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울산의 한 아파트 복도에 쓰레기 산이 쌓여 있다. 지난 28일 발생한 화재로 저장 강박 증세를 보이던 70대 주민이 사망했다.
울산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70대 주민이 베트남전 참전 국가유공자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어제(29일) 오전 찾은 울산 남구 한 아파트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공기와 탄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불이 난 층에 내리자 28일 화재 진압 과정에서 사용된 소화용수가 복도와 엘리베이터 앞까지 고여 있었습니다.
복도 끝에는 옷가지와 가전제품, 음식물 쓰레기 등이 2m 가까이 쌓여 산을 이뤄, 폐기물 처리장이나 고물상을 연상케 했습니다.
쓰레기산은 불이 난 세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쓰레기 더미를 화재 진압 과정에서 집 밖으로 옮기면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세대 현관문을 개방하자, 집 안에는 쓰레기가 성인 남성 키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내부 공간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불이 난 세대에 살던 70대 남성 A 씨는 높이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A 씨는 이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지내온 주민이었습니다.
월남전 참전 유공자였던 그는 매달 정부로부터 월 45만 원 수준의 참전명예수당을 받아왔습니다.
오랜 기간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불이 난 집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A 씨는 수년 전부터 집 안에 쓰레기와 폐가전, 옷가지 등을 쌓아두고 생활하는 등 저장강박 증세를 보였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비닐봉지에 갖가지 쓰레기를 담아 들고 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목격됐습니다.
한 이웃 주민은 "우리 눈에는 쓰레기지만 본인에게는 중요한 물건이라고 여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의 개입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몇 년 전 한 차례 아파트 경비를 들여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도배와 장판까지 새로 해준 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후 다시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고, 정리를 요구하자 '법대로 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구청과 동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여러 차례 찾아와 정리를 권유했지만, 당사자가 강하게 거부하자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화재가 저장강박 의심 가구에 대한 관리 공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A 씨가 쓰레기 집을 만들어가는 오랜 세월 동안, 본인은 물론 이웃들도 악취와 해충 등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행 제도상 지자체가 강제로 개입할 근거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부 지자체에는 저장강박 의심 가구를 지원·관리하는 조례가 마련돼 있지만, 이번 화재가 난 남구에는 관련 제도적 근거가 없는 상태입니다.
소방시설 사각지대도 이번 화재가 참변으로 이어진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불이 난 아파트에는 각층에 옥내소화전 1개씩 설치돼 있을 뿐, 화재를 감지해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는 스프링클러 시설은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소방 당국은 해당 아파트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아파트는 총 10층 규모로, 현행 소방시설법하에서 준공됐다면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입니다.
그러나 1996년 사용승인 당시에는 16층 미만 공동주택에 설치 의무가 없었습니다.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단계적으로 확대됐지만, 개정 이전에 만들어진 아파트까지 이런 의무를 소급 적용하지 않아, 노후 공동주택 상당수가 여전히 스프링클러 없이 방치돼 있습니다.
소방청이 지난 6월 공개한 '전국 노후 아파트 현황'에 따르면, 준공 후 20년이 지난 전국 노후 아파트 9천894곳 중 4천460곳(45.1%)에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지난 28일 오후 6시 56분 울산 남구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이 화재로 70대 주민 1명이 숨졌습니다.
소방 당국은 세대 내부에 쌓인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진화 작업을 벌인 끝에 약 7시간 45분 만에 불을 완전히 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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