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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 걸린 'KAI 민영화'…급해진 KAI 리더십 복구 [취재파일]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 시기 국유자산 헐값 매각 사례를 조사하면서 향후 국유자산 매각 계획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수출입은행이 보유 중인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지분 26%도 매각이 중단된 자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AI 민영화가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민영화 '키다리아저씨'가 올 리 없는데 KAI의 여러 생존 지표는 일제히 빨간불을 깜빡이고 있습니다. K-방산 주자들이 기록적 호황을 구가하는 동안 나홀로 불황이어서 더 뼈아픕니다. 급기야 "내년 1월부터 KAI에 월급 없다"는 우울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용현파' 강구영 예비역 공군 중장이 사장직을 3개월 일찍 버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구원투수가 언제 올지 하세월입니다. KAI가 휘청이는 가운데 리더십 실종이 5개월을 채우자 KAI 노조는 "사장 빨리 뽑아달라"며 상경 투쟁을 예고했습니다. 이런 틈을 노리고 부적격 낙하산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낙하산들의 자리 욕심 참 집요합니다.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본관
 

지분 매각했다가 '헐값 부메랑' 맞을라

윤석열 정부의 국유자산 헐값 매각 조사와 향후 국유자산 매각 중단 조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수출입은행의 KAI 지분은 약 2.6조 원(시총의 26%)에 달합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수출입은행의 KAI 지분은 금액상으로 정부 자산 중 상위권"이라며 "당연히 매각 중단 자산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KAI 상황이 민영화에 불리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대형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KAI가 잘 나갈 때 시장에 나온다면 경영권 프리미엄 몇 조가 붙을 테지만 퇴락한 KAI를 놓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운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KAI 주가가 5만 원에서 10만 원이 되는 동안 한화에어로와 LIG넥스원은 7만 원에서 100만 원, 40만 원으로 폭등했다"며 "KAI 민영화 이후 주가가 오르면 자칫 이재명 정부에 국유자산 헐값 매각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인기 상한가 방산이라는 업종과 KAI 자체의 안보적 측면도 지분 매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번 정부에서 실행되리라 예상됐던 KAI 민영화는 이로써 잠정 중단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민영화를 딛고 갱생하려는 KAI의 희망도 더 이상 품기 어려워졌습니다.
 

KAI 위기에 개성적 낙하산들 기승

KAI의 3분기 매출은 9천61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6% 줄었습니다. 매출 두 자릿수 증가와 사상 최대 실적을 노래하는 이웃 방산업체들과 딴판입니다. 또 KAI는 전자전기, 천리안 위성 개발, 해군 표적기 연구 등 국내 사업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KAI는 본부장급 이상 임원의 하반기 성과급 반납, 주 6일 근무 등 비상 체제에 들어갔습니다. KAI의 책임 있는 임직원들조차 기자들에게 "대규모 수혈이 없는 한 내년 1월부터 월급 못 준다"는 힘 빠지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KAI가 혼란스럽고 정부가 새 대표 선임에 뜸을 들이는 동안, 낙하산들의 막판 공세가 뜨겁습니다. 강구영 전 사장의 실패에 아랑곳 않고 '강구영 시즌 2'를 꿈꾸는 모 예비역 공군 장성이 대표적입니다. 경남 정치권에서 뛰었던 한 인사는 '지역 연고'가 강점이라며 권력에 줄을 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재명 반대'의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을 자랑하는 KAI의 한 OB도 금의환향을 꾀한다고 해서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해외 협력업체 신뢰 회복시킬 적임자는?

KF-21 시제기를 생산하는 KAI 조립동

KAI가 곧 민영화된다면 위에 거론된 사람들 중 아무나 KAI 차기 대표가 돼도 상관없습니다. 경영권이 다른 기업에 넘어갈 때까지 입에 풀칠하며 버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KAI 민영화가 멀어진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어느 때보다 적격자가 필요합니다.

안규백 국방장관은 지난달 13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K-방산이 날개를 달았는데 KAI가 제 몫을 못해 굉장히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KAI가 다른 방산기업처럼 제 몫을 하려면 민수과 군수 양쪽 둘 다 굳건히 세워야 합니다. 민수는 유럽의 에어버스와 미국의 보잉, 군수는 미국의 록히드마틴 등이 핵심 협력업체들입니다.

강구영 체제의 KAI는 해외 협력업체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습니다. 에어버스와 보잉이 발주한 항공기 부품은 질이 악화됐고, 경공격기 FA-50 성능 개량은 사전 준비 없이 미국 업체와 정부의 협조를 구하다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KAI의 한 고위직은 "해외 협력업체들의 신뢰를 받는 항공우주 전문가가 차기 대표의 주요 조건"이라며 "해외 업체들과 소통하며 긴밀하게 일했던 KAI의 전현직 자원들 중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방산 관련 단체의 한 임원은 "KAI 낙하산 흑역사를 깨는 진짜 항공우주 전문가가 대표로 선임되면 해외의 신뢰와 투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습니다. KAI 새 대표 하루 속히 뽑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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