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정신의 핵심은 규칙을 준수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기를 보다 보면 갖가지 추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선수들이 꽤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슈퍼스타라면 파문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사고뭉치로 악명을 떨친 스타들 가운데 대표적 '코트의 악동'으로 불리는 테니스의 존 매켄로와 프로농구의 데니스 로드먼을 소개합니다.
심판에게 대들며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던 매켄로
존 매켄로는 1959년 2월에 태어난 선수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레전드 스타입니다. 윔블던 3회, US 오픈 4회 등 모두 7차례나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 타이틀을 차지했는데요, 왼손잡이의 특성을 살린 서브와 동물적 감각의 발리를 주특기로 구사하며 독특한 플레이로 테니스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비외른 보리, 지미 코너스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구축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지요.
그런데 이 선수를 가장 미워했던 사람들이 바로 심판이었습니다. 매켄로가 거의 대부분 심판들과 싸웠기 때문입니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오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정이 나오면 매우 거칠게 항의하며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고 심지어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농담 좀 그만하시지요' 등 숱한 어록 제조
당시 매켄로 경기를 맡은 심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섰다고 하는데요, 경기 중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켄로가 주심에게 대든 것은 무수히 많은데요, 너무나도 유명한 사례가 1981년 최고 권위의 윔블던 대회에서 나왔습니다. 1회전 경기에서 매켄로가 서브를 했는데 공이 라인 위에 떨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라인을 그린 흰 가루가 흩날리는 게 보였거든요. 매켄로는 서브 에이스임을 확신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심은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매켄로는 곧장 주심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하며 스포츠 역사에 영원히 남을 어록을 남겼습니다.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 농담하는 거냐고요? 공은 라인에 떨어졌습니다. 하얀 가루가 날렸습니다. 분명히 선 안에 들어왔어요. 어떻게 당신이 아웃이라고 판정할 수 있나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실수를 할 수 있나요?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아웃이라고요?"
매켄로가 말한 'You can not be serious'는 원래 직역하면 당신은 진지해질 수 없다는 뜻인데요. 의역을 하면 '농담 좀 그만하시지요' 정도로 번역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스포츠는 물론 여러 분야에서 참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매켄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대회 준결승에서는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향해 '인류의 수치'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주심은 곧바로 비신사적인 발언으로 간주해 벌점을 부과했는데요, 당연히 매켄로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주심에게 다가가 내가 나한테 한 말인데 무슨 벌점을 주냐고 큰 소리로 따졌습니다.
"나한테 하는 말도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인류의 수치란 말은 주심이 아니라 나한테 한 말이에요. 그 말은 분명히 나에게 한 것입니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대답해 보세요, 주심. 제발 대답하세요."
마음에 안 드는 판정 나오면 라켓에 분풀이
매켄로는 심판하고만 싸운 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관중과도 언쟁이 벌어져 그야말로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는데요, 불만이 있을 때마다 라켓을 집어던지고 부러뜨렸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49살에 한 대회에 나왔는데 여기서도 화를 참지 못하고 라켓을 집어던져서 '성격은 쉽게 안 바뀐다'는 말을 실감케 했습니다.
매켄로는 1999년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미국 유명 영화배우인 테이텀 오닐과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했습니다. 은퇴 후 12년간 프로 투어를 중단했던 매켄로는 2006년부터는 복식 대회에 다시 출전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테니스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7시즌 연속 '리바운드 왕' 로드먼, NBA 대표 악동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 프로농구 즉 NBA 코트의 대표적 악동은 누가 뭐래도 데니스 로드먼입니다. 그는 1961년 5월에 태어났는데 가정이 좀 복잡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 공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군인이었는데 로드먼이 3살 때 가족을 버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4명의 다른 여성들에게서 27명의 자녀를 얻기도 했는데 로드먼의 말에 따르면 다 합치면 무려 47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로드먼이 처음부터 스타는 아니었습니다. 1986년 2라운드 27순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에 입단했는데 리바운드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5년 명가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황제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핀과 힘을 합쳐 NBA 파이널 3회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했지요. 특기는 거친 몸싸움이었는데, 수비의 귀재로 불렸고, 물불을 안 가리고 상대의 공을 기어이 뺏는 허슬 플레이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신장 204cm, 체중 95kg인데 자신보다 훨씬 큰 상대, 심지어 공룡 센터 샤킬 오닐과도 몸싸움을 펼쳤습니다. 마이클 조던과 피핀이 뜯어말리는 장면이 농구팬들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데요. 이런 투지 덕분에 1991-92 시즌부터 1997-98 시즌까지 무려 7시즌 연속 리바운드왕을 차지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해 성공한 사례라고 봐야 되겠지요.
경기 중 카메라맨 폭행해 큰 물의
로드먼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야말로 눈에 확 띄는 선수였습니다. 걸핏하면 상대편 선수와 싸워 자주 퇴장을 당했고, 온몸에 새긴 문신과 알록달록한 머리염색, 그리고 코와 귀에 피어싱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사고는 경기 중에 저질렀습니다. 1997년 1월 15일 팀버울브스와의 경기에서 중계방송에 투입된 카메라맨을 폭행해 세계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범죄 행위이었습니다.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날린 로드먼은 카메라맨 유진 아모스에 걸려 넘어졌는데요, 화가 치민 나머지 아모스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맨은 원래 그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로드먼은 화풀이를 엉뚱하게 한 것이지요. 이 사건의 파장은 컸습니다. 거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스타가 아무 죄 없는 카메라맨을 폭행했기 때문입니다. 로드먼은 아모스에게 200,000달러의 합의금을 내고 11경기 출전 금지를 당했습니다. 출전 정지당한 11경기 연봉은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약 1백만 달러를 잃고 말았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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