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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황금 왕관', 트럼프 제대로 홀렸다…'선물 외교' 막전 막후 [스프]

[온더스팟] 이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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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모형과 야구배트, 바둑판, 샤오미 스마트폰. 경주 APEC 정상회의에 다양한 선물이 등장하면서 선물 외교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선물에 어떤 전략이 있고 그 전략은 얼마나 먹혔는지 외교 분야를 오래 취재한 이현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Q. 트럼프 대통령이 선물 받은 천마총 금관 모형이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선물을 받자마자 굉장히 흡족한 표정이더라고요.

TV 화면으로도 다들 보셨을 텐데요. 특히 영국의 행동 분석 전문가 주디 제임스가 분석한 내용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 당시 표정과 몸짓이 억눌린 흥분과 쾌감을 보여준다. 이것은 정말 좋아할 때, 요샛말로 '찐'으로 좋아하는 반응이다, 이런 얘기를 했고요.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금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유심히 금관을 보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저걸 언제 어떻게 써보면 좋겠다'라고 마치 상상하는 것 같더라, 이런 얘기를 했을 정도니까요.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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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트럼프가 워낙 금장식에 대한 애착을 보이고 가끔씩 군주와 같은 행동을 보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포착하고 맞춤형 선물, 전략적인 선물을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사실 각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을 할 때 금은 필수고 이걸 어떤 방식으로 어떤 스토리를 담느냐가 선택이거든요.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헤즈볼라 지도부의 무선 호출기, 삐삐라고 하는 걸 다 터뜨려서 몰살을 시키지 않았습니까? 그 삐삐 모형을 금박을 해서 트럼프 대통령한테 선물한 적이 있고요. 남미의 백인 중심 국가로서 트럼프와 이념이 같은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추천서를 황금 액자에 담아서 선물하기도 하고.

황금은 기본적으로 트럼프의 테마이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이번에 백악관에 들어가면서 백악관 내부 수리를 크게 했는데 가장 큰 포커스는 금박 장식을 늘리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Q. 우리 선물이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을 했는데 반 트럼프 진영, 특히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대는 공격의 소재로 쓰고 있다면서요.

사실 미국에서 노 킹스, 트럼프가 왕이 아니다라는 시위가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것을 우리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선물이 전달된 것이잖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일단 트럼프의 마음을 사서 관세 협상과 안보 협상을 매끄럽게 끌어내는 게 급선무고 그다음은 그다음 얘기인 거예요. 미국 내에서도 사실 그런 우리 입장을 좀 이해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이번에 선물한 신라 금관의 모형이, 어린아이가 떼를 쓸 때 장난감이나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달래는 것이었다는 미국 쪽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고.

재미있는 게 친트럼프로 분류되는 폭스TV에서 나온 반응이에요. 이거는 분명히 노 킹스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거를 보고 한국에서 트럼프한테 이걸 주면 된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했고 State of the Union이라고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나가서 국정 연설하는 곳에 이 금관 쓰고 나가야 된다고 얘기할 정도로 미국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은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Q. 굉장히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군요. 일본이 준 선물 얘기를 해볼까요?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슨 선물을 했습니까?

일단 여기서도 황금이 빠지지 않습니다. 황금 골프공을 선물했고요. 이번에 트럼프와 다카이치 총리가 첫 대면이거든요. 그러니까 미국과 일본의 깊은 인연, 특히 트럼프와 일본 지도자의 개인적인 인연, 동맹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강조하는 의미를 담은 선물을 많이 했습니다.

또 트럼프가 골프를 좋아하니까 골프 쪽에 중심을 두었는데 이를테면 다카이치의 정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아베 전 총리가 있지 않습니까? 아베가 트럼프와 개인적으로도 친밀했고 트럼프가 생각하는 세계관을 담은 태평양 안보 전략도 짜서 미국이 채택하기도 했는데 그걸 상기시키는 선물을 했어요.

