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일제히 마비되자 정보 시스템 이중화 조치 미비가 일을 키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를 일으킨 판교 데이터센터 운영관리 도구 이중화 공백이 행정부 버전으로 되풀이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어제(2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발생한 화재로 국정자원 대전 본원에 있는 정부 전산 시스템 647개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이 가운데 30개가 사흘 만에 복구됐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8일 오후 10시 기준 복구된 서비스는 모바일 신분증과 우체국 인터넷 예금, 해운항만물류정보시스템, 국정관리시스템, 보건의료빅데이터 시스템 등 30개 서비스입니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전산망 이중 장치가 있었다면, 전산실 1개에 불이 났다고 해서 행정 서비스가 마비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데이터 백업은 해놨다고 하지만 한쪽에서 사고가 나면 곧바로 이어받아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복구가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건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컴퓨팅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뿐 아니라 냉각 장치, 화재 방지 장치 같은 부대 시설까지 모두 이중화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게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명예교수도 "재해재난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대전·광주·대구 분원에 이중, 삼중 시스템이 있었다면 한 곳에서 장애가 발생해도 서비스가 빠르게 복구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대전 본원 외 지역 분원에 데이터 백업 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이를 가동할 시스템이 부족해 행정 서비스 복구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센터 간 백업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데이터를 돌릴 시스템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예산 측면에서 관련 장비 여유분을 갖추기가 빠듯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국가 전산망 기능 마비를 두고 3년 전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정부 버전으로 재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3년 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정부가 카카오톡에 다중화 클라우드 서버 구축 등 강도 높은 대비책 마련을 요구해 놓고, 정작 정부 시스템은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화재로 카카오톡이 마비됐을 때 전 국민이 불편을 겪었는데, 당시 정부가 민간기업인 카카오톡에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해놓고 정작 정부는 지키지 않았던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카카오톡보다 훨씬 중요한 게 행정 시스템인데, 정부가 (카카오톡 사태 이후) 2년여간 손 놓고 있었다는 게 타당한 얘기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김 교수는 또 "전산실에 불이 나더라도 정부 시스템이 먹통이 되지 않아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백업을 어느 정도로, 얼마나 자주 하느냐가 관건인데 정부 전산망에 대한 백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번 사태는) 초보적 실수"라며 "전산망 관리에 기초적인 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