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바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지난달 17일 오후 3시쯤 직장에서 근무 중이던 40대 남성 A 씨에게 걸려 온 전화는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어제(7일) 경찰 등에 따르면 발신자는 자신을 '대검찰청 사무장'이라고 소개하면서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돼 등기를 보냈는데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발신자는 "못 받았다"는 A 씨의 대답에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어 다른 발신자가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대검찰청 검사'를 사칭하면서 "계좌가 범죄와 관계없다는 피해자 입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금융감독원의 출입 허가증을 받아야 하니 휴대전화와 유심칩을 새로 구입하고 텔레그램으로 보내는 원격조종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소개한 또 다른 남성은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는데 처분을 임시로 해주겠으니 호텔로 들어가라"며 A 씨가 당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호텔과 에어비앤비 숙소 4곳에서 번갈아 가면서 투숙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A 씨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구속된다"며 윽박질렀고, A 씨 휴대전화에 깔린 앱을 이용해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면서 이동 시에는 "허락 없이 어디에 가느냐"며 압박했습니다.
또 A 씨에게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자산을 국가코드로 등록해야 한다"며 "현금보다 골드바가 처리가 빠르니 골드바를 구매해서 전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계속된 압박에 속은 A 씨는 지난달 21∼28일 6차례에 걸쳐 총 6억2천만 원 상당의 골드바를 구매해 보이스피싱 조직 수거책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매번 수원 영통역, 안산 사리역, 인천 부평역, 인천 경인교대역, 서울 신촌역·대방역으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범행을 이어갔습니다.
A 씨는 골드바를 6번째로 전달한 28일에야 자신이 사기 범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A 씨에게 2억 원을 빌려준 누나가 보이스피싱을 의심, 직접 동생인 A 씨의 숙소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서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며 스스로를 자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천 부평경찰서는 피해 액수가 많은 데다, 추가 범행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해 강력팀 형사 등 20명으로 수사전담반을 꾸리고 추적한 끝에 1차 수거책인 60대 남성과 2차 수거책인 30대 남성 B 씨 등 2명을 붙잡았습니다.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른바 '던지기' 방식으로 지정한 장소에 골드바를 가져다 놓았고 이후 행방은 모른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3차 수거책 등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들도 검거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했으며, A 씨와 유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습니다.
경찰청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4조 원을 넘어섰으며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으로 '셀프감금'까지 당한 피해자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며 "신분증이나 서류까지 보여주면서 공신력 있는 기관을 사칭하니 범죄에 연루됐다는 착각에 빠져버리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수사관들은 신분 노출을 최소화하는 만큼 먼저 신분을 노출하고 각종 요구를 하는 경우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해야 한다"며 "계속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시민들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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