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3년 4월,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연금 개혁을 항의하는 전국 파업.
프랑스 정부가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인 연금 개혁을 중단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현지시간 8일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사임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온건 좌파 사회당(PS)이 요구해 온 연금 개혁 중단을 실행했을 때 경제적 비용을 검토해달라고 2주 전 재정경제부에 요청했습니다.
사임 발표에도 이날 저녁까지 정파 간 합의를 끌어내라는 마크롱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르코르뉘 총리는, 전날 우파 및 중도 진영 인사들과 연쇄 회동, 연금 개혁 중단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연금 개혁은 마크롱 대통령의 최대 역점 사업이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은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64세로 연장하고,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을 기존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렸습니다.
야당과 여론이 연금 개혁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의회 표결을 생략할 수 있는 헌법 특별 조항까지 사용해 밀어붙였습니다.
노조를 비롯해 좌파 야당들, 극우 국민연합(RN)은 2023년 9월 새 연금 제도가 시행에 들어갔는데도 정년을 62세로 환원하거나 오히려 60세로 낮춰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해왔습니다.
야당의 요구에 응해 마크롱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연금 개혁을 중단하거나 수정한다는 건 그만큼 정부가 코너에 몰렸다는 의미입니다.
연금 개혁을 밀어붙일 당시 정부를 이끈 엘리자베트 보른 전 총리도 전날 일간 르파리지앵과 인터뷰에서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연금 개혁 중단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의회 내 범여권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화당 우파부터 개혁주의 좌파, 즉 사회당과도 함께 일해야 한다"며 사회당이 요구하는 연금 개혁 중단이 금기사항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것이 나라의 안정을 위한 조건이라면 다음 대선에서 토론할 때까지 (개혁을) 중단할 방식과 결과를 검토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경청하고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보른 전 총리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좌파, 특히 마크롱 정부에 협조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회당에서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전날 프랑스2 뉴스에서 "이 개혁의 주창자 본인이 중단해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긍정적인 깨달음"이라고 말했습니다.
8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에선 연금 개혁 중단이 "단순한 눈속임인지 아닌지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좌파 정당들과 막판 논의를 한 뒤 저녁 마크롱 대통령을 찾아 48시간에 걸친 협의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후 프랑스2 방송에 출연해 "의회 내 절대 다수가 새로운 (의회) 해산을 거부하고 있고, 여러 정치 세력이 근본적으로 공동 예산에 합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아직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어 "나는 대통령께 (의회) 해산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으며, 대통령이 향후 48시간 내에 총리를 임명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렸다"고 덧붙였습니다.
르코르뉘 총리는 연금 개혁 중단 가능성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면서 "연금 개혁은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나는 대통령께 연금 개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습니다.
르코르뉘 총리는 일각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사임을 요구하는 것에는 "국방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지금이 대통령을 교체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증언할 수 있다"며 "대통령직이라는 제도는 보호돼야 한다"며 반대 뜻을 밝혔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