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을 22대 국회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당이 조국혁신당입니다. 역시 가장 주목받았던 때는 조국 대표의 사면 소식이 알려졌을 즈음입니다. 한산했던 아침 회의장이 기자들로 북적대고, 비공개 회의 때 나눴던 대화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백브리핑을 기다리는 기자들도 여럿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때 회의에 참석했던 한 당 관계자는 "창당 이래 기자님들이 가장 많이 오셨네"라고 농담할 정도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날은 모자란 좌석 때문에 의원들과 기자단 자리를 재배치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다 조국혁신당 내 성비위 문제가 다시금 불거졌습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조국 대표의 '예상 파괴력'이 확연히 떨어지면서, 기자들의 발길도 다시 뜸해졌습니다.
그러다 어제, 다시 회의장에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일요일에 열린 비정기 기자간담회였음에도 불구하고 20명 안팎의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지난 5일, 조국혁신당이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법이 위헌 소지가 있고, 그에 따라 재판이 오랫동안 정지될 수 있는 만큼 일부 조항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한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민주당과 협력하며 '범여권'으로 분류됐고, 보다 선명하고 강경한 주장을 내놓아 왔는데, 민주당의 중점 추진 정책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려는 시도를 보였던 데에 기자들이 관심을 보인 겁니다.
간담회에서 나온 세부 내용은 더욱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법 외에도 필리버스터 요건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집회시위 금지 구역에 대통령 집무실도 포함하는 집시법 개정안, 이른바 허위조작근절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정당 현수막 관리를 강화하는 옥외광고물법 등에도 반대했습니다. '가치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현상에 즉자적 대응하는 식의 개정안이고, 실익 없이 논란만 불러일으킨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조국혁신당의 한 의원은 "최근 들어 민주당의 행보가 도를 넘은 것 같아 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 조국혁신당의 대안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갔는데, 그 가운데에는 '이런 스탠스를 취한 이유'에 대해 간접적이고 조심스러운 질문도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소수당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과 소수정당 간 옛 협상 결과와 관련됐느냐'는 취지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들이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요구해 왔고 공식적으로는 민주당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었지만, 실제 성과에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택한 전략이 아니냐는 건데, 일단 서왕진 원내대표는 "원탁회의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추진하고, 오늘은 개혁진보 4당과 광장의 시민 목소리를 수렴하자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질문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시점 역시 도드라졌습니다. 조국혁신당이 공식적으로 내란전담재판부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날은, 내년 6.3지방선거를 180일 앞둔 날이었습니다. 이날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홍보물 발행 등이 제한되는 등 '선거의 막이 올랐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이죠. 조국혁신당은 국민의힘 광역단체장을 '제로'로 만들겠다, 3인 이상 선출하는 선거구에는 최소한 한 명씩 당선자를 내겠다는 등 큰 줄기의 지선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호남에서 민주당과 경쟁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범여권 내에서 어떤 성격의 자리를 얼마나 크게 차지할 수 있을지, 민주당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그에 따라 민주당에게 얼마나 요구할 수 있는 위상을 갖출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걸로 보입니다. 복수의 당 관계자는 "지방선거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논의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시기상 당의 위치를 환기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조국 대표 체제가 공고해진 이후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또, "조국 대표 복귀 후 '당 2막'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도 언급했습니다.
반대로 우려하는 지점도 명확합니다. 내란전담재판부법 관련 발표를 하기 직전인 지난주 중순쯤 조국혁신당의 한 당직자는 "이런 내용의 발표를 하려고 하는데, 내란에 대해서 우리의 스탠스가 바뀌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의원은 어제 발표 이후 "유튜브 댓글을 보니 우리를 비난하는 댓글이 늘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어제 간담회 내내 당 의원들은 "내란 척결을 위해서 낸 의견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집권한 집권당이라 생각한다"며 내란 척결에 대한 의지가 분명함을 강조했지만, 실제 여권 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다만 확실한 건, 이번 일련의 행보로 최소한의 존재감은 확실히 얻어냈단 겁니다. 남은 건 민주당 안에서조차 치열하게 벌어지는 내란 척결 방식과 정도, 속도에 대한 논의의 파도를 쇄빙선을 자처한 조국혁신당이 얼마나 잘 타고 넘느냐일 겁니다. 특히 광복절 사면 이후 '지나친 광폭 행보 논란'과 당내 성 비위 문제로 내우외환을 겪은 뒤 결국 주목도가 꺾였던 조국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키를 어떻게 돌리느냐가 그 핵심일 겁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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