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분쟁의 시작은 202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화솔루션 내 한 사업부였던 NXMD는 법인 설립을 준비하며 CGI 측에 인수를 제안합니다. 하지만 4개월여의 실사 끝에 협상은 결렬됩니다. 이 협상이 깨진 후, NXMD는 베이퍼챔버 회사 인수 대신 자체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고 법인 설립 다음 해인 2023년 말, 국내 최대 휴대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에 베이퍼챔버를 납품하는 데 성공합니다.
분쟁은 이때쯤 시작됐습니다. 한화가 같은 베이퍼챔버를 생산하며 삼성에 납품까지 하게 됐다는 소식을 알게 된 CGI는 중소벤처기업부 기술분쟁위원회 조정을 신청했지만 양측의 주장이 너무 달라 실패했고, 지난해 말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합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충남경찰청 산업안보기술수사대는 지난 6월 한화 NXMD 사무실과 협력업체 3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최근 확보한 자료에 대한 포렌식을 마무리하는 등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벤처기업 측은 "한화가 인수를 빌미로 자료를 모두 가져간 후 같은 시장에 진출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화 측은 "CGI의 기술을 참고하거나 탈취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결국 국회로 소환된 베이퍼챔버 기술탈취 분쟁
쟁점1. "통상적인 M&A 과정" vs "다른 대기업과 달랐다"
남정운 한화솔루션 대표는 CGI를 "인수할 의향은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통상적인 인수합병 과정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남 대표는 "실사 과정에서 요청한 자료는 일반적인 수준에 그쳤고, 기술 관련 구체적인 사실을 접수하거나 요청한 바도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조영수 CGI 대표는 이에 대해 "M&A 과정에서 요구했던 정보들이 평균적으로 요구하는 정보보다 과다했고 지속적으로 회사의 모든 것을 요구해서 가지고 갔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회사에 인수합병을 제안한 회사는 한화 외에 다른 대기업들도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기업들에게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화가 과정·결과 면에서 불법적인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수합병 논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한 입장도 확연히 달랐습니다. CGI는 자신들과 베이퍼챔버 개발을 함께 하던 삼성전자 담당 임원과 수석연구원이 한화로 이직을 준비하며 2021년 1월 먼저 인수를 제안하며 인수가격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화 측은 "2021년 1월에 CGI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CGI가 실사 과정에서 한화 측에 넘긴 자료는 380여 개 정도입니다. 자료의 개수만으로 요구가 과도했는지를 판단할 순 없습니다. 또 인수 합병 과정에서 자료 요청 규모나 종류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당시 제공된 자료 중에는 제품의 세부 기준과 제작 공법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핵심 문서인 '시방서'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시방서가 "기술 관련 구체적 사실"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수사 기관이 판단할 것으로 보입니다.
쟁점2. "전혀 다른 기술" vs "개발 기간 단축도 탈취"
벤처기업 측이 기술탈취 의혹을 제기한 가장 큰 이유는 두 회사의 인수합병이 결렬된 후 6개월 만에 한화가 새 회사를 만들어 동종업계에 진출하고(2022년 2월 법인 설립), 그로부터 1년 여 후 대규모 양산까지 성공해 삼성전자에 납품까지 하는 과정이 "이례적으로 빨랐다"입니다.
조영수 CGI 대표는 "제조업은 제조 공정을 만드는 그 기술이 영업 비밀이자 핵심 기술이다. 이걸 '개발'하는 데만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재관 의원도 질의를 통해 "자체 개발에 착수하는데 평균 연구개발 기간이 2년 1개월 정도 걸리는데 한화는 불과 11개월 만에 이뤄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술을 단순 복제하지 않아도 그 기술을 이용해 개발 기간이나 비용을 줄였다면 이 또한 영업비밀 사용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화 측은 "CGI기술을 참조해서 개발 기간을 단축시킨 사실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남정운 대표는 "실질적으로 (제품이)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 기능은 레이저 용접과 탈기 방법"이라며 "핵심적인 기능이 완전히,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정리하면, 한화는 현재 두 회사가 만들고 있는 베이퍼챔버가 전혀 다른 제품이라는 입장이고, CGI는 자신들의 기술과 영업비밀을 참고해 한화가 빠른 시간 안에 개발과 양산에 성공했다는 입장입니다. <결과물의 동일성 여부>와 <개발 과정에서 참고를 했는지 여부>, 이 두 가지 논리가 서로 맞서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한 수사와 소송...과연 어떤 결론 날까?
한화와 CGI의 기술탈취 분쟁 사안에 대한 질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민주당 이재관 의원은 산자외 종합 국정감사에서, 기술탈취 피해는 벤처나 중소기업에게 치명적이고,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기간이 길어지고 회사 경영이 힘들어지는 상황에 놓여진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술분쟁위원회 등 중소벤처기업부의 적극적 조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국감을 마친 후 한화와 CGI 대표가 회의장 밖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의견 합의를 이루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분쟁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경찰 수사 등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도 면밀히 지켜보겠습니다.
관련기사: ▶ [단독] 경찰, 한화 계열사 압수수색…'기술 탈취' 의혹 수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