그래서 아베가 쓰던 금색 퍼터도 주고 아베와 트럼프와 같이 라운딩을 했던 마쓰야마 히데키라는 일본 프로 골프 선수가 서명한 골프백도 선물하고, 미국 수도 워싱턴에 가면 일본이 선물한 벚나무가 쫙 있거든요. 그걸 상기시키면서 미국이 내년에 건국 250주년이 되는데 그걸 기념해서 벚나무 250그루도 선물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Q. 상대적으로 일본이 트럼프에게 준 선물의 가짓수는 좀 더 다양하네요. 이재명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답례로 야구 배트를 선물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한국과 미국 간의 문화와 교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선물이라는 해석이 있는데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고 다니지만 그에 대한 답례품은 굉장히 인색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답례로 준 배트에 서명한 선수는 딜런 크루즈라는 선수인데요.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처음입니다.) 이 선수의 소속팀이 워싱턴 내셔널즈거든요.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그것도 처음입니다.) 사실 워싱턴 내셔널스는 메이저리그 야구를 열심히 보지 않는 분들은 잘 모르는 팀이에요. 물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워싱턴의 팀이긴 하지만 그리 유명한 팀도 아니고 선수 개인도 그리 유명한 선수가 아닙니다.

기왕 야구 배트를 줄 거라면 이를테면 트럼프 대통령은 베이스는 뉴욕이잖아요.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라는 유명한 강타자가 있습니다. 애런 저지가 한국에서 입양 간 형이 있어요. 한국과 인연이 있거든요. 차라리 그런 선수의 물건을 줬더라면 의미와 가치가 좀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하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무슨 답례품을 주었느냐 거의 알려진 바가 없어요. 주로 답례품이 자기의 사진이나 책에 서명해서 주고 끝인 경우가 많습니다.

Q. 트럼프가 왜 이렇게 답례품에는 인색한 거예요?

1대 1로 대등하게 뭘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 같아요. 트럼프가 사업을 해온 경력이나 정치와 외교를 하면서 보여준 행태를 보면 내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걸 철저하게 이용하는 스타일이지 상대를 동등한 레벨에 놓고 존중해 주는 것은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Q.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에 주고받은 선물도 이야깃거리가 있던데요. 샤오미폰이 좀 눈길을 끌더라고요.

폰도 폰이지만 그때 주고받은 대화가 굉장히 화제가 됐잖아요. 통신 보안이 잘 되냐고 우리 대통령이 묻고, 시진핑 주석이 뒷문 있나 한번 봐라 이렇게 농담으로 받았는데, 사실 통신 보안 얘기를 꺼냈을 때 저는 화면으로 보면서 조금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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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하고 좀 긴장을 했는데 다행히 시진핑 주석이 호탕한 유머로 잘 받아넘기면서 오히려 그 장면이 긍정적인 명장면으로 회자가 됐고,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알게 모르게 갖고 있을 중국제 스마트폰에 대한 불안감을 오히려 공개적으로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도 있는 것 같고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인 이미지도 더 좋아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 쪽이 한중 관계를 경색시킬 의지가 있거나 한국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국면이었다면 이걸 가지고 충분히 상황을 나쁘게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만들어가는 걸 봐서는 지금 국면에서는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일단 증진시키고 싶어 한다는 사인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Q. 정상외교에서 선물을 고르는 데 고민들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주로 어떤 고민들을 합니까?

선물에 맥락과 의미가 담기고 그것을 주는 방식이나 사연 자체가 메시지가 되다 보니까 고민이 많죠.

2022년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당시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프랑스 영화 '남과 여'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음반을 선물해요. 왜 그 영화였을까를 나중에 알고 보니,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가 고령에 이르기까지도 사이좋은 부부로 유명했잖아요. 두 사람이 첫 데이트에 본 영화가 그거였대요. 그 사연을 알고 그 음반을 챙겨서 주는 거죠. 그러면 받는 쪽에서는 나의 취향과 인생에 대해서 이만큼 연구를 했다고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Q. 국가 정상 간 선물에 금액 제한이 있습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어떤가요?

과거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특히 군주와 군주 간의 선물이 오갈 때에는 금액 제한이라기보다는 크고 화려하고 비싼 선물을 하는 것이 내 쪽의 위엄을 보이는 일이 되는 역사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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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대에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 파샤가 프랑스 국왕에게 룩소르 신전의 3천 년 넘은 오벨리스크를 뜯어서 선물로 보냅니다. 바늘처럼 생긴 거대한, (지금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게 당시에 이집트 군주가 프랑스 국왕에게 보낸 선물이에요. 그 당시 운송비만 지금 돈으로 따지면 200억 원이 넘을 것이다.

