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남의 기술을 훔치거나 베끼는 '기술 탈취'는 기업의 성장 동력을 꺾는 경제 범죄로 평가받습니다. 저희는 오늘(8일)부터 기술 탈취 분쟁 실태와 그 대책을 연속 기획으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그 첫 순서로, 하청업체의 기술을 베끼고 보복행위까지 했다는 점을 들어, 공정위가 1년 전 기술 탈취 사례 가운데 역대 가장 큰 과징금을 물린 사례인데요.
1년이 흐른 지금 그 하청업체는 어떻게 됐을지, 탐사보도부 김민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민준 기자>
선박용 공조기를 만드는 이 업체는 지난 2015년, 배의 환기구를 통해 외부에서 빗물이나 파도가 들어오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그해 바로, 국내 1위 선박용 장비 업체 '하이에어코리아'와 하도급계약을 맺고 제품을 납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약속했던 주문이 끊겼습니다.
[바람인텍(하청업체) 관계자 : 발주가 나와야 하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없다 보니 조사를 했었고 검사 차원에서 갔었는데 그 제품을 만들고 있는 걸 보게 된 거죠]
이런 사실을 공정위에 신고하자 보복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모든 거래를 끊는 것은 물론, 다른 조선소와의 거래까지 훼방 놓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바람인텍(하청업체) 관계자 : 하이에어코리아에서 디섹(조선 전문 업체)이라는 곳에 직접 다이렉트 연결을 해서 자기들한테 발주를 달라. 그러면 판매를 하겠다]
공정위는 조사 끝에 하이에어코리아가 기술을 베끼고 보복행위까지 했다고 판단해 과징금 26억 4천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이와 함께, 무단 도용한 하청업체의 기술 자료를 모두 폐기하고 기술 도용 행위와 보복을 중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SBS 취재 결과, 공정위 시정명령은 모두 집행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하이에어코리아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집행 정지 신청도 했는데,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겁니다.
[이영웅 변호사/바람인텍(하청업체) 대리인 : 집행정지 신청이 과징금 부분을 제외하고는 받아들여져서 (하이에어코리아는) 계속해서 (해당 제품을)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업체는 과징금만 내고 계속 제품을 생산하는 상황.
결국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1년 넘게 기다린 공정위 조사가 끝났음에도 달라진 게 없는 셈입니다.
[기술개발에 대한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결국 내 기술 개발을 하더라도 사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동력이 상실돼 버리니까]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원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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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 취재팀은 하이에어코리아 측의 입장도 들어봤습니다. 이들은 공정위 판단이 공정하지 않다며 행정소송을 통해 진실을 다투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벤치마킹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박했습니다.
이어서 박수진 기자입니다.
<박수진 기자>
하이에어코리아 직원은 지난해 공정위 조사에서 하청 업체의 도면을 개발 과정에 참고하긴 했지만 베끼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최종 완성된 장비를 분석한 결과 부품 구성과 작동 원리가 하청 업체의 것과 동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공정위가 확보한 하이에어코리아 내부 자료를 보면 타사 제품을 벤치마킹해 개발함으로써 원가를 4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내부 증거들까지 다수 확보됐지만 하이에어코리아는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이에어코리아 측은 억울하다고 항변합니다.
[하이에어코리아 관계자 : 벤치마킹이라는 건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좀 더 개선시켜보겠다, 발전시켜보겠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노하우를 넣었는데 그걸 기술유용이라고 하는 거죠.]
자신들은 기술을 베낀 것이 아니라 '벤치 마킹' 그러니까 단지 참고했을 뿐이었다는 겁니다.
행정소송을 거쳐도 공정위 처분이 유지되는 경우는 82%, 일부 유지되는 경우까지 더하면 90%가 넘지만, 문제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통 몇 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하이에어코리아를 상대로 하청업체가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도 이 행정소송이 시작되면서 잠정 중단됐습니다.
[바람인텍(하청업체) 관계자 :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려버렸잖아요. (앞으로) 6년, 7년 지났을 때 (우리가) 시장에 '이런 제품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우리 물건을 과연 사줄까요.]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윤태호, 디자인 : 이연준·최하늘, VJ : 김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