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우편함 하나로 만든 기적…"누군가에겐 따듯한 한마디가 필요해요" [스프]

[오프 더 모먼트] 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
온기우편함
이 노란 우체통 혹시 본 적 있으신가요? 도시에 놓인 작은 우체통 하나. 그 안에는 누군가의 고백과 위로가 오갑니다. 점점 따스한 손길이 메말라 가는 듯한 한국 사회에 노랗고 작은 '온기 우편함'이 찾아온 지 벌써 8년, 자신에게 누군가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주길 바라던 한 대학 복학생의 마음이 전국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작은 우체통 하나는 수백수천 개가 되고, 앳된 얼굴의 복학생은 2020년대 가장 주목받는 공익 법인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빛나는 성취만을 이야기하려 자신을 꾸며내지 않았습니다. 리더로서의 고민, 번아웃, 그리고 여전히 자신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이 곁에 있음을 솔직히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왜 계속 이 길을 걸어갈까요? 온기가 사라져 가는 세상에 작은 등불로 언제까지나 존재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지켜가는 소년 같은 마음 우체부, 조현식 대표입니다.

장재열(이하 장) :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현식(이하 조) : 온기 우편함을 통해 세상에 따듯한 진심을 전하고 싶은, 사단법인 온기의 조현식입니다.

장 : 현식 님을 TV 뉴스에서 처음 본 기억이 나요. 2018년이었나요? 저녁 뉴스에 핑크색 스웨터를 입고 앳된 얼굴로 '온기 우편함'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당시에 대학생이었죠?

조 : 앗! 맞아요. 당시에 대학 복학생이었어요. 맨 처음에 삼청동 돌담길에 첫 우편함을 설치했을 때 저를 보신 것 같네요. 아이고 부끄러워라. (웃음)
온기우편함

장 : 맞아요. 길거리에 우편함을 설치해 놓고, 사람들이 편지를 쓰면 익명으로 답장 손 편지를 써준다는 게 참 풋풋하면서도 다정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사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커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조 : 전혀 몰랐죠. 그냥 좋은 일이니까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사실 그때는 오래 이어질 거라고도 생각 안 했고, 단순히 "이 활동을 하는 게 좋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장 : 무엇이 그렇게 '좋다'고 느껴졌나요?

조 : 서로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저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거였던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많이 안 계셨거든요. 열심히 공부하길 바라셨고, 저는 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지만 뭔가 다정한 지지를 받는다는 느낌은 시간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부족했어요. 그래서인지 대학에 와서 뭔가 헛헛한 마음이 커졌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보고 나서, 현실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어떨까 꿈꾸게 됐죠.

장 : "나를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해주는 공간"에 가까울까요?

조 : 네, 우리는 누구나 마음이 아파도 감내하고 숨긴 채 살아가는 날들이 꽤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엔 왠지 부담을 줄까 봐 주저하게 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고민으로 인해 힘들어지고 아플까 봐 말을 삼키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 곳, 얼마든지 꺼내어 말하고 공감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장 : 그런데 그게 심리 상담 센터를 내가 '찾아가는'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 : 대학생 때부터 봉사를 많이 했었거든요. 누군가를 돕는 순간에 제가 살아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게도 필요한 공간이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받고 싶은 공감과 지지를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게 자연스럽게 우편함이 된 거죠.

장 :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공익 프로젝트가 됐어요.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조 : 처음에는 단순했거든요. 우편함을 설치하고, 시민들이 넣어주신 편지를 모아서 함께 답장 편지를 써주시는 온기우체부(자원봉사자)분들에게 전달했어요. 처음엔 사무실도 없어서 카페에 모여서 같이 답장을 쓰곤 했죠. 그런데 이 편지에 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내어주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CGV, 이케아, 스타벅스 같은 기업이나 지자체와도 협업하게 되면서 많은 분들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어요. 또 최근에는 소방공무원분들에 대한 정서적인 지원이 필요함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소방청과 함께 전국의 소방서에도 우편함을 설치하고 있어요.
온기우편함

장 : 정말 온기가 세상 곳곳에 전해지고 있네요. 그 작은 봉사활동 하나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말이에요. 범위가 넓어진 만큼 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겠어요?

조 : 네. 지금은 사단법인 형태로 활동을 하게 되었고, 참 감사하게도 손 편지를 써주시는 자원봉사자 외에도, 전업으로 동료 8분이 함께 하고 있어요.

