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오늘부터 다시 청와대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용산 대통령 시대의 종언, 그리고 청와대 시대의 재출발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날 마지막으로 청와대로 출근했던 게 2022년 5월 9일이니까 1천330일 만의 청와대 복귀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강행한 명분은 '소통'과 '탈권위'였습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탈피하려면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이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각인되면서 그 안에 자리 잡은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불통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아울러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과 비서들이 모여 있는 여민관, 출입기자들이 일하는 춘추관 등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 대통령이 고립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이 있는 곳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비서진과 기자들까지 한 공간으로 모아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 대신, 실무 중심의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내세웠습니다.
용산 이전 비용 최소 832억 원
대통령의 이런 '소통', '탈권위'를 위한 실험 비용은 막대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전 기자회견에서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로 약 496억 원을 책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실제 이전 과정에서 대통령 관저 공사비가 21억 원 늘어났다면서 소요 비용을 517억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올해 국회예산정책처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대통령실 이전을 위해 실제 집행한 예산이 약 832억 1,600만 원이라고 집계했습니다. 당초 밝혔던 예상치의 약 1.7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요?
2022년 용산 이전 직후 정부와 야당은 이전 비용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앞서 말한 대로 500억 조금 넘게 소요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전에 들어간 직접 비용 외에 각종 간접 비용까지 합하면 1조원이 넘는다고 맞섰습니다. 대통령실을 옮기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모든 비용도 다 이전 비용이라며 계산서에 넣은 것입니다. 대통령 경호부대의 이전과 시설 정비, 대통령실 관련 청사와 공관의 연쇄 이동과 관련 부대 비용 등을 포함시켰습니다. 또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주변 도로와 울타리 등의 정비 비용,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동에 따른 각종 군 시설 이전 비용 등도 합산했습니다. 결국 양측의 이견은 해당 예산의 유무와 액수가 아닙니다. 간접비용까지 대통령실 이전 비용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공간을 바꿔 대통령의 소통과 탈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실험에 들어간 비용은 정부쪽 추계로도 최소 832억 원, 더불어민주당 주장대로 그에 수반된 간접비용을 다 포함하면 수천억 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청와대 복귀에 다시 800억 원 이상
정부가 청와대 복구와 관련 시설 정비를 위해 확보한 예비비는 259억 원입니다. 이는 단순히 짐을 옮기는 이사 비용뿐만 아니라, 개방됐던 시설을 다시 집무 및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는 비용이 포함됐습니다. 본관 집무실 재정비와 영빈관 보수, 관저 복구 등 시설 수선과 리모델링,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 벙커) 시스템 재가동과 대통령 전용 통신망 복구 등 보안 · 통신망 재구축, 외곽 경비 초소 재건설과 방호 시설 강화, 경호 인력 숙소 정비 등 보안과 안전시설 복구에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비우고 나온 집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고치고 정리하고 개선하는데 또 300억 원 가까이 들어간 셈입니다. 거기에 국방부, 합참이 연쇄적으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들여야 할 비용은 따로 계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다시 용산에서 청와대로 왕복 이사에 들어간 혈세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1,300억 원 이상, 앞서 살펴본 대로 유관 기관의 연쇄 이동이나 주변 정비 등에 들어가는 간접 비용까지 합하면 몇 천억 원이 될지 가늠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용산 대통령실에 설치했던 각종 첨단 보안 장비와 리모델링 시설들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발생하는 '매몰 비용'은 계산에 넣지 않아도 말입니다.
혈세 쏟아 부었는데 실험은 '폭망'
앞서 살펴봤듯이 윤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와 용산으로 옮긴 명분은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 옛 청와대 시절 대통령들의 '소통 부재'와 '권위주의'는 자주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들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관련 서면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400미터 넘게 떨어진 청와대 본관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야 했다고 진술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용산 시절 초기에는 '소통' 강화를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른바 '도업 스테핑'을 통해 출근길에 잠깐이라도 대통령실 건물 현관에서 출입 기자들과 가벼운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한 건물에 있다 보니 대통령이 언제 출근하고, 언제 퇴근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시작해 채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해 11월에 중단됐습니다. 출근 문답이 이뤄지던 현관에는 아예 출근길을 볼 수 없도록 가림막이 설치됐습니다. 이후 '소통'은커녕 대표적인 '불통' 대통령으로 계엄과 탄핵 사태를 거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궁궐에서 나와 저잣거리 건물에서 일을 한다고 저절로 국민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소통을 하려는 의지, 그리고 이를 시스템으로 만들고 억지로라도 지키게 하는 법제도의 문제입니다. 1,300억 원 넘는 혈세를 허공에 뿌린 뒤 얻어낸 단 하나의 귀중한 교훈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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