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와 영화에서 '신 스틸러'로 유명하지만, 배우 김신록의 탁월함은 연극 무대에서 더욱 빛납니다. 1인극 '프리마 파시'에서 열연 중인 김신록 씨와 함께 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른, 연극 무대의 매혹에 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김신록 씨는 몸으로 격파해야만 열리는 세계까지 가는 게 연극이라고 말합니다. 무대에선 매번 배우의 눈물, 콧물, 땀, 숨결과 체취, 그리고 관객이 어우러지는 실시간의 예술이 펼쳐지죠. 넷플릭스에는 없는 것, 그가 '요괴의 몸뚱이'라고 설명한 연극 무대만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김수현 기자 : 제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도 봤지만 1인극이 너무 힘든데 뭐가 좋으세요? 나 이거 해야 되겠다, 이렇게 도전하게 하는 1인극만의 특징이 있나요?
김신록 배우 : 실시간으로 다 겪어내는 게 갖는 힘이 있는 것 같거든요.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인물이냐 배우냐를 구분할 수 없어지는 때에 이르잖아요. 저 힘든 게 배우가 힘든지, 지금 인물로서 우는 건지 배우가 우는 건지, 막 이렇게 되잖아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메타적인 힘을 갖는 것 같아요. 이 말이 허구의 말이 아니다, 지금 무대에 올라가 있는 것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주는 것 같거든요. 그게 되게 힘이 있는 방식인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배우들이 역을 나눠서 하면 '각자가 맡은 역을 하는구나' 이렇게 되는데.
김신록 배우 : 그러면 이야기로 안전하게 빠져들어가기 쉬운 것 같거든요.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거나 느끼고. 근데 그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나 교훈을 받았는데 이거는 이야기로 포섭되지 않는 거예요. 이야기라는 주머니를 뚫고 계속 나오는 것 같거든요. 그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연극적으로 유효하다.
'통제한다'는 표현도 파트 1에 많이 나와요. '통제력' 이것도 변주해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냥 '통제한다', '컨트롤'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다 '통제'라고 하고 있는데, 2막의 세계는 통제하려고 하는데 손톱으로 손바닥을 파고들듯이 계속 이야기를 움켜쥐려고 하는데 계속 구멍이 나는 거예요. 거기로 다 빠져나가는 거죠.
어쩌면 1인극이 이렇게 빠져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야기라는 주머니에서 실제가 빠져나가고 만들어 놓은 리듬, 템포, 어떤 형 안에서 배우가 혼자 하는데 어떻게 실패 없이 하겠어요? 목표를 반드시 비껴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그게 매력이에요.
'프리마 파시'에서도 파트 1의 세계는 실패 없는 세계라면 파트 2의 세계는 실패하는 세계거든요. 근데 실패를 연기하는 건 되게 힘들잖아요. 실패를 연기할 수도 없고 그냥 실패해야 되는 건데 1인극은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굉장히 적확하게 맞아 들어간다.
김수현 기자 : 실패할 수밖에 없다.
김신록 배우 : 깨끗하게, 말끔하게 해낼 수 없잖아요. 콧물 계속 나, 이거 너무 무거워, '어떤 지점에서 어디를 찍어야지' 이런 정밀한 설계를 계속 비껴날 수밖에 없어요.
예전 같으면 억지로라도 '여기서는 이 정도 볼륨의 감정을 만들고' 이렇게 했을 텐데 그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계속 노출했 때 유예된 어떤 것이 뒤늦게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와야 되는데 안 밀려와요. 대사가 있으니까 지금 느끼는 감정으로 슬픔을 하고, 그러면 뒤에 배심원들이 들어올 때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이 경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이지 있다, 올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1인극이 조금 더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2인극이라도 되면 '여기서 이만큼 또 줘야' 이렇게 되니까.
김수현 기자 : 김신록 배우를 아는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분들이 더 많을 것 같거든요. 그때 연기와는 완전히 다른 거네요.
김신록 배우 : 무대 연기가 갖는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구상과 추상의 사이의 어떤 것을 찾는 것 같고요. 구조나 뼈대나 언어를 넘어선 어떤 것이 계속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 같고, 지금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이 회반죽이 되도록 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저도 같이 막 버무려지는 것 같아요. (웃음) 이게 어떨 때는 이야기 들려주기인 것 같은데 어떨 때는 여러 사람이 연기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단 말이에요. 넘나드는 게 어디에 중점을 둬야 될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신록 배우 : 요새 워낙 매체에 가서도 연기를 하기 때문에, 특히 넷플릭스가 얼마나 재밌습니까? 드라마, 영화 같은 매체들이 서사를 들려주는 데는 연극이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시리즈물이 나오고 숏폼부터 시작해서 장편까지.
제가 연극을 그래도 꾸준히 해오면서 느끼는 건, 몸으로 격파해내야지만 열어젖힐 수 있는 세계까지 가는 것이 연극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라디오로 했을 때도 똑같이 전달된다면 그건 연극이 아니다. 눈앞에서 현현하는 저 몸과의 교류, 객석에서. 감각이든 감정이든 뭐라고 부르든,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과 객석이 믹스가 되는 거예요.
