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이 때 아닌 JMS(기독교복음선교회) 논란에 휩싸였다. 30년 이상 JMS와 교주 정명석 총재의 성범죄 혐의 등을 알려 왔던 김도형 단국대학교 교수가 최근 한 라디오에서 이광형 KAIST 총장의 JMS 모임 참석과 정명석 총재와의 만남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이 총장이 6년 전 정명석 총재 수감 당시 JMS모임에 여러 차례 참여했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정명석 총재를 찾아갔다는 게 김 교수의 주요 주장이다. 최근 이 총장 체제의 KAIST가 '세계대학평가 부정 평가 시도'와 '논문에 AI 긍정 평가 유도 명령어 삽입' 등으로 연이어 국제적 망신살이 뻗친 상황에서, 더 큰 조롱거리가 됐다는 비판이 KAIST 안팎에서 나온다. 특히 이번엔 이 총장 스스로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비판이 거세다.
(SBS는 김도형 교수의 구체적인 증언과 자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해민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 등을 종합해 이 총장의 JMS 관련 논란을 취재했다.)
정명석과의 30분 면담…"수석을 선물했다"
정명석 총재는 성폭행 등 혐의로 지난 2009년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 뒤, 2018년 2월 23일 출소했다. 이광형 총장과 JMS 측의 첫 만남이 이뤄졌던 시기는 정명석 총재 출소 이듬해인 2019년이다. 당시 KASIT 부총장이던 이광형 총장은 한 독서클럽으로부터 강연 초청을 받는다.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평범한 이름이었지만, 고위층 포섭을 목적으로 한 JMS 관련 모임이라고 김도형 교수는 전했다. 이 총장은 해당 모임의 초청을 수락하고 두 차례 이상 강연에 나섰다. 현장에는 JMS 목사와 신도들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SBS가 확보한 당시 현장 사진(아래)에는 JMS 인사들과 나란히 선 이 총장의 모습이 확인된다.
이 총장은 강연 이후 '암흑 물질'과 '영적 현상' 등의 과학적 측정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강연 참석자들 중 한 명으로부터 영적 현상을 측정할 방법에 실마리를 줄 수 있는 목사를 만나보길 권유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이어진 다음 행선지가 충남 금산 JMS 수련원이었다. 정명석 총재가 출소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해민 의원실에 따르면 이 총장은 당시 정명석 총재에게 '영적 현상을 과학적인 장비로 측정할 수 있는지, 가능하다면 협조해줄 수 있는지' 등 질문을 하며 30분 정도 만남을 이어갔다. 김도형 교수는 "정명석의 수행기사가 '이광형 총장이 정명석에게 돌을 선물했다'고 진술했다"며 "정명석은 평소 '수석(돌) 수집'에 집착적인 취미를 보였다, 정명석에게 수석을 선물했다는 건 그의 존재와 취향을 사전에 인지하고 준비한 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6년 전 만남이라 문제 없다?"…분명한 해명 없이 총장직 수행
이광형 총장은 JMS 인사 접촉 사실과 관련해 그동안 학교 안팎에 분명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총장직을 수행해 왔다. 이 총장은 정명석 총재를 만난 이유에 대해 "인류는 전자기파로 자연현상을 측정하지만, 암흑물질·영적 현상은 전자기파로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측정할 새로운 파동을 발견한다면 노벨상 수준의 과학적 업적을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고 답하고 있다. 산업공학과 전산학이 연구 분야인 이광형 총장이기에 납득이 되지 않는 설명이다. 더욱이 당시 부총장이던 이 총장이 '연구'를 목적으로 충남 금산으로 정명석 총재를 직접 찾아가 관련 문의를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KAIST 내부에선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시간이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KAIST의 한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총장의 인식"이라며 "이미 JMS 논란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기였는데 KAIST 구성원 대다수가 알고 있는 걸 총장이 몰랐다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임기 끝나도 계속되는 총장직…인선 지연의 그림자
JMS 관련 논란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논란의 당사자인 이 총장은 임기 만료 이후에도 여전히 총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공식 임기가 올해 2월 이미 종료됐지만, 후임 인선이 지연되면서 '임기 연장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학내에서는 "논란의 본질이 개인의 행위에서 제도적 무책임으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민 의원은 "KAIST는 국가 과학기술의 심장부"라며 "총장이 JMS연루 의혹으로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차기 총장 선출 절차를 조속히 완료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광형 총장 해명 들어보니…"과학적 호기심으로 한 번 만나봤던 것"
이광형 총장은 SBS에 JMS 모임 강연에 대해 "과학기술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을 뿐 JMS 관련 모임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며 "지나고 보니 나를 포섭하려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정명석 총재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당시 나를 데려간 사람이 금산에 영적으로 수준이 높은 목사가 있다고 소개했다"며 "그가 암흑물질 측정과 영적 현상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으로 한 번 만나봤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명석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다 알았다"며 "그 이후 (JMS 측에서) 연락이 와도 일절 답하지 않았고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고 해명했다.
과학기술의 최전선에 선 KAIST가 지금은 '영적 논란'과 '지도 공백'의 한가운데 서 있다. 과학과 신앙, 합리와 책임, 그 사이의 경계에서 KAIST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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