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반도체 기업의 끝모를 약진에 힘입어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오늘도 장중 4,600선을 넘어섰다가 4,550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두 기업이 전체 주식시장을 이끌다보니 양극화나 착시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 오늘은 이들 기업보다 현대자동차 주가가 더 크게 튀어올랐습니다. 거래소 종가 기준 무려 13.8% 상승해 35만원을 넘어섰는데, 이 시점에 시장은 왜 현대차를 주목한 걸까요?
오늘 CES 개막...'피지컬 AI' 화두 속 현대차에 쏠린 눈
우리시간으로 오늘 오전 3시, 미국 라이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가 공식 개막했습니다. 나흘 간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Innovators Show Up'(혁신가들의 등장)이라는 슬로건 아래 글로벌 테크기업들이 연구개발한 다양한 첨단기술이 선보였습니다. 올해 CES의 화두는 단연 '피지컬 AI'입니다. 인지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단계로 진화한 AI 기술이, 현실 세계에서는 어떻게 구체적인 제품과 결합해 활용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지컬 AI'는 말 그대로 실제 행동을 수행하는 AI를 의미합니다. 기존 AI는 가상 디지털 세계에서 '딥러닝'을 통해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의 형태로 주어진 질문에 답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피지컬 AI'는 물리적 공간인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행동으로 솔루션을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과는 또다른 복잡한 과정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선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을 '감지'(Sensing)하고, 수집된 센서 데이터를 '인식'(Perception)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하는 '이해'(Reasoning)의 과정, 목적 달성을 위한 행동 경로까지 직접 '계획'(Planning)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몸체가 작동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통해 구현되는 '피지컬 AI'의 '행동'(Action)은 몸체의 특성에 따라 바퀴 구름이나 관절, 팔다리의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단계마다 센서 역할을 하는 카메라와 라이다, 정보를 분석하고 움직임을 설계하는 두뇌, 계획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로봇 기술 등 '피지컬 AI'는 첨단기술의 집약체입니다.
현대차, 모빌리티 로봇 '모베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공개
자동차 제조는 '피지컬 AI'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일찌감치 시작된 자율주행 경쟁은 '피지컬 AI'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다양한 모빌리티에 AI를 탑재하고, 자동차와는 구분되는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면서 축적된 AI 기술이 로봇으로까지 발달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CES에서 현대차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현대차는 이번 CES에서 신차 대신 다양한 로봇을 선보였습니다. 현대차의 로봇 연구생산 조직인 '로보틱스랩'은 차세대 모빌리티 로봇 '모베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모베드'는 너비 74cm, 길이 110cm의 컴팩트한 모빌리티 로봇으로 시속 10km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1회 충전으로 4시간 이상 주행이 가능하고 최대 57kg의 짐을 실을 수 있습니다. 바퀴의 안정성을 AI로 제어해 불규칙한 노면이나 경사로에서도 물류, 배송, 촬영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2022년 CES에서 콘셉트 모델을 처음 공개한 뒤 3년 만에 양산, 판매에 나섰습니다. 올해 1분기로 예정된 '모베드'의 시장 출시는 또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자동차 메이커 현대차가 로봇 생산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현동진 / 현대차 로보틱스랩장>
"(CES에서) 처음으로 로보틱스 분야 최고혁신상을 받았습니다. 로보틱스 기술이 연구 단계를 넘어 일상의 가치를 높이는 수준으로 진화했음을 보여 줍니다."
현대차가 인수한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한발 더 나아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습니다. 아틀라스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무대 위를 걸어 다니고 손을 흔들며 관람객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목과 허리, 어깨, 손목 등의 관절을 360도로 회전하는 모습을 보여 아틀라스가 산업 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할 거라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아틀라스의 개발형 모델은 2년 뒤 현대차 미국 공장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위험이 내재된 환경에서 사람을 대신해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충전소를 스스로 오가면서 쉼 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잭코우스키 보스턴다이내믹스 총괄>
"아틀라스는 제조 환경에서 인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움직입니다. (휴머노이드는) 사람이 아니라 유용한 로봇입니다."
