많이 연출돼요.

Q.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길면 가족이라도 힘든.

단점이 자꾸 보이고 지적해 주고 싶고, 지적하면 아이가 '알겠습니다' 정신 차리고 딱 교정할 것 같지만 절대 그러지 않거든요. 예전 같으면 안 보이니까 지적할 사안이 안 보였지만, 보이면 고쳐주고 싶고 통제하고 싶고 뭔가 한마디라도 더 해서 아이를 바르게 잡아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간섭받기 싫고 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충돌해서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가 임상 현장에서는 훨씬 많죠. 아이도 힘든 아이고 부부 갈등이나 평소 아이와의 갈등이 있던 집들이 일반적으로 더 많은 곳이 임상 진료 현장이니까, 방학 끝나고 나면 그런 상황들이 더 심해져서 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초등학생 방학을 망치지 않는 법
Q. 초등학생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뭔가 해줘야 된다는 부담을 많이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잘 쉬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할까요? 쉰다는 게 게으른 것 같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멍 때리는 속에서 엉뚱한 아이디어나 창의력도 생기거든요. 정 뭔가를 해주고 싶다면 함께 놀이 활동을 많이 해라. 운동이라든지 여행을 다닌다거나 등산을 간다거나, 함께 책을 읽거나 도서관을 간다거나. 책을 같이 빌려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엄마가 빌린 책은 이건데 네가 빌린 책은 뭐야?' 빌려오고 함께 반납하러 가고.

한 가지만 신경 썼으면 좋겠는 건, 너무 늦잠 자지 않게. 스마트폰을 밤늦게까지 보면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고, 스마트폰 자체가 수면을 방해합니다. 저는 잠들기 2시간 전에는 스마트폰을 반납하라고 주지를 하는데, 수면에 중요한 바이오리듬, 일상생활의 서카디안 리듬이라고 하거든요.
*서카디안 리듬 : 24시간 주기로 수면·각성, 체온, 면역, 호르몬, 대사를 조절하는 생체 시계

아침에 늦잠 자지 않게 관리 정도 해 주시고 함께 바깥 활동 많이 하고. 부모와 함께 봤던 뉴스, 함께 봤던 책, 함께 봤던 영화가 다 삶의 지식이에요. 학교 다닐 때 공부하잖아요. 요새 방학 숙제가 없는 이유가 자유롭게 계획해서 창의적으로 활동해 보라는 취지라면서요. 그 취지를 십분 살려야 되는데 또 선행학습 학원 뺑뺑이 돌리는 것으로 (방학을) 활용하면 시대에 역행하는 (겁니다). 그걸 잘 지키면서 키운 아이들한테 먼 훗날 분명히 밀리게 될 겁니다. 학습적 밀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먼 훗날,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 밀린다.

부모는 아이가 '심심해' 하면 '심심해? 뭐 해줄까? 함께 놀까?' 그러면서 해결해 주고 싶어 하잖아요. 그때 '원래 심심한 거야. 심심함을 즐겨' 그렇게 얘기해 줘라. 심심한 걸 해결해 주려고 하지 말라. 멍 때리고 있을 수 있고, 아이의 머릿속은 계속 돌아가고 있는 거거든요. 학기 중에 있었던 친구와의 갈등도 생각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생각할 수도 있고, 내일 뭐 하지, 저녁에 뭐 먹지, 그런 것도 다 생각이고, 그러면서 갑자기 엉뚱한 생각들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것들이 결국은 창의력을 키워주는 기회인데 부모가 탑다운식으로 자꾸 과제를 부여하면 아이들은 혼자 유연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엄마 나 잘했어?' 엄마가 시킨 거 완수하고 검사받기만 하다 보면 수동적인 아이가 될 수밖에 없죠.


중고등학생 방학의 핵심: 실패할 기회를 주고 스스로 관리하게
Q. 중고등학생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스케줄에 따라서 본인의 삶을 관리하는 훈련을 해줘야 된다, 구조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중요한 건, 아이들이 좀 시행착오를 겪도록 해야 된다. 요새 부모님들이 애가 심심해하는 거 못 견디고, 애가 실패하는 걸 못 견뎌요. 근데 저는 제가 전문가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뭔가 실패했을 때 1분 정도는 속이 상해요. 동시에 '이 실패를 통해서 아이는 엄청 큰 걸 배웠을 거야'. 실수가 엄청난 게 아니라 과정 중에서 자연스러운 거고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아이들한테 인식시켜 주거든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꼭 경험하게 해라. 부모가 다 해주면 시행착오 안 하잖아요? 스스로 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Q. 방학 때 아이들이 심심할 시간을 주고, 오히려 실패할 기회를 주고, 이런 기회로 삼아야겠다.

어설프더라도, 부모가 볼 때는 '왜 저렇게밖에 못하지'라고 생각되더라도. 제가 허벅지 찔러가면서 참으라고 하는데, 그냥 지켜만 봐라. 그리고 '하다가 어려우면 이야기해. 그때 도와줄게' 그러면 과도하게 의존적인 아이가 아닌 다음에는 해보려고 애를 써요. 해보는 데까지 해보다가 막판에 요청합니다. 그때 '엄마 도움이 필요하구나. 어떤 부분에서 막혔어? 어떤 부분을 도와줄까?' 하면서 도와주는 거죠. 아이의 자율성도 기르면서 '너무 나를 방치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안 들게 하면서.

또 아이가 뭔가 하고 있을 때 부모도 TV나 스마트폰을 보지 말고, 책 읽기 싫으면 잡지·신문이라도, 가계부 정리나 필사라도 하면서 '나는 너를 통제하지는 않지만 네 곁에 있어. 도움을 요청할 때 달려갈 준비가 돼 있어'라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해요. '엄마 피곤하니까 네가 알아서 해. 그리고 엄마가 이따 잘했는지 볼게' 점검하는 식이 아니라, '엄마는 늘 네 곁에 기민하게 있지만 네가 스스로 하는 게 좋아. 도움을 요청할 때는 언제든 도와줄게' 적절한 거리 두기와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두 가지 메시지를 동시에 주는 게, 아이들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자율성도 키워주는 멘트가 아닐까.


방학 동안에 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
Q. 방학 동안에 부모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두 가지가 연결돼 있어요.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안 하면, 해야 할 것을 하게 되는 것이죠. 과도하게 통제하지 않는 것, 지나치게 관리하지 않는 것이 '하지 말아야 될 것'이고요. 그 대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아이의) 하루 일과를 무비판적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책 몇 장 읽었어? 숙제 다 마쳤어?' 같은 질문보다는 '오늘 하루는 어떤 마음이었어?'.

'오늘 즐거웠어?' 하면 왠지 즐거웠어야 할 것만 같잖아요. 그렇게 폐쇄적인 질문을 하지 말고 개방형으로 '오늘 어땠어? 오늘 하루 너의 마음에 무슨 일이 있었어? 속상한 일은 없었을까, 즐거운 일은 없었을까?' 이렇게 물어봐주면 좋겠고, 과도한 통제는 가능하면 금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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