장 : 그런데 말씀을 나누다 보니, 현식 님은 약간 수줍음도 있고 3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소년 같은 느낌도 있으시단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많은 기업과 협업하고 직원분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상상이 잘 안 되기도 하는데요.

조 : 맞아요. 사실 제가 리더 성향은 아니고 서포터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내향인이기도 하고요. 다들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점심도 혼자 먹을 때도 많고, 뭔가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어려운 역할도 맡아야 한다는 걸 부쩍 느끼고 있습니다.

장 : 그렇네요. 온기 우편함이 커지면서 현식 님의 삶 자체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고민이 가장 큰가요?

조 : 앞서 말한 것처럼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커요. 뒤에서 돕는 것을 더 편해하는 성향인데, 아무래도 제가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보니 자연히 리더일 수밖에 없지만 과연 내가 리더라는 자리에 맞는 사람일까? 더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데 내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많아졌죠.

장 : 그런 과정에서 예전보다 편지를 쓰는 시간은 많이 줄어들었겠는데요.

조 : 맞아요. 초창기엔 제가 편지를 쓰는 일 자체가 제일 큰 보람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쓰지 못하는 날도 많아요. 회의, 협업, 행정 업무에 치이다 보면 집에 돌아가서도 지쳐서 그냥 쓰러져 자버리기도 하고요.

장 : 그렇다면 지금의 삶의 행복도를 점수로 매긴다면 어느 정도일까요?

조 : 한 10점 만점에 6점 정도일까요? 아주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하면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따듯한 가정도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도 있고, 동료들도 안정적으로 너무 잘해주고 있는데, 여전히 마음속에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어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 내가 정말 살고 싶은 방식은 뭘까?"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다니죠.

장 : 그렇다면, 그런 현식 님에게도 누군가 편지를 써 주면 어떤 말을 해 줄까요?

조 :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저에게 편지를 써 주시는 건 아니지만... 많은 분들께 이미 편지를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온기 우편함을 통해서 답장을 받은 분들이 후일담을 전해와주시면 그게 저에게 다시금 이 일을 하는 의미를 되새겨주고, 힘이 되어주거든요.

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가게 해주는 힘 말이죠? 어떤 걸까요?

조 : 결국은 여전히 "누군가에겐 따듯한 편지 한 장이 필요하다"라는 저의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의 저에게도, 지금의 저에게도 따듯한 한마디가 필요하듯이 누구에게나 그런 한마디가,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이 힘 아닐까요?

장 : 결국 현식 님이 만들어낸 우편함이 누군가의 온기가 되고, 그 온기를 경험한 사람들의 감사 인사가 다시금 현식 님에게 '초심'을 되새기게 만들어주는, 서로 간의 온기의 순환인 셈이군요.

조 : 네 맞아요. 저도 그 과정에서 아직 제 인생의 방향이나 답을 온전히 다 찾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는 계기가 되어요.
온기우편함

장 : 앞으로의 온기는 어떻게 나아가게 될까요?

조 : 많은 고민과 변곡점에 있는 시기, 그럼에도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프로젝트와 시도를 통해 스텝 업을 하고 시민들께 더 큰 의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순간도 있고, 이제는 어딘가에서 저를 전문가라고 부르시거나 자문을 요청하시는 경우도 많이 생기지만, 전 여전히 그런 게 낯설고 어렵거든요.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해나가든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고 털어놓을 수 있는 작고도 따스한 창구로서의 초심은 잃고 싶지 않아요.

장 : 마지막으로, 내가 요즘 가장 마음이 쓰이는 대상이 있다면? 그리고 그 대상에게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요.

조 : 일단 두 대상이 떠오르는데요. 첫 번째는 저의 딸이 떠오르는데요. 미안하다는 말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나이지만,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더 많은 시간 곁에 있어주고 싶고 사랑해 주겠다고 말하고 싶고요. 두 번째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에요.

장 : 그분들껜 어떤 말씀 전하고 싶나요?

조 : 계획대로 되는 건 거의 없더라고요. 작더라도 시작해 보면, 그 시작이 다른 시작을, 기회를 열어줄 거예요. 저는 그랬거든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책을 읽다 우편함을 만들어 봤고, 그 우편함이 다른 우편함을 세우도록 하고, 사람을 연결해 줬어요. 시작이 이끄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명확하더라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