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6월 11일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열린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덴마크가 과거 식민지였던 그린란드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여성들을 사전 동의 없이 강제로 피임시키고, 이로 인해 일부 여성들은 평생 불임을 겪은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덴마크 총리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피해자들은 사과로는 부족하다며 덴마크 정부에 배상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그린란드대와 남덴마크대의 공동 조사 보고서에 과거 식민 지배 당국이었던 덴마크가 과거 그린란드 여성들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강제 피임 정책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현지시간 9일 보도했습니다.
앞서 지난해 그린란드 원주민인 이누이트족 여성 150여 명이 동의 없는 자궁 내 피임장치(IUD) 삽입 시술로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날 보고서는 그 진상규명의 결과로 나왔습니다.
보고서에는 개인의 증언과 의료 기록, 역사적 문서 등을 바탕으로 한 410개의 사례가 담겼는데, 이 중 349건에서는 피해자들이 시술로 인한 합병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린란드는 지금으로부터 3세기도 더 전에 덴마크의 식민지가 됐고, 1979년 덴마크의 자치령이 됐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 의사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수십 년간 그린란드 여성들에게 IUD 삽입 시술을 해 왔습니다.
보고서에 나온 대다수의 피해자는 피임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고 피임 장치를 삽입하라는 권고도 사전에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2세의 어린 소녀들도 IUD 삽입 시술을 받았습니다.
시술받은 많은 여성이 과다 출혈과 감염, 통증으로 누워있거나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고통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의사들에게 IUD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의사들은 거부했고, 결국 자신이 장치를 직접 빼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13세였던 한 여성은 "다른 여자아이들이 잡아당겨서 뽑았다고 해서 나도 내 IUD를 뽑아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의사들이 IUD 제거를 거부해 만성 통증과 수치심, 고립 속에 살아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IUD 삽입 대신 호르몬 피임 주사제인 데포-프로베라 주사를 맞은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 주사를 맞은 여성 중 일부는 생리가 영구적으로 멈추거나 불임이 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궁이 장기적으로 손상돼 수술로 제거한 여성도 있었습니다.
이런 그린란드 여성에 대한 강제 피임은 덴마크가 그린란드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정책으로 시행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편입하고 싶다는 야욕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덴마크가 그린란드와의 유대를 더 강화하려는 시점에 나왔습니다.
그린란드 여성들에 대한 강제 피임 조치를 했다는 것이 공론화되자 메테 프리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지난달 옌스 프레데리크 니엘센 그린란드 총리와 공동 성명을 내고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프리데릭센 총리는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책임을 질 수는 있다. 따라서 덴마크를 대표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린란드 주민들은 강제 피임 조치를 식민 지배가 끝난 이후에도 식민 주민으로 대우받은 사례로 보면서 덴마크 정부에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15세 때 동의 없는 IUD 삽입 시술을 받았다는 울라트 바흐는 덴마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날 나온 보고서가 "우리가 당한 일에 대한 인정"이라며 "누구도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