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 문서를 2일 공개했다. 사진은 199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북한이 최근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남북 국호 사용조차 거부하며 국가 대 국가 관계 설정을 극렬히 거부했던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통일부는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8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남북은 양측 총리가 수석대표로 나선 고위급회담을 통해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관계 전반을 규율하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북측은 회담 내내 "하나의 조선"을 부르짖으며, 상호 실체와 체제 인정 조항을 넣자는 남측의 제안을 "분열지향적", "두 개의 조선 고착"이라며 맹비난했습니다.
1991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열린 제4차 고위급회담 2일 차 회의에서 북측 대표단장인 연형묵 정무원 총리는 "귀측이 새로운 합의서 제목에 공공연히 북남 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로 정식화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두 개의 조선으로의 분열을 고착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겨레의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북측은 합의문에 양측의 정식 국호를 쓰는 데에도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습니다.
북측 대표단의 안병수 대변인은 4차 고위급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남측에서 제기한 그 단일안의 제목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간의 화해, 불가침,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 이렇게 쌍방 국호를 완전히 정식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결국은 남측이 두 개 조선으로의 분열을 고착화한다는 그런 인식을 우리 겨레들로부터 받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다만 이 문제는 북한이 양보해 남북 합의서 최초로 쌍방의 국호가 명기됐습니다.

북한은 1991년 11월 15일 남북 대표접촉에서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상호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 간 관계처럼 보인다며 반발했습니다.
북측 대표단의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는 "평양과 서울에 어떤 명칭을 무엇이라 하든 간에 무슨 대표부를 설치하면 국가와 국가들 사이의 관계로서 이해된다"며 "국가들 사이에서의 관계처럼 돼서는 절대 안 되겠다"며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북한의 주장대로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북한은 1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측의 유엔 동시 가입 안은 "두 개 국가로 될 수밖에 없다"며 비난하면서 단일의석 가입 안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사진=통일부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