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수 정치가 윤 부부에 이용당했다" [취재파일]

김용태가 말하는 계엄 1년: 보수 정치의 사유화

"보수 정치가 윤 부부에 이용당했다" [취재파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첫 문장은 절박해 보였다. 하지만, 절박함이 증오심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를 토하는 호소문' 한 문장 한 문장은 국회에 대한 서슬 퍼런 적개심으로 얼룩져 있었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그의 시선 속, 야당이 다수였던 국회는 '괴물'과 동의어였다. 문장이 바뀔 때마다 그의 언어는 더욱 격렬해졌다. '범죄자 소굴'에서 '체제 전복 세력'으로 국회의 사악성은 점증됐고, 급기야 국회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수식됐다.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인터뷰 - 계엄 1년

2024년 12월 3일 10시 28분. 대한민국은 아닌 밤중에 헌정사 길이 남을 흑역사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1시 3분, 객쩍은 계엄령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이 있었다. 190명 참석, 190명 전원 찬성이었다. 대통령 윤석열의 '155분 천하'는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랐고, 그는 지금 철장 안에서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계엄 해제 결의안은 계엄 이후 펼쳐질 정치 격랑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민주당 의원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 당시 집권 여당, 국민의힘 의원 18명도 표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곽규택, 김상욱, 김성원, 김용태, 김재섭, 김형동, 박수민, 박정하, 박정훈, 서범수, 신성범, 우재준, 장동혁, 정국, 정연욱, 조경태, 주진우, 한지아 의원.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인터뷰 - 계엄 1년

역사에 기억될 순간을 함께 했던 그들이었지만, 서로의 정치 행보가 꽤나 엇갈렸던 점은 역설적이다. 누구는 오른쪽 공간을 파고 들며 당권을 쥐었고, 또 누구는 아예 민주당으로 이적해 새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누구는 확성기를 들고 투쟁의 선봉에 섰지만, 또 누구는 침묵의 나선에 휩쓸려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계엄과 탄핵, 윤 전 대통령 체포와 한남동 관저 앞 집결 논란,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 교체 파동과 그렇게 맞이한 대통령 선거, 새 지도부가 선출된 전당대회까지, 정치 일정의 빠른 회전율만큼이나 그들의 정치 격변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정치의 다이내믹, 더 정확히는 계엄의 다이내믹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풍경들이다. 역시, 정치는 생물이다.

분명한 점은 당 중심부에 있든 주변부에 있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의 정치는 당에 긴장감을 불어 넣으며 나름의 역할을 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국민의힘 현주소를 말할 때 그들의 정치를 소환해야 하는 이유다.

계엄 1년, 그들은 이 정치 격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SBS 국회팀이 계엄 1년을 맞이해 이들 18명 가운데 몇 명을 추려 이야기를 들었다.

그 첫 순서,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이다.
 
김용태 의원은 누구?
1990년생. 국민의힘 최연소 의원이다. 지역구는 경기도 포천시·가평군이다. 2018년 바른정당 바른정책연구소 연구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 2021년 5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청년최고위원이 됐다. 당시 친이준석계를 뜻하는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은 정치인 김용태를 대중에 각인시킨 표현이었지만, 지금 이들은 각기 다른 정치 행보를 걷고 있다. 김용태 의원은 당에 남아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 5월, 대한민국 보수 정당 역사상 최연소 당수인 비대위원장이 됐다. 대선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를 핵심으로 하는 5대 개혁안을 던졌지만, 당내 거센 반작용에 직면했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는 고초도 겪었다.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며, 당 개혁 메시지를 자주 내놓고 있다.

Q. 1년 전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어떻게 접했나.
A. 12월 3일 밤 10시 30분쯤이었다. (지역구인) 포천에 있는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이야기를 보좌관한테 전해 들었다.

Q. 듣자마자 무슨 생각이 들었나?
A. 2024년에 계엄이라는 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지 않나. 나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북한 도발과 같이 유사시 선포하는 거라고 이해하고 있었을 거다. 당시에는 정말 북한 도발로 인한 전면전 상황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Q. 바로 국회로 갔나?
A. 본능적으로 국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의원들이 지금 있어야 할 곳은 국회라고 생각했다.

Q.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은 언제 알았나.
A. 그 당시 민주당에서 계엄 선포설을 많이 제기했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2025년에 어떻게 계엄이 있을 수 있느냐며 맞받았었고. 사실 나도 계엄법 조항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 계엄 해제 권한이 국회에 있다는 걸 그 당시에는 몰랐던 거다. 국회로 이동하는 과정에, 계엄 해제 요구를 국회가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알게 됐다.

Q. 도착했을 때 국회는 봉쇄돼 있지 않았나.
A. 아수라장이었다. 이동 중에 포고령을 확인했다. 포고령에 정치 활동을 금한다라는 내용들이 있다. 국회로 이동하면서 군부대가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계엄이 선포된 게 이런 거였구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Q.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 분위기는 어땠나.
A. 계엄 해제 요구에 대한 국회 권한을 국민의힘 의원들이 잘 몰랐던 것 같다. 의원들 온라인 단체방이 있는데, 여기에서 경찰이 국회 본청 국회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원총회 장소를 당사로 변경해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도 국회 주변에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좌진한테 건네받고, 그걸 공유하기도 했다.

Q. 의원총회 장소가 국회에서 당사로 바뀐 게 문제가 되고 있다.
A. 장소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무조건 뚫고서 국회로 모였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어쨌든 당사에 모인 뒤에, 의원들이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국회로 이동하자고 해서 의원총회 장소가 한 번 더 국회로 바뀌었다.

