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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전유성이 뿌린 말의 씨앗이 숲이 되다 [스프]

[주즐레]

전유성
(SBS 연예뉴스 강경윤 기자)
'코미디언'이라는 익숙한 호칭 대신 '개그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사한 희극인 전유성이 지난 25일 영면에 들었다. 그의 생전 바람대로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졌으며, 발인 후 '개그콘서트' 녹화가 진행되는 KBS 공개홀 노제에는 정말 많은 후배와 동료들이 모였다.

이들은 상실의 슬픔 속에서도 고인의 유머와 유지를 따랐다. 김정렬은 '숭구리당당'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반세기 우정을 다져온 최양락은 눈물 속에서도 "내가 봉이야"를 외치며 유쾌하게 고인을 배웅했다. 고인이 평소 써달라고 했던 문구 "웃지 마, 너도 곧 와"는 그의 수목장 묘비에 새겨졌다. 화려하지 않지만, 생각할수록 웃기고 곱씹을수록 그럴듯한 이 느릿한 한마디에 전유성의 강렬한 힘이 응축되어 있다.

전유성은 어떤 한 분야로 정의하기 어려운 천재이다. 그는 '전유성을 웃겨라' 코너가 있을 정도로 느릿한 말투였지만, 오히려 글로 사람을 웃기는 데 탁월했고, TV 스타보다는 코미디계의 '배후세력'으로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가 남긴 족적은 한국 코미디의 초석이 되었다. '개그콘서트'의 개국 공신이자 국내 최초 코미디 전용 극장을 열었으며, '코미디 시장' 극단을 운영하며 졸탄, 안상태, 신봉선, 김민경 등 수많은 후배들을 '선착순'으로 뽑아 키웠다. "오디션을 봐서 뽑으면 어차피 될 놈을 뽑는 거지, 내가 키우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는 그의 말에는 가능성을 믿었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또한 '폭력은 딱 내 선에서만 끝내고 대물림은 하지 말자'라는 신념은 코미디계의 건전한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의 천재적인 선구안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1970년대 이문세, 주병진을 발굴했고, 가수 김현식에게 가수가 될 것을 권유했으며, 팽현숙을 코미디언 시험장으로, 배우 한채영까지 발굴하는 등 연예계의 숨은 등용문이었다.

전유성은 인재 발굴뿐 아니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심야 볼링장, 심야 극장, '신선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기' 등 1999년 책에 적었던 아이디어 중 상당수가 현실이 되었다. 청도 카페의 명함에 '배후세력 전유성'이라고 적는 등, 그는 평범함을 거부하는 삶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는 개그에 국한되지 않고 지식을 대중화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 이수만의 조언을 계기로 쓴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라는 베스트셀러였다. 언니네 이발관 출신 이석원 작가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책을 꿈꿨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의 말은 누군가의 꿈의 씨앗이 되었다.

전유성이 떠난 자리가 이토록 빛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단순한 선배나 스승이 아닌, 진정한 '친구'이자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였던 김신영은 평일 라디오 생방송을 제쳐두고 임종 전 일주일 동안 고인의 곁을 지켰다. "제자를 넘어 친구라고 불러주셨던 따뜻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겠다"라는 그녀에게 전유성은 스승 그 이상이었다. 공황장애 시절 "저 한물갔어요"라고 말했을 때, 교수님은 "축하한다. 한물가고 두물가고 세물가면 보물이 된다. 넌 결국 보물이 될 거다"라고 격려했다. 김신영이 추도사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분"이라며 목 놓아 운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조세호는 일에 대한 고민이 앞설 때마다 "둘 중 하나야, 하든가 말든가. 그냥 해라"라는 교수님의 명쾌한 조언이 마음에 맴돈다고 했다. 김동하에게는 "왜 인사를 남들처럼 하니 너만의 언어로 색다르게 해 봐"라며 당황의 틈을 들여다보는 법을 알려줬다. 김영희가 세상에 나가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 "참 잘한다"고 하고, '말자할매'를 할 때는 불쑥 전화를 걸어서 "가끔 해결 못할 고민은 그냥 넘어가는 것 어때? 인간미 있잖아"라며 무심하게 응원을 건넸다. 신동엽이 데뷔 30주년에 감사함을 담아 전유성에게 "큰돈"을 보낸 일화는, 후배들이 고인에게 받은 '기회'와 '가르침'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임을 보여준 것이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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