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종말을 맞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나 화창한 날에.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때에. 불안할까, 외로울까, 혹은 담담할까. 곧 종말이 닥친다고 생각해 과격한 행동에 나서는 한 남자. 그에 관한 영화 <부고니아>는 생각보다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개봉한 <부고니아>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여러 겹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장준환 감독이 2003년 연출한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했다. 당시 상상을 벗어나는 전개와 독특한 미학으로 주목받은 장준환은 충무로의 천재 신예로 불리다가 이후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1987> 등을 연출했다. 한편 <부고니아>의 감독인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더 랍스터>, <킬링 디어>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다가 <가여운 것들>로 2023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개성 강한 두 아티스트의 만남이라니, 호기심을 일으키기 충분한 이벤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켜라!>의 얼개를 따르지만 캐릭터와 스토리, 분위기까지 많은 점이 상이해서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보아도 좋을 정도다. <지구를 지켜라!>가 광기 어렸지만 어딘가 귀엽고 키치하다면, <부고니아>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데, 서늘하고 긴장감이 팽팽하며 여기저기 고장 나서 삐걱대는 이상한 세계를 말한다. 또한 노동, 생태주의 등의 테마도 엿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부고니아>에서 특히 돋보이는 한 가지 정서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이 정서는 지금의 우리를 설명하는데 매우 유효해서, <부고니아>가 원작으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 우리와 새로이 접속하는 통로가 된다. 아래부터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나오니 유의해 주기를 바란다.
<부고니아>는 일종의 진실게임이다. 테디(제시 플레먼스)와 미셸(엠마 스톤)이 벌이는 진실게임. 테디는 그녀가 지구를 끝장내러 온 외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미셸은 황당할 따름이다. 테디는 사촌 도니(에이단 델비스)를 제외하고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미셸과 홀로 사투를 벌이는 그는 고독한 단독자다.
시간이 흐르며 테디의 숨겨진 사연들이 밝혀진다. 미셸이 이끄는 기업 때문에 그의 가정은 해체되었다. 그는 이 모두가 외계인의 음모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핏 보아 그가 겪은 일들과 그가 내린 결론 사이에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다만 그의 과거와 현재를 꾸준히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종말'이다.
테디는 곧 외계인이 지구를 파괴할 것이라고 여긴다. 비웃어도 상관없다. 그에게 이건 매우 시급한 지구적 문제다. 한편 테디는 그의 전부였던 엄마와 가족을 차례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단란했던 그의 가정은 종말을 맞았다. 그러니까 테디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가족의 안팎에서 시종 종말의 위험에 처해있다. 테디의 세계는 하나둘 무너지고 있으며 그는 완전한 끝을 막기 위해 버둥댄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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