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 실종 여성 시신이 발견된 저수조
청주 장기실종 여성 살해 사건은 경찰의 부실한 초동 수사로 자칫 미제로 남을 뻔했습니다.
경찰은 살인범 김 모(50대) 씨가 실종자의 전 연인으로, 해를 가했을 수 있다는 유족들의 초기 진술을 확보하고도, 정작 김 씨를 불러 조사한 것은 실종 3주가 지나서였습니다.
게다가 사건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경찰이 전담수사팀을 꾸린 시점에는 도로 CCTV 영상 보관 기한이 이미 만료돼 핵심 단서가 될 실종자 차량의 행적이 미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오늘(28일) 언론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에 A 씨의 실종 신고가 처음 접수된 건 지난달 16일이었습니다.
당시 A 씨의 자녀는 "혼자 사는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신고했습니다.
조사 결과 A 씨는 신고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오후 6시 10분쯤 청주 옥산면의 회사에서 SUV를 몰고 퇴근한 뒤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A 씨의 차량은 실종 당일 오후 11시 30분쯤 진천군 모처에서 행적이 끊겼고, 휴대전화도 꺼진 상태였습니다.
A 씨 가족들은 초기 경찰 조사에서 "A 씨가 전 연인 김 씨와 자주 다퉜다. 김 씨가 해를 가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A 씨가 극단 선택을 했을 만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A 씨의 실종 사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범행 가능성을 우려한 김 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건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무려 3주나 지난 뒤였습니다.
김 씨는 실종 당일 A 씨 주변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알리바이가 없었습니다.
그는 당일 저녁 자신이 운영하는 진천 소재 폐기물 업체에서 퇴근한 뒤 이튿날 오전 5시가 넘어서야 귀가했고, 10분 만에 다시 집을 나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미심쩍은 행적에 대해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경찰은 뒤늦게 김 씨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을 했고, 그 결과 사전에 도로 CCTV 위치를 검색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A 씨가 실종된 지 약 한 달 만에 부랴부랴 전담수사팀을 꾸렸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A 씨 차량의 동선을 추적했지만, 너무 지체한 탓에 일대 도로 CCTV 등의 영상 보관 기한이 만료된 것이었습니다.
초동 수사 때 차량 추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경찰은 A 씨 차량의 번호판만 추적했는데, 정작 김 씨는 범행 후 차량 번호판을 바꿔 달고 이동했기 때문에 수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수사팀은 뒤늦게 확보할 수 있는 일대 도로 CCTV 영상을 모두 분석해 A 씨 차량과 같은 차종의 SUV를 걸러내고, 그 행적을 좇았으나 소득은 이 역시 제한적이었습니다.
실종 이튿날인 지난달 15일 오전 3시 30분쯤 청주 외하동의 한 도로에서 A 씨 차량의 모습을 추가로 발견했지만, 더 이상의 행적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이쯤 되자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 사건이 미제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씨의 행적에 의문점이 많았지만, 무작정 검거할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A 씨 차량의 행적도 묘연하고, 범죄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김 씨를 검거했다간 금세 풀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수색 범위를 확대하면서 경찰 수사에 활기가 띠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4일 김 씨 거래처인 진천의 한 업체에서 무려 실종 40일 만에 문제의 SUV가 발견된 것입니다.
경찰은 김 씨가 이 차량을 은닉한 것으로 보고 추적에 나섰고, 이틀 뒤인 26일 김 씨가 SUV를 몰고 이동하는 장면을 포착해 당일 그를 긴급체포했습니다.
경찰은 SUV 내에서 혈흔과 인체조직이 발견된 점을 토대로 김 씨를 추궁했고, 그는 결국 범행 일체를 시인했습니다.
경찰은 지난 27일 김 씨가 시신 유기 장소로 지목한 음성의 한 거래처 폐수처리조에서 마대에 담긴 A 씨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A 씨 실종 사건이 접수된 지 44일 만입니다.
앞서 경찰은 김 씨가 A 씨 실종 직후 수일에 걸쳐 해당 업체를 방문한 정황을 파악했으나, 단순히 거래처를 방문한 것으로 보고 범행 관련성을 크게 의심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김 씨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고 시신 유기 장소를 진술하지 않았다면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한편 경찰은 구속을 앞둔 김 씨를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추가 조사 중입니다.
(사진=독자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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