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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민영화' 문 열리나…삼인삼색 '인수의 꿈' [취재파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본관

새 정부 들어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민영화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습니다. 당국과 업체 사이에 모종의 소통을 하는 흔적이 짚이는 것입니다. 고요한 가운데 의지는 분명히 엿보이는, 정중동의 형세입니다. 정부 지분이나 매한가지인 수출입은행의 26% 지분을 매개로 KAI를 낙하산 경영하기가 실속으로나 명분으로나 옳지 못하고, 수출입은행은 수출입은행대로 자본이 달려서 수출금융에 애를 먹고 있는 형편이라 정부로서는 KAI 지분 매각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우주항공산업은 방산 분야 중에서 가장 많은 자본과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그동안 K-우주항공의 국가대표 KAI는 낙하산 체제 하에서 지지부진한 투자에 시달렸습니다. 이왕 민영화한다면 짱짱한 자본과 원천 기술을 수혈해 KAI를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민영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KAI 구성원들이 생각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대형 방산업체들이 하나둘 KAI를 인수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한화, 현대자동차·현대로템, LIG넥스원의 3파전입니다. 각각 뚜렷한 장점이 있는 반면, 뼈아픈 단점도 있습니다. K-우주항공과 K-방산의 발전을 지향하는 인수전이 돼야 할 텐데 벌써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의 낌새가 보입니다. 인수를 꿈꾸는 업체들의 속사정을 아래와 같이 들여다봤습니다.
 

"육해공 완전체 향해 최선"

한화는 첨단 항공엔진과 무인기 개발을 역점 사업으로 삼고 있다.

K9 자주포와 수상함, 잠수함 등 육지와 바다의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는 KAI의 전투기 플랫폼 확보로 육해공 방산 완전체의 마지막 매듭을 짓겠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KAI 지분 매각 기미가 보이자 가장 부산했던 데도 한화였습니다. 이번 정부가 KAI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역시 한화는 민영화 국면을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 측 고위 소식통은 "한화 계열사들이 항공 엔진과 에이사 레이더, 항공전자 소프트웨어, 무인기 등을 개발하고 있어 한화와 KAI의 결합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양산은 KAI에서 하지만 엔진과 레이더 등 KF-21의 알짜는 한화에서 개발하는 만큼 한화와 KAI의 거리가 가까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 소식통은 "K-방산은 작은 규모로 수출에 전념하는 옹색한 상황인데 글로벌 방산업체들과 수출 경쟁을 하기 위해, 또 수출에 따른 절충교역 해결을 위해 방산 통합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전쟁이 발발한 지금 같은 시장에서야 K-방산의 플레이어가 많아도 무방하지만 평화의 시기에 자잘하게 많은 플레이어는 우리 경제의 짐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화 측의 출사표 속에 한화의 단점이 숨어있습니다. 한화의 독점, 독주입니다.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KAI까지 집어삼키는 한화의 먹성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실재하고, 이것은 한화의 큰 단점입니다. 한화 측 소식통은 "방산업체 대형화와 수출 경쟁력 제고는 하나의 패키지인 만큼 장점으로 단점을 상쇄시킬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번엔 적극 참여한다"

현대로템은 차기 K2전차뿐 아니라 유무인복합전차, 다목적무인전차 등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로템과 현대자동차도 KAI 인수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현대자동차는 한때 KAI 대주주였습니다. 지분을 정리한 뒤 KAI에 대한 관심을 딱 끊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KAI 인수 희망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미래 교통 수단인 도심항공교통(UAM·Urban Air Mobility) 역량 확보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대안이 KAI 인수이기 때문입니다.

장점은 현대자동차 그 자체입니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기업 순위 2위, 글로벌 완성차 업계 순위 3위의 공룡입니다. 신인도, 개발 인력, 자금, 시장 개척 능력 등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평가입니다. 인수를 바라는 경쟁 업체들이 갖지 못하는 압도적 장점임이 분명합니다.

"KAI 민영화를 위해 당국과 소통하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현대로템 측 고위 소식통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소식통은 "현대자동차의 무인항공 분야 진출 의지가 크다", "KAI 민영화 시장이 열린다는 시그널이 공식화되면 현대자동차의 적극적 공개 행보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단점은 현대자동차가 앞에 서있다 보니 방산의 색깔이 퇴색한다는 것입니다. KAI 민영화의 핵심은 "KAI를 어떻게 세계적인 우주항공기업으로 성장시키느냐"인데 현대자동차의 생각은 "KAI를 이용해 현대자동차를 어떻게 더 발전시키느냐"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현대로템 측 소식통은 "군용·민용 항공기 개발의 미래 청사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꼴찌 같은 2등은 피해야"

LIG넥스원은 육해공 복합 디펜스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KAI를 놓치면 1등과 초격차로 벌어진, 꼴찌 같은 2등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LIG넥스원 측 고위 소식통은 "한화가 KAI를 차지한다면 LIG넥스원은 한화의 육해공 플랫폼에 무장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전락한다", "한화의 독주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래서 KAI 민영화 국면이 열리면 LIG넥스원의 모토는 '타도 한화'가 될 전망입니다.

LIG넥스원의 장점은 한화의 단점과 맥이 통합니다. 한화의 독주를 막고 K-방산의 안정적인 과점 체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LIG넥스원 측 소식통은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KAI까지 한화에 매각하면 한화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일어날 것이고, 정부는 이런 부담을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KAI 인수를 위한 총알도 어느 정도 쌓아놨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원군은 LIG넥스원의 관계사인 LG로 알려졌습니다.

LIG넥스원도 단점이 있습니다. 오너인 구본상 회장과 그의 아버지인 구자원 전 회장이 2013년 구속된 사건입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어서 '부자 동시 구속' 같은 강수는 잘 안 두지만 법원은 구자원·구본상 부자를 기업어음(CP) 사기 혐의로 함께 구속시켰습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시장을 해외로 넓히면 아무래도 LIG넥스원의 도덕성이 걸린다"고 꼬집었습니다. LIG넥스원 측 또다른 소식통은 "부자 구속 사건을 잘 해명하지 못하면 KAI 민영화 시장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란 위기의식을 가지고 단단히 준비를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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