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9·10월에 이어 다시 기준금리를 낮췄지만, 한국은행의 동반 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미국과 금리 역전 폭이 1.25%포인트(p)로 줄어서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압박이 다소 줄었더라도, 국민연금·서학개미 등의 달러 해외 투자 수요가 환율을 밀어 올리는 추세가 진정될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내년 1월 15일 통화정책방향 회의 전까지 서울 등 집값 오름세가 뚜렷하게 꺾이지 않을 경우, 금리 인하는 더 요원해집니다.
더구나 연준조차 앞으로 인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은의 신중한 금리 동결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연준은 9∼10일(현지 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3.50∼3.75%로 0.25%p 내렸습니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지난해 9월(-0.50%p), 11월(-0.25%p), 12월(-0.25%p) 잇달아 낮아진 뒤 계속 묶여 있다가 다시 올해 9월과 10월, 이날까지 0.25%p씩 3연속 인하됐습니다.
연준은 의결문에서 "최근 몇 달 고용 하방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한다"며 고용 둔화를 인하의 주요 배경으로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동시에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로 추정되는 범위 안에 있다. 기다리면서 지금부터 경제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지켜보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며 인하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시장에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인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날 공개된 새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도표)에서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중간값)는 3.4%로, 기존 전망치(9월)와 비교해 변화가 없었습니다.
현재 금리 수준을 고려할 때 내년 중 0.25%p 한 차례 정도 추가 금리 인하가 단행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연속 금리 인하로 일단 한은 입장에서는 내외 금리 차, 환율 등 측면에서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습니다.
지난 5월 이후 역대 최대 폭(2.00%p)까지 벌어졌던 미국과 기준금리와 역전 폭이 10월 1.50%p로, 이날 다시 1.25%p까지 축소되면서 자본 유출이나 원/달러 환율 상승 압박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원론적으로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을 크게 밑돌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집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주간(낮) 거래 종가 기준 1,477.1원까지 치솟아 미국 관세 인상 우려가 고조된 지난 4월 9일(1,484.1원) 이후 약 7개월 반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에도 1,460원대 후반∼1,470원대 초반에서 오르내리며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환율 비상' 속에 한은과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국민연금은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을 억제할 해법을 찾고 있고, 기획재정부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외환 수급 대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한·미 금리 격차 축소가 원화 가치 추가 하락 위험을 다소 줄이더라도, 곧바로 원/달러 환율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종화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10일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환율 상승 요인의 70%가 (달러) 수급 요인"이라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자산운용사, 개인 등이 여러 목적에 의해 상대적으로 수익이 높은 해외에 투자하면서 달러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달러 수급 요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내외 금리 차 축소만으로는 원화 가치 하락을 막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지난달 27일 통화정책방향 직후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환율 상승은) 한·미 금리 차 때문이 아니고, 단지 해외 주식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젊은 분들이 '쿨하다'면서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데, 환율이 변동될 때 위험 관리가 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만의 유니크한 상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실제로 환율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다음 달 15일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도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고 올해 7·8·10·11월과 마찬가지로 다시 동결을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집값 문제도 남아있습니다.
한은 관계자는 10일 '금융시장 동향' 브리핑에서 "전반적으로 수도권 가격 상승 폭이 줄고 있지만, 핵심 지역의 가격 둔화세가 더딘 만큼 계속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주택 거래량의 경우도 10·15 이후 서울 아파트 거래가 현저히 줄었지만, 경기·인천 지역에서 그다지 감소하지 않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년 1월에도 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면, 부동산을 다시 자극할 위험을 감수하고 한은이 무리하게 금리를 낮출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들도 집값과 환율이 안정되고, 내년 경기 회복세가 예상만큼 강하지 않을 경우에나 한은이 금리 인하를 재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내년 4월 한은 총재 교체 이후 경제 상황에 따라 1∼2회 인하가 있을 수도 있다"며 "내년 성장률 상승이 대부분 기저효과 때문인데, 하반기로 갈수록 기저효과가 약해져 경기 우려가 확산하면 한은이 금리 인하를 고려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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