1인극이기 때문에 '내가 테사를 연기해, 그래서 나를 테사라고 봐줘' 이렇게 되지 않는 거죠. 무대에 있는 사람이 '테사 제인 신록 킴' 정도 되지 않는가. 근데 객석하고 잘 만나지면 '테사 신록 수현 킴 은정' 뭐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막 버무려져서 마치 내 경험처럼 시간을 함께 관통해 가는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개별자들이 무너지는 시간? 알 수 없이, 괴물처럼 덕지덕지, 우리가 함께, 이 공간도 덕지덕지, 요괴의 몸뚱이처럼.
제가 <씨네21>에 요괴의 몸뚱이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요괴가 열린 문으로 흘러넘치고 극장 밖으로 흘러넘치는 상상을 하거든요. 비주얼적으로. 연극 무대가 깨끗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뒤섞였으면 좋겠다. 열기와 콧물, 눈물과 체취와 땀, 이런 게 범벅이잖아요. 객석에서도. 그게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이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김수현 기자 : 갑자기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런 게 생각났어요.
김신록 배우 : 그런 거는 저도 생각하면서 발상을 하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오나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1인극이면 배우도 여러 명이고, 어디까지 배우의 재량에 맡기는 건지?
김신록 배우 : 큰 콘셉트와 해석에만 동의를 하고 1인극이다 보니까 배우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을 100% 열어줘서, 근데 기술적인 부분들 예를 들면 조명이랄지 음향이랄지 이런 게 들어와야 하니까, 큐 같은 것을 맞춰야 되니까 최소한의 위치 같은 것들은 합의를 하고 그것으로 가는 길은 각자가 다 만드는 거죠.
우리가 서로를 봤기 때문에 유사해지는 부분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파트 1의 세계는 그래도 유사해요. 왜냐하면 이 세계는 논리와 구조로 이루어진 세계거든요. 주인공이 '여기는 법정, 이번에는 우리 집, 여기는 캠브리지 대학교', 전환하는 데서 전환되는 세계인 거예요.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세계요. 일종의 '두잉'의 세계인 거죠. '내가 해'.
근데 파트 2의 세계는 하려고 하는데 자꾸 멱살 잡혀서 다른 데로 끌려가는 세계예요. 나는 진술하고 싶은데 줄리안을 두 번 본 기억이 덮쳐서 뜬금없이 줄리안을 봤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파트 2의 세계야말로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감각의 세계이고 몸의 세계고 살의 세계인 거예요.
세 사람이 기술이나 논리로 격파하는 파트 1은 비슷하지만, 자기의 삶, 자기가 사는 방식, 삶을 뭐라고 이해하고 있나, 이런 것들이 온전히 드러나는 게 파트 2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이 달리 설계하도록 프로덕션에서 열어준 거죠. 배우한테는 굉장한 도움이자 도전이었죠.
김수현 기자 : 대본이 있지만 내 말맛에 맞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나요?
김신록 배우 : 영어이기 때문에 번역본을 받았잖아요. 그 번역본을 가지고 치밀하게 번역해 내는 작업을 다시 했어요. 그래서 3명이 번역의 언어가 약간씩 다른 부분도 존재하고, 저 같은 경우는 1의 세계와 2의 세계를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다는 게 큰 목표였고, 언어적으로 대비되는 단어들을 잘 살린다거나 반복되는 단어들은 계속 똑같은 단어를 써준다거나, 번역적으로 이런 거에 공을 들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야기에서 '허점을 짚어내는 거야' 이런 말이 있는데 '허점'이 아니라 '홀'이라고 돼 있어요. 저는 '구멍'이란 말을 그대로 살렸는데, 철학적으로도 구멍을 통해서 어떤 것이 틈입해 들어오는 세계관하고 맞아서 해석될 여지를 주고 싶다. 또 '일관성'이라는 단어를 집요하게 '일관성, 비일관성'이라는 말로 살려준달지.
'기다려'라는 말도 계속 살려주고. 번역은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기다려,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이런 걸 '웨이트, 웨이트, 웨이트' 있으면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이렇게 살려준달지.
그리고 대본이 현재적으로 지금, 지금, 지금으로 쓰여 있는데 텍스트만 놓고 보면 이 장면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번역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예를 들면 '왕실 변호사가 나한테 그 사무소의 자산이나 함께 일하게 될 변호사에 대해서 이야기해 줘. 나는 감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해. 근데 자랑을 늘어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다면 이건 여기에 대한 해석을 가진 입장이잖아요. 그런 해석을 지금 이 순간 인식되는 것들로 말을 바꿔내려는 노력을 하고, 오히려 원문 그대로의 감각을 살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대사를 빨리 해야 돼서 말이 꼬이거나 놓치면 어떡하지, 아슬아슬한 경험도 있으신가요? 실제 무대에 올라갔을 때.
김신록 배우 : 이런 질문할 때마다 '퉤퉤퉤' 해요. 혹시나 그렇게 될까 봐. (웃음)
김수현 기자 : 보면서 전혀 그런 걱정은 들지 않았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너무 자연스러운데, 저걸 어떻게 다 외웠을까. '연기 차력쇼'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하는데.
김신록 배우 : 대사를 빼먹고 넘어가면 뒤에 하기도 하고, 괜찮은 대사면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중간에 그런 것도 생각하면서 하는 거죠.
이병희 아나운서 : 실제 공연하면서 더 느끼는 바가 있다고 하시는 거 보면, 실제 무대에 올라갔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돼서 느낌이 오시나 봐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