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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덕질'을 시작한 이유…"애정의 근원은 '이것'" [스프]

[취향저격] 중년 팬덤을 바라보는 다큐,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와 <트롯공화국 보고서>가 쓴 팬덤 에스노그라피 (글: 장은진 대중문화평론가)

얼마 전 중년 팬덤을 깊이 있게 다룬 두 편의 영상이 방송됐다. EBS의 <PD로그 :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와 MBN의 <트롯공화국 보고서>. 전자가 조금은 가볍고 말랑말랑한, 마치 소녀시절 일기장을 보듯 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이었다면 후자는 제목 그대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기법에 충실하면서 한·일 트로트 팬덤을 비교분석한 이 시대 중년 팬덤에 관한 보고서였다.

이 두 개의 영상이 주목한 공통적인 소재는 코로나 19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독특한 문화현상이 된 트로트 팬덤이다. 한 종편 방송이 쏘아 올린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열풍은 트로트를 음악 콘텐츠의 새로운 장르로 급부상시켰고 수용자인 중년 팬덤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K-POP의 한 장르로서 트로트가 비중 있게 자리 잡고 주 소비층이 중장년층으로 확산되며 이들의 응원문화와 소비 형태가 중년 팬덤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 : EBS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는 <PD 로그>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일상 속 이슈를 탐구하며 그중 '덕질'에 대한 인간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중년 팬들은 일면식도 없는 대상에게 저렇게 무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걸까?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입사한 지 3년이 갓 넘은 신입 PD는 특유의 호기심과 취재 본능으로 이 희한하고도 독특한 집단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PD 로그>의 미덕은 외부에서 관찰자적 탐색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의 내부로 들어갔다는 데에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이 타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 참여수행자가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처럼,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주먹 쥐고 일어서'를 만나며 인디언 문화에 서서히 동화되듯이 신입 PD는 영탁 팬클럽 '영탁앤블루스'의 문화 속으로 과감하게 빠져든다. 팬클럽에 가입해 닉네임을 정하고 그다음 단계인 파란색으로 치장하는 비주얼 변신의 환영식을 거친 다음 팬들에게 나눠줄 굿즈를 직접 만드는 과정은 과거 인류학자들이 규명해 낸 자발적 증여와 대가 없는 호혜적 선물교환 이론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 신입 PD는 팬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대신 팬이 된 자신의 모습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영탁의 팬들과 공연 전날 하룻밤을 같이 자고 노래방을 가보며 떼창을 위해 응원법을 연습하고 나눔에 익숙해진 중년 팬들의 문화를 체험하며 자기 성찰의 셀프 에스노그라피(자기 민족지)를 완성한다. 팬덤 4.0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덕질의 대상 없이 팬들끼리 즐겁게 놀 수 있는 느슨하고도 탄탄한 연대를 체험하며 중년 팬덤의 덕질 문화가 문화 충격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진정성과 함께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큐 내레이션의 주인공인 문 PD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을까? 한 사람을 향한 애정과 사랑의 근원은 명료했다. 나를 웃게 만드는 힘, 인생의 모진 풍파를 헤쳐 온 순례자들이 얻은 것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사진 : MBN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 <트롯공화국 보고서>는 언젠가부터 트롯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팬덤 덕질 보고서다. 대중음악과 문화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통한 학술적 접근과 함께 다양한 트로트 팬덤의 사회적 활동을 보여준다. 노란색, 파란색, 핑크색, 각양각색의 팬덤은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며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해 선한 영향력의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중년 팬덤의 활동과 파급력은 단순히 덕질 대상을 응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기부나 선행, 봉사를 통한 실천적 참여를 통해 꾸준한 역동성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MZ 세대의 덕질과 구분된다. 팬덤이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면 스타 역시 팬클럽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등 상호 작용 현상도 한국의 중년 팬덤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집단 응원이 아닌 조용한 방식의 응원 문화를 보여주는 일본의 트로트 팬덤은 반짝 응원 대신 오랜 지속성을 가진다.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향한 시니어 팬층의 잔잔하지만 절대적인 감정은 전설적 존재를 추앙하고 기억하는 일본 국민 팬덤의 정서와 애정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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