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프랑스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했다는 소식, 아마 들으셨을 겁니다. 프랑스가 워낙 시위를 많이 하는 나라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겠는데 일단 모인 시민들의 규모도 규모고, 시위와 함께 들리는 프랑스의 빚 얘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또 들려오는 다른 소식을 살펴보면 프랑스 정부가 몇 개월 만에 붕괴했다느니, 새로운 총리가 들어섰는데, 바로 또 실각했다느니…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는 듯하죠. 게다가 10월 초에 다시 또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프랑스 상황이 어떻길래 이런 소식들이 전해져 오는 건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모든 것을 봉쇄하라" 울분 토한 프랑스 사람들
2025년 중반부터 프랑스 사람들의 SNS에는 이런 글이 돌기 시작합니다.

'블로꽁 뚜' 영어로 하면 'Block Everything'으로 '모든 것을 봉쇄하라'라는 뜻을 가진 문장입니다. 노동조합이나 특정 정치 단체에서 주도한 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SNS에서 시작한 일종의 풀뿌리 운동이었죠. '블로꽁 뚜'를 달던 사람들은 9월 10일에 모이자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조금 더 운동을 구체화시켰고 이 흐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어요. 9월 10일에 프랑스 시민들이 모여 말 그대로 프랑스의 모든 것을 봉쇄하자는 거였죠. 이날 경찰 추산으로는 프랑스 전국에서 800건이 넘는 시위와 봉쇄가 발생했고, 참여한 인원은 약 20만 명 규모였습니다.
이들을 이렇게 분노케 한 이유, 바로 내년도 예산안 때문이었어요. 지난 7월 프랑스의 바이루 총리가 2026년 예산안을 발표합니다. 이 예산안에는 프랑스 재정적자를 낮추기 위해 공공지출 규모를 줄이고, 연금과 복지 혜택은 동결하는 안이 담겼어요. 또 세입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공휴일 이틀을 줄이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었죠. 이를테면 이제는 더 이상 의미가 희미해진 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나 부활절은 폐지해도 될 것 같다는 거죠.

시민들의 불만은 9월 10일 하루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18일엔 프랑스의 주요 노조 8개가 모여 총파업을 진행했죠. 대중교통 공기업도, 선생님들도, 또 약사들도 모두 모여 파업에 참여한 겁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 날 하루에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이들은 한 목소리로 예산안을 반대했습니다.
총파업 시위를 주도한 노조와 좌파 정당의 입장은 명확했습니다. "재정 긴축으로 피해를 보는 건 가진 것 없는 사람이다", "부자 감세 해서 재정 망쳐놓고, 그 부담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봐야 하냐!" 이런 거였죠.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감세 정책을 펼치면서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기대했습니다. 이를테면 부유세를 개편하고 법인세를 인하하면서 말이죠. 과거 프랑스에선 주식이나 채권, 예금 같은 금융 자산까지 포함해서 부유세를 매겨왔었습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부동산 보유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고 금융 자산은 과세 대상에서 빼는 개편을 진행했죠.
또한 법인세도 야금야금 줄이면서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줬어요.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5월부터 임기가 시작됐는데, 2017년 33.3%였던 법인세가 2018년 33.0%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2022년까지 매년 감소해, 현재까지 25%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최고 감사기관인 회계법원에서 발표하는 공공재정 보고서가 있는데 올해 보고서를 보면 마크롱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600억 유로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어요.
법인세도 내려주고, 금융 자산도 세금에서 제외해 주고 이렇게 부자감세 해놓고 허리띠는 일반 시민들이 졸라 매야 한다고 하니 시민들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거죠.
총파업을 이끈 노동조합은 프랑스 정부를 향해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노동조합의 입장은 바이루 총리의 2026년 예산안 포기하라는 겁니다. 9월 24일까지 노동조합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노조는 다시 또 총파업을 할 것이라 예고했어요. 그리고 이 협상은 최종 결렬되면서 프랑스는 10월 2일 다시 또 총파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격동의 프랑스... 3개월, 9개월 만에 연달아 내각 붕괴
일단 수많은 프랑스 시민들의 공분을 낳았던 내년도 예산안을 제안한 바이루 총리는 사퇴했습니다. 바이루 총리는 이 예산안을 두고 프랑스 의회에 신임 여부를 표결에 맡기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여기서 부결되어 버렸거든요. 이 표결이 부결되면 총리는 헌법에 따라 사임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정을 책임지는 이원집정부제입니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할 수 있지만 의회는 헌법에 따라 총리와 내각에 책임을 물을 수 있죠.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방법과 의회가 제시하는 방법 이렇게 말이죠. 일단 정부가 나서서 의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를 믿고 맡길 수 있는지, 한 번 표결해 보자"라고요.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판단을 해보고 만약 부결되면 책임지고 총리와 내각이 사퇴하겠다는 거죠.

두 번째는 의회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특정 법안에 대해 책임을 묻는 표결을 하는 겁니다. 국회의원들이 지금 내각을 믿을 수 없다는 안을 제출하고 50% 이상의 국회의원이 찬성하게 될 경우 총리는 대통령에게 사퇴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의회는 정부가 주도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불신임안을 낼 수 있어요.
2024년 7월부터 시작된 17대 프랑스 의회는 지금까지 벌써 10번의 내각 불신임안이 발의돼 표결이 이뤄졌습니다.