'자동차 메이커 -> 로봇 기업' 진화...로봇산업 기대감 주가에 반영
자율주행차와 AI 모빌리티,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현대차는 이번 CES에서 미래 비전을 펼쳐 보였습니다. 오랜 준비와 지금의 성과를 소개했습니다. 현대차는 일찌감치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로봇을 지목하고 투자를 계속해 왔습니다. 정의선 회장의 의지를 담아 글로벌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자체 조직으로 '로보틱스랩'도 키워나갔습니다. 이 과정에 'AI 스톰'이 불어닥쳐 기술발전에 가속도가 붙은 것입니다.
산업현장을 책임지게 될 '피지컬 AI'는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글로벌 생산, 노동시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모베드와 아틀라스같은 로봇들이 자율 임무수행 능력을 조금 더 키운다면, 이른바 '다크 팩토리'(Dark Factory)가 현실이 되는 날은 머지 않았습니다. '다크 팩토리'는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 불을 켤 필요가 없는 완전 자동화 공장을 뜻합니다. '디지털 트윈'을 통해 실제 공장을 가상 공간에 그대로 복제하고, AI로 모든 공정을 설계한 뒤 피지컬 로봇이 이를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일자리 감소 등이 문제로 거론되지만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AI를 통한 공정 자동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유사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인건비가 비싼 나라들은 산업 생산기지를 저임금 국가로 옮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나마 자국민의 일자리 문제로 최소한의 공장을 영토 안에서 돌리고 있으나 높은 생산비는 경쟁 자체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고 그 자체로서 새로운 산업의 기회가 되는 '피지컬 AI'는 그야말로 게임체인저입니다.
생산시설 본국 회귀 '디지털 리쇼어링'(Digital Reshoring) 기대
선진국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공장을 통해 '디지털 리쇼어링'(Digital Reshoring)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AI·자동화·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해외로 나갔던 생산을 다시 본국으로 되돌린다는 전략입니다. 진일보한 휴머노이드 산업 로봇을 만들면 그 자체가 고부가가치의 수출 품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한 비전을 현대차가 가장 큰 무대에서 시의적절하게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련의 움직임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오늘 현대차 주가는 52주 신고가를 쳤습니다. 삼성과 SK의 반도체 아성을 다른 산업이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로봇을 앞세운 현대차가 진화를 계속되려면 수많은 산을 넘어야 합니다. 아직은 크게 부족한 AI 기술을 키우고 제품에 접목하기 위해 글로벌 선두주자들과 원활한 협업이 필요합니다.
CES에서 현대차는 구글의 인공지능 조직인 딥마인드와 손을 잡았습니다. 미래 휴머노이드 기술 개발 가속화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는 최근 수년간 대규모 멀티모달 생성형 AI 모델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로봇 AI '제미나이 로보틱스'를 고도화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같은 복잡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어하려면 뛰어난 AI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캐롤리나 파라다 구글 딥마인드 총괄>
"로봇의 영향력 확대와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입, 운영을 위해 새로운 모델 개발을 계속할 것입니다."
젠슨황 만난 정의선...엔비디아·구글과 전략적 제휴 모색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비공개로 젠슨황 엔비디아 CEO를 만났습니다. '피지컬 AI'의 중요한 분야인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과 관련한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젠슨황 CEO는 앞서 테슬라와 다른 생태계의 자사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를 공개하면서 인간의 개입이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이 조만간 실현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
"엔비디아는 차량을 직접 제작하지 않고 다른 회사를 위한 (자율주행) 기술을 구축합니다. 우리는 전체 자동차 산업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주가 상승만 놓고 보면 현대차가 CES 참가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가장 짭짤하게 보전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보인 '상승세'를 '대세'로 만들려면 치밀한 전략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한발 뒤처진 자율주행기술을 서둘러 따라 잡고, 모빌리티와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업역을 확대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 내야 하며, 그 분야에서도 강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꼭 필요한 타이밍에 기술강자들과의 협업이 가능하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사진 자료 : 연합뉴스, 디자인 : 정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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