국가 지도자 간의 개인적인 선물은 아닙니다만 미국 뉴욕시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도 사실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로 준 거거든요. 이런 거대한 선물들이 있었고, 그러나 1966년에 미국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정치인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의 액수를 제한하는 법이 생깁니다. 그것을 기화로 선진국들은 국가 지도자가 받을 수 있는 선물의 액수에 제한을 두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의미를 찾는 선물들이 좀 더 늘어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중동의 오일 달러 강국들, 왕정인 국가들이잖아요. 그런 데에서는 여전히 고액 선물을 하는 추세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시 시가로 18억 원 상당의 보석류 선물을 준 적이 있어요. 미국법상 개인이 소장을 못하고 전부 국고로 귀속됐죠.

Q. 우리나라 대통령이 받은 선물도 보관을 해야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외화로 100달러 이상, 국내 시가로 10만 원 이상이 되면 신고하고 국가에 맡겨야 되고요. 대통령별로 다 정리돼 있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Q. 살아있는 동물을 선물하는 경우도 더러 있더라고요.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판다 외교를 들 수 있죠. 판다라는 동물이 워낙 귀엽고 재미있게 생겼기 때문에 공산 독재 국가로서의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 외교의 대표 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처음 중국이 판다를 외교 목적으로 해외로 보낸 것은 소련에 1950년대에 보낸 것이 처음이고 지금도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 판다를 내보냈다가 데려왔다가 하며 외교를 하고 있는데, 대체로 중국이 정치적으로 의미를 두는 주요 국가에 판다를 보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에 한중 수교를 했을 때, 2014년에 시진핑 주석이 방한할 때 임대해 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판다 같은 경우는 문제가 복잡해요. 처음에는 선물로 줬는데 80년대부터는 중국이 판다 보호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판다를 대여받은 나라로부터 돈을 받습니다. 꽤 액수가 크거든요. 십몇 억원씩 받아가요. 또 새끼 낳으면 몇 년 있다가 보내야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슬슬 조금 안 좋은 여론도 판다를 받는 나라 쪽에서 생기는 게 사실입니다. 동물 보호 단체는 '판다도 고향이 있고 자기 친척이 있는 사회적인 동물인데 국가의 목적에 따라 이리 보냈다 저리 보냈다 해도 되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또 살아있는 동물이 오고 간 사례가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풍산개 선물을 했었죠. 살아있는 동물 선물이 어려운 점이, 지도자가 퇴임한 이후 관리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풍산개도 여러 가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요.

2013년경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아프리카 서북부에 말리라는 나라가 있어요. 그 나라에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이 갔는데 낙타를 선물했어요. 올랑드 대통령이 '고마운데 지금 당장 가져갈 상황이 안 되니 관리를 좀 맡아주세요' 하고 현지 마을에 잠깐 맡겼거든요. 그런데 올랑드 대통령이 떠나고 나자 마을 사람들이 그 낙타를 잡아먹어 버린 거예요. 말리 정부는 굉장히 난처했죠. 그래서 나중에 더 크고 멋있는 낙타를 구해서 선물을 주네 마네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살아있는 동물은 선물로서 리스크가 있습니다.

Q. 살아있는 동물도 그렇고, 선물이 외교적 갈등 소지가 되거나 두 나라 간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는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미처 거기까지 생각 못 했는데 받는 쪽에서 그럴 수 있어요. 우리나라 외교관이 러시아 사할린의 한 도서관에 지구본을 선물했습니다. 취지는 좋았을 거예요. 학생들이 지구본을 보고 세계의 꿈을 키워라, 한국은 여기 있는 나라다, 이런 취지였을 텐데 지구본에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도네츠크 등 돈바스 지역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표시돼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걸 가지고 러시아 쪽에서 '어떻게 이런 걸 우리에게 보낼 수 있느냐' 하고 발끈해서 반발한 사례가 있었고요.

2022년 설, 문재인 대통령 때 대통령 설 선물 세트가 나가는데 국내 주요 인사들과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교 사절들한테 같은 선물이 나갔습니다. 유독 일본만 발끈하면서 선물을 반환하고 항의를 했어요. 상자의 겉면에 독도 일출 그림이 그려져 있었거든요.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독도가 자기네 나라 땅이라는 거 아닙니까? 이걸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 이런 걸 보내냐 하고 다툼이 있었던 경우도 있고.

그렇게 상대국의 정치적 입장 또는 문화적인 이유로 피해야 되는 선물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중동 지역, 무슬림 쪽에 선물을 할 때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술을 선물하면 안 되겠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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