바이루 총리 이전 총리였던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지난해 10월에 2025년 예산안을 발표했어요. 내년도 예산안과 마찬가지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겼죠. 이 예산안을 두고 의회는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불신임안이 331표로 가결되면서 임기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실각하게 됩니다. 이 기록은 프랑스 최단기 기록이자, 1962년 이래로 무려 62년 만의 불신임안 가결이었습니다.
이후 지명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전임 총리가 발표한 예산안과 연금 개혁 관련해서 의회와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고, 그때마다 불신임안이 나옵니다. 과반수를 넘지 못해 실각은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 입장에선 다행히 정책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26년 예산안에 지난해보다 더 강력한 긴축안이 담기자 의회는 다시 또 반발했어요. 바이루 총리는 불신임안을 받기 전, 선제적으로 신임안 표결을 받겠다고 선언했고 지난 9월 8일에 치러진 이 표결에서 364명의 국회의원이 지금 내각을 믿을 수 없다고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1958년 프랑스 5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내각에서 선 제시한 신임안이 42번 있었는데 부결된 건 이번이 역사상 처음입니다. 결국 바이루 내각도 9개월 만에 실각되었어요.
그리고 9월 9일 새로운 총리로 지명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는 시민들의 반발이 컸던 공휴일을 축소하겠다는 말을 바로 주워 담았습니다. 부자감세에 대한 반발이 컸던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고위층에게 제공하던 특혜 예산을 먼저 삭감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요. 르코르뉘는 전직 총리와 장관에게 제공되는 특혜를 없애거나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전직 총리에게는 기한 제한 없이 차, 운전기사가 제공되어 왔는데 내년부터는 퇴직 후 10년으로 제한됩니다.
제2의 그리스 될까? 재정 '정상화' 필요한 프랑스
임명되는 총리들마다 불신임을 각오하면서까지 긴축 예산안을 내는 이유는 프랑스 재정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IMF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언급될 정도로 프랑스는 매우 심각한 재정 상황을 안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어요. 이미 3조 4천 억 유로를 넘겼고, 3초마다 1만 유로,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600만 원 넘게 쌓여나가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분기별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을 나타내봤습니다.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114.1%(잠정 추정치)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진 빚이 프랑스가 벌어들인 소득의 1.14배라는 뜻이죠.

이번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프랑스의 부채 비율은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3위입니다. 프랑스는 과거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 이탈리아와 같은 그룹에 위치해 있어요. 문제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는 점점 재정 상태가 개선되고 있는 반면에 프랑스는 그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거죠.
프랑스 재정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더 지출 비율이 높다는 겁니다.

2023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 중에 가장 GDP 대비 정부 지출 비율이 높습니다. 무려 57.0%로 독일과 비교하면 거의 10%p 가까이 차이가 나죠. 참고로 우리나라가 2022년 기준으로 GDP 대비 36.2%를 지출하고 있으니 프랑스가 얼마나 '큰 정부'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지출을 하길래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 하면, 바로 복지입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사회보장 영역 지출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아주 높죠.

사회보장 지출만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핀란드가 25.7%로 1위고, 프랑스가 23.4%로 2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료 영역에서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죠.
윗 세대는 나 몰라라? 돈은 '니콜라'가 낼 거야
복지 영역 가운데서도 현재 프랑스 재정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건 바로 연금입니다. 과거 1982년 미테랑 대통령이 추진한 사회 개혁으로 연금 수령 연령이 65세에서 60세로 축소되면서 은퇴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크게 늘어났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엄청난 재정 부담이 된 거죠.
2010년에 연금 수령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고 지난 2023년에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또 2년 더 연장하려 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격분한 시민들이 보르도 시청사 정문을 불태우는 등 폭력 시위로 번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연금 문제는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앞으로 고령화가 이어지면 받을 사람은 늘어나고, 연금 재정에 기여할 사람은 줄어드니까요. 1960년엔 연금을 받는 사람 1명 대비 연금 기여자가 4명이었지만, 2022년엔 1.7명으로 급감했습니다. 2040년엔 1.5명이 될 예정이고요.
심지어 프랑스 은퇴자들이 받는 연금액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아서 재정 악화는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65세 이상의 은퇴자의 평균 소득과 일하는 근로자의 평균 소득을 비교한 그래프입니다. 주요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프랑스는 100%를 넘어섭니다. 즉 은퇴자가 받는 연금이 근로연령대의 평균 소득보다 더 많다는 얘기인 거죠. 그러다 보니 프랑스 정부에서는 미래 세대들을 위해 윗 세대들이 희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일하는 세대들에게 책임과 부담이 가중되면서 이들을 향한 자조적인 밈도 유행했습니다. 30대 고소득 근로자를 뜻하는 이른바 '니콜라'가 주인공입니다.

니콜라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월급에서 정부는 세금을 거두고, 이 세금은 베이비 붐 세대들 연금으로 보내고, 아프리카 원조 비용으로 보내고, 또 이민자에게 보내고 있어요. 나라에 돈이 없다고요? 걱정 마세요 니콜라가 낼 거니까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자조적인 밈이 유행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지만 풀어야 할 실타래가 너무 많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복지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죠.
이런 어려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정치권이 나서서 대화와 토론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또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 프랑스 17대 의회는 진보, 보수, 중도 어느 정치 세력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들이 대화와 타협을 해내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은 각자가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고 있죠. 이번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던 좌파 정당과 노조의 입장은 부자 감세가 재정을 망쳤다는 거고요, 마크롱을 비롯한 중도 진영은 과도한 복지 지출과 고령화를 근본 원인으로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합니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은 이민자를 위한 지출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죠.
이렇게 정치권은 꽉 막혀있고 그 사이 시민들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프랑스 재정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