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69년간 1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국민 배우'로 불린 안성기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고인의 삶을, 이주형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기자>
배우보다는 영화배우란 말이 더 잘 어울렸던, 천생 영화배우 안성기 씨가 7년간의 혈액암 투병 끝에 별세했습니다.
향년 74세입니다.
조용필, 이정재, 정우성 등 영화계와 연예계의 수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조문했습니다.
[조용필/가수 (중학교 때부터 친구) : 영화계에 또 별이 하나 떨어지는구나. 친구이지만 그래도 영화계의 큰 별이잖아요.]
60년 훨씬 넘게 영화를 살아낸 삶이었습니다.
다섯 살에 고 김지미 배우와 함께 '황혼열차'로 데뷔한 고인은 여덟 살 때는 저 유명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도 어린이 배우로 출연했습니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성인 배우로 발돋움한 뒤, '고래사냥',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
[너희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어떤 장치도 없다.]
그리고 '라디오스타' 등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최소 150편 이상의 영화에서 천의 얼굴을 보여주며 국민 배우로 인정받았습니다.
[배창호/영화감독 (지난달 20일 안성기 회고전 당시) : 안성기 씨는 단 한 마디로 얘기하면 클로즈업이 아주 좋은 배우, 그러니까 영화 배우.]
특히 고인은 87년 민주화 이후 '칠수와 만수', '성공시대', '개그맨' 등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를 이끈 새로운 흐름의 영화들에서 모두 주연을 맡았습니다.
[안성기 (2017년 데뷔 60주년 기념전 당시) : 컴컴한 그 (영화관) 자리에 앉아 가지고 자기를 어떻게 감동시켜 달라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한 어떤 소중함이 있고요. 그래서 영화를 그냥 좋아합니다.]
정상의 인기 때도 스캔들 하나 없었고 사회 활동에도 무심치 않았던, 절대다수 대중의 사랑은 물론 인품으로도 존경받은 마지막 영화배우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영상취재 : 김세경·김태훈, 영상편집 : 안여진, 디자인 : 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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