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2일 평양 '4.25 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공병부대 환영식을 개최했습니다. 러시아에 파견돼 지뢰제거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공병부대원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개최한 것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도 환영식에 참석했습니다.
김정은은 공병부대의 전투성과를 축하하면서 휠체어를 탄 부상병들을 직접 안아주며 격려했습니다. 또, 작전 과정에서 사망한 9명의 병사들에게는 공화국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 전사의 영예훈장 제1급을 수여했습니다. '4.25 문화회관'에는 이들을 위한 '추모의 벽'까지 마련됐습니다.
휠체어를 탄 부상병들을 안아주는 김정은
김정은은 연설에서 "조국에 바쳐지는 생을 희생이 아니라 영광으로 간주하는 우리 군인들의 숭고한 사상 감정은 그 어느 나라 군대도 따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8월 국가표창수여식에서 포로가 될 위기에 자폭한 병사들을 '양심에 떳떳한 선택'을 했다고 미화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유사시 목숨을 버릴 것을 사실상 계속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그러면서 "동무들과 같은 견실한 군인대오, 강위력한 전투부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김정은과 당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군인들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방청석에서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검은 양복들
그런데, 이날 저녁 다소 의아한 장면이 관찰됐습니다.
김정은은 이날 공병부대원들의 귀국을 축하하는 공연을 개최했습니다. 부대원들과 가족들이 대거 참석했고 김정은도 함께 공연을 관람했는데, 조선중앙TV가 간간이 비춘 방청석을 보면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띕니다.
방청석에서 포착된 검은 양복들, 지난 12일 공연
이들 중 몇 명은 카메라를 담당하는 조선중앙TV의 직원들과 사진 기자들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카메라나 사진 담당 직원이 아닌데 방청석 곳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김정은의 경호원들입니다.
곳곳에 배치된 김정은의 경호원들, 지난 12일 공연
독재체제의 최고지도자 경호원들인 만큼 언제 어디서나 경호를 최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공연 관람장에서 뒷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하면서까지 이렇게 경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일까?
김정은의 다른 공연 관람과 비교해 봤습니다.
지난 10월 9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기념해 열린 러시아예술인들의 공연. 이날 공연에는 김정은이 당시 주북한 러시아 대사였던 마체고라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조선중앙TV가 당시 방송한 화면을 보면 방청석에서 역시 김정은의 경호원들이 관찰됩니다. 카메라맨 뒤에 서 있는 경호원도 있고 방청석 뒤편에 서 있는 경호원도 보입니다. 다만, 이들은 카메라맨 바로 뒤에 붙어있거나 방청석 맨 뒤편에 서서 관람객들의 시야를 최대한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경호하고 있습니다. 또, 관람석에 배치된 경호원 수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12일 공연에서 경호원들이 관람석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지난 10월 러시아예술인 공연 당시 김정은의 경호원들
북한은 왜 많은 경호원을 배치했을까
지난 12일 공연에서 경호원들이 여기저기서 관찰되는 것은 경호원들을 다른 때보다 많이 배치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북한은 왜 지난 12일 공연에 평소보다 많은 경호원들을 배치했을까요?
아마도 공연의 성격을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2일 공연은 러시아로 파병됐다 돌아온 군인들을 위로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뢰제거 작전이라고는 하지만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부상병들도 생겼습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돌아온 장병들이다 보니 병사들의 심리상태는 상당히 격해질 수 있는 상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중앙TV 화면을 보면 공연 중간에 울먹이는 병사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 병사들과 김정은이 함께 공연을 보게 되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호원이 증강 배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공연을 보며 울먹이는 병사들, 지난 12일 공연
겉으로는 충성 얘기하며 속으로는 못 믿나
하지만, 김정은이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한 병사들과 함께 공연을 보면서 혹시 모를 위해를 우려해 경호원들을 증강했다는 것은 상당히 부조화스러운 일입니다. 겉으로는 김정은과 당에 대한 충성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떳떳한 선택'을 운운하며 사실상 목숨을 버릴 것을 강요하면서도 그런 '정신적 조작'에 대한 확신을 내부적으로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정은이 군인들조차 믿지 못한다는 사실은 과거에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9월 김정은은 특수부대의 훈련을 참관했습니다. 각종 격파와 격투기, 극도의 체력훈련 등 인간 병기처럼 단련된 병사들인데, 당시 김정은의 경호원들은 헬멧을 쓰고 소총을 든 완전무장 차림이었습니다. 또, 특수부대원들이 사격훈련을 할 때에는 경호원들이 뒤편에서 경계를 했는데, 총구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고 일부 경호원들은 방아쇠에 손가락까지 걸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특수부대에서의 혹시라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경호원들에게 철저히 대비를 시킨 것입니다.
경호원들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사격하는 군인들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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