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2월 생산된 겨울 특산물 '낙동김'
부산에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품 김 생산지가 있습니다.
바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인 낙동강 하구입니다.
알맞은 염도와 적당한 물살, 풍부한 영양염류 덕에 김 양식 역사만 100년이 넘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낙동김'은 부드러운 데다가 유독 까맣고 향긋해 'K-김' 열풍이 부는 해외에서도 큰 인기입니다.
그런데 최근 바다 수온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김 종자를 부착하는 시기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습니다.
수온이 뜨거워지는 날이 길어질수록 어업인들은 김 생산성과 품질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합니다.
9월 중순인데도 부산 가덕도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후텁지근했습니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나왔지만,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10년 전이었다면 80여 척의 어선이 해상에 김 종자를 부착시켜 발아시키는 채묘 작업을 하느라 북적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뜨거워진 바다에 이제는 누구도 이 시기에 종자를 심을 수 없습니다.
이날 바다 수온은 25.5도였습니다.
수온이 22도 이상일 때 김 종자를 채묘하면 생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폐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에 채묘 시기도 예전에는 추석 직전이었지만 이제는 추석 이후로 미뤄졌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김을 채묘하고 수확하는 시기가 15일가량 미뤄진 상태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김 수확을 시작해 경력이 50년에 접어든 오성태 부산시수협 조합장은 바다를 가리키며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오 조합장은 "지금쯤이면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일해야 할 때인데 지금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 않으냐"며 "매일 수온을 확인하는 어업인들은 속이 탄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 당장은 품질이나 맛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장기화하면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전국은 물론 세계로 뻗어나가는 낙동김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으면 업계 전체에 비상이 걸립니다.
낙동김은 김을 대거 생산하는 전라도에서도 김밥 김을 생산하기 위해 꼭 일정량 공수해가는 품종입니다.
낙동김을 혼합해야 구멍이 나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최근 해외에서도 'K-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외국에서 김을 수입할 때 낙동김의 혼합 비율을 확인할 정도입니다.
안상섭 중리어촌계장 역시 "낙동김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이를 공급받아야 하는 전국의 김 공장에 비상이 걸린다"며 "일정 양을 시장에 꾸준히 공급해줘야 가격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제적으로 김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고수온은 김을 생산하는 데 치명적입니다.
바다가 뜨거우면 채묘가 늦어져 수확이 지연됩니다.
여기에 이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적정 수온이 유지되지 못해 김의 생산성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모작 방식으로 채취하는 낙동김에 수온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업인들은 10월에 심어서 기른 뒤 급속 냉동한 종자를 1월에 다시 심는 방식으로 김 종자를 2번 심습니다.
오성태 조합장은 "수년 전 떨어졌던 수온이 갑자기 올라 첫 번째 채묘했던 종자가 다 죽어버렸고, 결국 두 번째 종자를 급히 채묘해야만 했다"며 "그 해는 결국 한 번밖에 수확하지 못해 업계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대로라면 김을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23년에 낸 '수산 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 보고서'에서는 김이 생장하기에 적정한 수온인 5∼15도를 유지하는 기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측합니다.
현재는 해당 수온 범위에 들어가는 일수가 연간 150일 안팎이지만 2100년에는 100일 미만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고수온이 낳은 김의 생산성 감소는 결국 일반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허진석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연구소 연구사는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면 가격이 안정되지만, 한쪽이 그렇지 않으면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뜨거워지는 바다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를 버틸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현재 고수온을 견디는 능력을 갖춘 품종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양식 초기인 김의 유엽기 때 고수온의 영향을 받을 경우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피해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허 연구사는 "현재는 생장성이 좋은 품종을 선발해 우량종을 개발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고수온에 버틸 수 있는 능력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따뜻한 지역에서도 정상적으로 생장할 수 있는 아열대성 형질의 종을 찾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까지는 경험이 많은 어업인들이 수온에 맞춰 일정을 적절히 조정해 우수한 생산성을 유지해왔다"며 "우리나라의 우수한 김 명성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도록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업인들은 김 업계를 지원할 연구 인력이 늘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김종열 부산시수협 상임이사는 "일선 현장에서는 김과 관련한 연구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며 "경쟁국인 일본, 중국보다 뛰어난 품질을 유지하고 'K-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면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수"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