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스에 의해 인질로 끌려갔다가 이스라엘군의 구출작전에 지난해 2월 생존해 귀환한 루이스 할.
"살아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2년 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가자지구 남부 접경지역인 이스라엘 니르 이츠하크 키부츠(집단농장)에서 납치됐다 129일간의 억류 생활 끝에 이스라엘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루이스 할(71)은 연신 자신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행운이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할은 지난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 인질광장에 마련된 '가족의 방'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하마스에 의한 납치 과정과 이스라엘군의 전격적인 구출작전, 구출된 이후의 삶에 대한 얘기를 풀어놨습니다.
하마스에 납치됐다가 구출되거나 석방된 이스라엘 인질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자전쟁을 촉발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당시 아르헨티나 출신인 할은 오전 6시 29분 니르 이츠하크 키부츠 내 자택에서 폭발음, 총격 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았습니다.
자신의 집을 방문했던 연인 클라라(63)와 그의 가족 3명과 함께였습니다.
위기 상황을 감지한 그는 곧바로 클라라 가족과 함께 자택 내 비상대피 공간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총격을 가하며 침입한 하마스 무장대원들에 의해 끝내 할을 비롯한 5명은 가자지구로 끌려갔습니다.
하마스는 할 일행을 픽업트럭에 태워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접경을 넘은 뒤 다른 하마스 요원들에게 인계했습니다.
하마스 요원들은 이들을 어두운 지하터널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거미줄 같은 지하 터널을 구축하고 은신, 작전 공간으로 삼아왔습니다.
할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면서 "우리는 세상의 끝에 와있다고 느꼈다"며 당시 두려웠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할 일행은 터널 안에서 한참을 뛰어야 했고, 어느 순간 사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들은 다시 차량에 태워져 잠시 이동한 후 가자지구 라파의 2층짜리 빈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하마스 대원 5명의 감시 속에 2층 거실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인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마스가 빵과 통조림 고기를 음식으로 제공했지만 억류 생활이 길어지면서 제공되는 음식의 양도 적어져 아끼고 아끼면서 버텨야 했습니다.
할은 억류 기간 체중이 16㎏이나 빠졌습니다.
할은 기나긴 인질 생활에 "어떻게든 매 순간을 견디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마스가 대화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인질들의 공간인 2층 거실의 좁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오늘은 몇 걸음을 걸었는지 세어보기도 하고, 지나간 얘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인질 협상에 따라 억류 50여 일 만에 총 5명의 인질 중에 남성인 할과 클라라의 남동생인 페르난도(61)를 제외한 여성 3명은 석방됐습니다.
억류 129일째 되던 2024년 2월 12일 새벽, 할은 큰 폭발음에 놀라 잠을 깼습니다.
눈앞에서는 총알이 빗발쳤습니다.
이스라엘 군(IDF)이 전격적인 구출작전에 나선 것입니다.
"루이스, 루이스, IDF, IDF, 우리가 당신을 데리러 왔어" 구세주 같은 이스라엘군의 외침이었습니다.
전광석화 같은 작전에 하마스는 제압됐고, 이스라엘군의 무선 통신에서는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할과 페르난도를 무사히 구출했다는 이스라엘군의 무선 통신내용이었습니다.
할은 "그 말을 듣고 '아, 다이아몬드가 나구나'라고 이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할과 페르난도를 데리고 가옥을 나와 뛰기 시작했고, 이내 잇따라 차량과 긴급 투입된 헬기를 타고 무사히 가자지구를 빠져나와 귀환했습니다.
인질생활 시작 129일 만이었고, 인질로 잡혀갔던 5명이 모두 살아 돌아온 건 다른 인질들에 비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 텔아이브 인질광장에 마련된 시계
할은 "우리는 믿음이 필요했고, 살아서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구출된 후 "때때로 울음이 터지기도 하고 온몸을 떨기도 한다"면서 "몸속 깊숙이 트라우마가 있다. 앞으로도 트라우마가 계속될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가 트라우마에 빠져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트라우마 안고도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던 할은 순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저는 이제 (나이가) 한 살 반"이라면서 "살아서 돌아온 것은 다시 태어난 것과 같다"며 구출된 이후 삶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그는 "언젠가 평화가 오기를 희망한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위한 파트너가 없다"며 하마스가 평화의 파트너가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에 들어간 상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잘했다"면서도 "그는 그 자신의 이해를 추구하고 있고, 나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여운을 남겼습니다.
앞서 2023년 10월 7일 새벽 하마스 누크바 특수부대원들이 이스라엘을 기습해 약 1천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납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한 가자지구 평화구상안이 지난달 10일 발효됨에 따라 이후 생존 인질 20명이 모두 석방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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