Q. 그래도 계엄 해제 표결을 했다. 당시 원내대표실에 있지 않았나?
A. 그렇다. 당사에서 원내대표실로 이동을 했었다. 그 당시에도 이 계엄이 불법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지금이야 결과적으로 계엄이 불법이란 점을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자세한 정보가 없었다. 다만,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결의를 통해 평시로 만들어야 한다, 좀 민주적인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생각이 있었다. 의원들마다 저 마다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나는 원내대표실에서 본회의장으로 이동해서 해제 요구에 참여했다.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해제 요구에 참여했을 거다.

Q. 어쨌든 지금 계엄 표결 방해 의혹으로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내란 특검에서 참고인 조사도 받았었는데?
A. 아무래도 내가 원내대표실에 있다가, 유일하게 계엄 해제 요구에 참여했다 보니까 특검에서는 나를 중요 참고인으로 보고 있더라.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인터뷰 - 계엄 1년

Q. 왜 주요 참고인으로 보고 있을까?
A. 계엄 해제 표결을 하러 가는데, 혹시 원내대표실에서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원내지도부가) 표결을 방해한 거 아닌가, 이런 것을 좀 캐묻기 위해서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Q.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방해를 받았나?
A.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그 누구도 (표결하지 말라고) 말린 사람이 없었다. 그걸 특검에 그대로 말했다. 지금 추경호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에 오해와 억측이 있다. 특검은 표결 방해 혐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적어도 내가 그 과정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계엄에) 동조하거나 이런 것은 전혀 보지 못했다는 점을 좀 말했다. 특검도 뭔가 결론을 내놓고 수사를 진행하기보다는, 이 과정에서 좀 사실을 바로잡는 게 맞다. 오해와 억측이 풀렸으면 좋겠다.

Q. 그래도 당시의 혼란은 안타깝다.
A. 국민에게 부끄러운 말이지만, 당시 리더십이 부재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당시 국민의힘이 여당이었지만,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 모르게 계엄을 선포한 것도 사실이다. 일단 의원들이 국회 본청으로 모일 수 있도록, 집결할 수 있는 조치를 지도부가 취했다면 어땠을까. 의원총회 장소가 당사냐 국회 본청이냐를 두고 우왕좌왕했던 건 참 죄송한 일이다.

4일 새벽 국회 본청에 진입한 군 병력이 국민의힘 당대표실쪽에서 본회의장 으로 진입하려 하자,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진입을 막고 있다. 2 (사진=연합뉴스)

Q. 특검이 어떤 사실을 바로잡아야 할까?
A.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12월 3일날 윤 전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이유로 모르고 있다. 대통령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잘 모른다. 불법 계엄 선포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Q.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는 어땠나.
A. 군인들이 복귀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대통령이 제2차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계속 나오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긴장은 계속됐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받아 들인다는 기자회견이 있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국회에 상주하면서 계속 촉각을 곤두세웠던 기억이 난다. 그게 한 새벽 4시쯤이었다.

Q. 대통령은 대체 왜 계엄령을 선포했을까.
A. 정말 모르겠다. 계엄 선포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도, 나는 정말 모르겠다.

Q. 일각에서는 계몽령이라는 말도 여전히 하고 있지 않나.
A. 윤 어게인이라고 하는 분들이 그런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구국의 결정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며 계엄의 정당성을 부여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있다. 말도 안 되는 거다.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대통령 부부의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서 계엄령이라는 것을 선포했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 보수 정치가 대통령 부부에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Q.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지난 1년,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1년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A. '정치 극단화'다. 계엄 이전,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의 입법 횡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인 정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극단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로 보낸 건 굉장히 무모한, 매우 수위 높은 극단적 행동이었다. 양당이 이런 극단적인 정치 속에서, 계속 국민들을 향해서 정치 혐오감을 부추겨 왔던 거 아닌가 싶다. 지금도 그렇다. 민주당은 개딸이라는 극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극단적인 정치를 하고 있고, 우리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이라고 불리는 분들을 통해 역시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먼저 그런 극단적 정치에서 나와 상식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많은 국민들한테 정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인터뷰 - 계엄 1년

Q. 그래도 지난 1년, 국민의힘 의사결정 가운데 이건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A. 일단은 내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계엄에 대해서 사과하고, 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하고 절연한 것에 있어서는 잘한 일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보수 정치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 이용 당했다는 것이 보다 더 선명해지고 있다. 우리가 더 빨리 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찌든 국민들이 기대했던 보수 정치를 보여드리지 못한 점을 사과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Q. 아쉬운 점은?
A. 계엄 이후에 우리가 처리했던 과정들 전반이다. 가령, 당시 계엄 해제가 됐고, 민주당이 1차 탄핵안을 제시했었다. 1차 탄핵안 문구 중에, 민주당은 한미일 외교 이 부분까지 탄핵 사유로 들었는데, 당연히 우리가 동의할 수도 없고 탄핵 근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반대를 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어떻게 처리했었어야 되었느냐의 문제가 남는데, 당시 우리는 대통령의 하야,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했지만 관찰하지 못했다. 민주당 탄핵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의 탄핵안을 고민해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는 작업들을 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당시에 18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를 했다. 이후에 더 많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리도 들어갔었어야 하는데, 당시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다 보니까 그걸 뚫고 들어가지 못해서 표결할 수 없었던 경우가 있었다. 죄책감을 갖고 있고,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다. 이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