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
한국인이 캄보디아 소재 범죄조직에 납치·고문·살해를 당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며 캄보디아에 대한 '혐오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사는 한인들은 물론, 한국 내 캄보디아인까지 무분별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제(12일) 언론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SNS에는 캄보디아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확산하는 상황입니다.
"캄보디아에 가면 납치돼 마약 투여되거나 구타 등으로 노예 생활을 하고 결국 암매장당한다고 한다"라거나 "캄보디아 전체 GDP(국내총생산) 절반이 범죄수익이라는데 정상적인 나라인가" 등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한국인을 돈으로 보고 물건 취급을 한다. 한국인과 시비가 붙으면 조선족에게 팔아넘긴다"라는 댓글도 달리며 캄보디아인 전체를 비난하는 듯한 댓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범죄조직 배후에 중국계 조직폭력배가 있다거나, 베트남·태국 등 인접국을 갔다가 캄보디아로 인신매매 당하는 사례 등이 보도되며 부정적 인식은 동남아시아 국가 전반으로까지 퍼지는 모습입니다.
이런 혐오 여론의 일차적 피해는 캄보디아 교민들이 겪고 있습니다.
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사업을 하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약이 취소되고 방문객이 뚝 끊겼다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에 16년째 살며 한국인 대상 교육업을 하는 강 모 씨는 언론에 "여행사는 골프 여행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고, 한국에서 건설 투자를 하겠다며 오기로 해놓고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씨는 "교민 단톡방에도 선량한 교민을 범죄자로 몰아가며 불안을 조성하는 사람들이 생겨 비상이 걸렸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자 다수가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가담한다는 인식을 하며 캄보디아에 입국한 게 아니냐는 불만도 있습니다.
8년째 거주 중인 이현주 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은 "한인회가 구조를 도왔던 사례 중에는 고액을 준다는 (미심쩍은) 일자리인 줄 알고도 스스로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힘들게 탈출해 한국에 돌아가도 재입국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몇몇 범죄 사례가 캄보디아 전체 이미지로 확대 재생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사전 관리와 사후 처벌을 강화하기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내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도 국적을 드러내는 순간 부정적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11년 전 한국에 입국해 현재 캄보디아인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르 소켐 씨는 "집을 구하려고 해도 캄보디아 사람인 것을 알게 되면 집주인이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택시 기사들도 캄보디아 사람인 것을 알면 욕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켐 씨는 "캄보디아 정부가 부패하고 중국인이 들어오면서 인신매매가 일어나는 것인데 캄보디아의 이미지가 실추됐다"며 "모든 캄보디아 사람이 나쁜 게 아닌데 이런 인식이 생겨서 슬프고 속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특정 개인의 사례가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로 불거지는, 부당한 낙인찍기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이민학회장을 지낸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범죄 조직을 소탕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캄보디아 국민과 캄보디아 나라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분별한 혐오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정부가 정확한 정보 전달을 하는 한편 잇따르는 캄보디아발 범죄에 대한 대응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혐오 정서는 한 번 만들어지면 바뀌기가 어렵다"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당국이 즉각 어떤 조치를 취했고, 캄보디아 쪽에서는 어떤 답이 왔다는 등의 과정을 계속해서 국민에게 제시해야 혐오 정서가 더 깊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