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여당 의원 등의 환호 속에 예산안 시정연설 시작
오늘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정부가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고 국회의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대통령이 연설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 의석을 향해 인사하자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마치 개선장군을 맞는 듯한 함성 같았는데, 외교 슈퍼위크를 마무리하고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기대했던 것은 이런 분위기였을 겁니다.
이 대통령은 예산안을 설명하기에 앞서, 에이펙 정상회의와 한-미,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하나하나 나열해 가며 설명했습니다. 이 대목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이재명 대통령, 오늘 국회 시정연설
- 이재명 대통령, 오늘 국회 시정연설
'최악의 상황'이란,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와 안보 분야 협상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었다"고 한 것은, 그만큼 노력이 고생스러웠고 그래서 그만큼 제대로 평가 받고 싶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이런 대통령의 생각이 어제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동'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통령이 외교 성과로 제시한 내용은 대부분 알려진 것이었지만, 이 부분에 눈길이 갔습니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핵연료 공급 협의의 진전을 통해 자주국방의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다지고,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획기적 계기 마련으로 미래 에너지 안보도 강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 오늘 국회 시정연설
- 이재명 대통령, 오늘 국회 시정연설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핵연료의 확보가 핵심적이고, 이 때문에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같은 후속 조치가 어떻게 진행될지가 중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획기적 계기 마련"이라는 표현을 쓴 것인데, 이번 한미 간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곧 공개될 텐데 어떤 내용이 담길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한국을 방문해 오늘 양국 국방장관 회담을 한 미국의 피트 헤그세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린다. 당연히 군 당국에선 최선을 다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AI 시대' 강조.."국방 외부 의존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 문제 아닌가?"
새해 예산안의 핵심 문구는 'AI 시대를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입니다.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가 728조 원으로 올해보다 8.1%나 늘어났는데,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전환'에 10조 천억 원이 편성됐습니다. 올해 관련 예산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발언이 있었습니다.
"재래식 무기체계를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최첨단 무기체계로 개편하고, 우리 군을 최정예 스마트 강군으로 신속하게 전환하여 국방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우리의 염원인 자주국방을 확실하게 실현하겠습니다. 북한 연간 GDP의 1.4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사용하고, 전 세계 5위의 군사력으로 평가받는 우리 대한민국이 국방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 문제 아니겠습니까?"
- 이재명 대통령, 오늘 국회 시정연설
- 이재명 대통령, 오늘 국회 시정연설
이 대통령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지난달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는 "굳건한 한미동맹 기반 위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회복해 대한민국이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환수' 대신 '회복'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원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연설에서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 문제 아니겠습니까?"라는 말로, 이성적 측면은 물론 감정적 측면까지 메시지 전달에 활용했습니다.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에 반대했던 군 장성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일갈했던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국민의힘, 시정연설 보이콧..."전형적 포퓰리즘 예산안" 비판
오늘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에 대해 어제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야당 탄압이라며 시정연설 참석을 거부한 것입니다. 대신 대통령의 국회 도착에 맞춰 본청 계단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는데, 검은 마스크와 넥타이 같은 어두운 색 차림에, '자유민주주의'가 적힌 근조 리본을 달았습니다. 이 대통령이 도착하자 일부 의원들은 "범죄자 왔다. 범죄자", "꺼져라", "재판 받으세요"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국회의장과 함께 의장실로 이동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시작하면서, 비어 있는 국민의힘 의석을 향해 "좀 허전하군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연설을 마무리하는 대목에서는 "비록 여야 간 입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는 말로 국민의힘 의원들의 보이콧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내년 예산안에 대해 "역대 최대 적자예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 50%를 넘어서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예산"이라고 비판하면서 감액을 벼르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사랑상품권, 농어촌 기본소득 같은 현금성 지원 예산은 내년 지방선거용'이고, "미래 세대에게 빚 폭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 대해서는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아직 문서화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GPU 26만 장 확보나 주가지수 4,000 돌파 등 민간 기업이 만들어낸 성과를 마치 자신들의 업적인 양 포장하며 '성과 홍보 정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장동혁 "마지막 시정연설 돼야 한다"...'재판 재개' 거듭 주장
그런데 오늘 보이콧 과정에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이 대통령의 이번 시정연설이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고 해서 무슨 말인가 의아했습니다. 발언 전문을 보니, 대통령 재판 재개 얘기였습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1번만 하면 이재명은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이재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중략) 원내대표님 말씀하셨지만 이제 전쟁입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모든 힘을 모아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의 5개 재판이 재개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모아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오늘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서 국회에 옵니다. 이번이 마지막 시정연설이 되어야 합니다."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오늘 국민의힘 의원총회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오늘 국민의힘 의원총회
어제 대통령실이 제동을 거면서 민주당이 공론화하려던 재판중지법 추진은 중지됐습니다. 여권의 말로는 그냥 미루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재판 재개'를 이슈로 끌고 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호응해야 할 여당이 발을 빼니 이 이슈가 커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재판중지법에 대한 여권의 사정을 다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오늘 시정연설에서 이 대통령이 "영혼까지 갈아 넣었다"고 한 대목을 떠올려 보면, 외교 슈퍼위크의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으면서 그 결과 'AI 시대' 같은 국정 과제 수행의 동력을 얻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가 읽힙니다. 그래서 어제 대통령실 대변인에 이어, 대통령실 비서실장까지 나서 재판중지법에 제동을 건 대목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강훈식 비서실장이 어제 브리핑을 하면서, 모두 발언에서 한 말과 기자들과 문단 과정에서 한 말을 보겠습니다.
모두 발언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않아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기자 문답
"대통령께서는 더 이상 정쟁에 끌어들이지 않고, 우리가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셨다고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어제 대통령실 브리핑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않아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기자 문답
"대통령께서는 더 이상 정쟁에 끌어들이지 않고, 우리가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셨다고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어제 대통령실 브리핑
'대통령이 자신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메시지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면, '대통령이 자신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다'는 메시지입니다. 대통령으로서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여당에서 재판중지법 추진이라는 '정쟁'을 일으키는 것은 방해가 될 뿐이라는 인식을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분명히 한 것입니다. 정쟁은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죠. 늘상 있는 일이지만, 생산성 없는 논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도 자주 쓰입니다. 대통령이 말한 정쟁은 부정적 의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대통령실과 민주당 간에 불협화음이 또 생길 수 있겠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국정 수행과 정쟁 사이의 기준을 분명히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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