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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터지는 줄 알았는데"…홍콩 덮친 화마에 시민들 '망연자실'

"폭죽터지는 줄 알았는데"…홍콩 덮친 화마에 시민들 '망연자실'
▲ 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고층 주거단지에서 불이 나 일대에 붉은 연기가 번지고 있다.

"처음엔 그저 폭죽 소리인 줄 알았어요. 아파트 단지 전체가 보수 공사 중이어서 주민 대부분이 창문을 닫아뒀고, 그래서 화재 경보도 듣지 못했습니다."

수십 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여겨지는 화재 사고가 발생한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아파트에서 가족과 40년 이상 살아온 60대 여성 응은 26일 오후 화재 상황을 떠올리며 AFP통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2천 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 19층에서 살다가 화재 발생 후 황급히 대피했습니다.

주민 60대 남성 위엔도 "이 동네에는 휠체어나 보행 보조기를 사용하는 고령 주민이 많은데, 다들 당장 잘 곳도 없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AFP는 현장에 모인 시민들이 실종된 가족이나 지인의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충혈된 눈으로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취재진은 타들어 가는 나무에서 '파지직' 거리는 파열음이 들렸고, 밀집한 아파트 건물이 거대한 불기둥이 돼 연기와 재를 뿜어냈다고 화재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7일 새벽녘까지도 피해 건물의 전(全) 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공기 중에는 잿가루가 퍼졌고 불탄 플라스틱의 악취가 풍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홍콩 화재 구조자 (사진=AP, 연합뉴스)
▲ 병원으로 이송되는 홍콩 화재 구조자

AFP에 따르면 사회복지사와 시민들은 현장에서 대피한 노인들에게 담요와 베개 등을 나눠주는 등 봉사활동을 벌였습니다.

29세 자원봉사자 로건 융은 구조작업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지원을 계속하겠다면서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무력감과 비통한 심정을 호소했습니다.

50대 주부 셜리 찬은 "불이 나는 것을 지켜봤지만,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며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57세의 타이포 주민은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으나, 노인이든 아이든 모든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언론은 화재 진압 작업과 동시에 당국이 대형 버스를 이용해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인근 아파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도 대피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진화 작업을 위해 주변 고속도로가 폐쇄됐고, 일부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며, 현지 경찰은 피해 아파트의 창문을 폴리스틸렌 보드가 막고 있어 화재가 더욱 빠르게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건물 보수에 사용된 대나무 비계와 자재를 타고 주변 건물까지 불이 확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1983년 준공된 노후 아파트로 지난해 7월부터 보수 공사용 대나무 비계와 녹색 그물 자재로 건물 외부가 덮여있었습니다.

이 비계와 그물을 타고 불이 번지면서 26일 오후 발생한 화재는 이튿날인 27일 아침까지도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번 화재로 현지시간 오전 8시 15분 기준 소방관(1명)을 포함해 4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약 279명이 실종 상태이고 구조된 인원 중 45명이 중태에 빠져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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