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국내 음원 사이트에 영국 포크 가수 에밀리 포트먼의 가짜 음반 '오르카(Orca)'가 등재돼 있다.
인공지능(AI)이 가수의 이름과 목소리를 흉내 낸 '가짜 신곡'을 스트리밍 플랫폼에 잇달아 유통시키면서, 당사자들이 모르는 사이 명의 도용과 저작권 침해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영국 BBC는 AI로 생성된 음악 때문에 당혹과 불편을 겪은 가수들의 사례를 전했습니다.
영국 포크 가수 에밀리 포트먼은 최근 새 앨범을 낸 적이 없는데도 팬으로부터 신보를 칭찬하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팬이 남긴 링크를 따라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앨범 '오르카(Orca)'가 있었고, 본인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한 보컬과 연주까지 확인됐습니다.
포트먼은 가짜 음반을 들은 소감에 대해 "명백히 AI로 생성된 것이지만, 내 음악을 영리하게 학습한 것 같았다"면서 "소름 끼쳤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는 AI가 만들어낸 노래에 인간의 창의력이 결여돼 '공허하고 깨끗하기만 한 소리'로 들렸다고 평가했습니다.
며칠 뒤 포트먼의 이름으로 된 가짜 AI 음반이 또 스트리밍 페이지에 등재됐고, 그는 저작권 침해 신고를 했습니다.
일부 플랫폼은 비교적 신속히 삭제했지만,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서는 삭제까지 3주가 걸렸습니다.
그는 "디스토피아의 시작처럼 느껴져 고통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음악가 조시 코프먼도 최근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가짜 AI 신곡을 접했습니다.
어눌한 영어 가사에 단조로운 키보드 전자음이 깔린 곡이었는데, 그는 "음악은 우리 영혼의 서명인데 다른 누군가가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며 "사람들이 컴퓨터가 만든 게 분명한 이상한 음악을 올리기 위해 내 프로필을 이용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포크록·아메리카나 장르의 다른 가수들도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들 AI 신곡은 커버 아트가 비슷한 스타일이고, 주로 인도네시아 이름의 음반 레이블에서 출시됐으며, 상당수가 작곡가를 '지안 말리크 마하르디카'로 표기하고 있어 동일 출처로 추정됩니다.
심지어 1989년 사망한 컨트리 가수 블레이즈 폴리의 신곡이 올라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BBC는 이 같은 피해 가수들이 누가 왜 이런 가짜 음반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포트먼의 가짜 앨범 크레딧에는 '프레디 하우얼스'라는 제작자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그런 이름의 제작자나 음악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코프먼은 "조용히 활동하는 내가 왜 표적이 됐는지 모르겠다. 수익을 노린 일이라면 왜 거물급 스타를 노리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디어 기술 분석업체 '미디아 리서치'의 타티아나 시리사노는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으려 덜 알려진 가수를 노리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시리사노는 스트리밍 업체들도 점차 AI를 활용해 가짜 음원을 탐지·차단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벅스 웹페이지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