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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의 한일 정상회담 공동발표문…과거사보다 '미래 협력'에 방점

17년 만의 한일 정상회담 공동발표문…과거사보다 '미래 협력'에 방점
▲ 한일 정상회담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이시바 총리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 미래 협력'에 방점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8월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17년 만에 한일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습니다.

이번 발표문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총리 간 체결 이후 처음으로, 그간 단절됐던 정상 간 공식 문서 형태의 합의 발표가 재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 핵심 5대 의제 중심의 간결한 발표문

공동언론발표문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뉩니다.

첫째, 정상 교류 및 전략적 인식 공유, 둘째, 미래산업 협력 및 공동 과제 대응, 셋째, 인적교류 확대, 넷째, 한반도 평화와 북한 문제 협력, 다섯째, 역내 및 글로벌 협력 강화입니다. 특히 급변하는 역내 전략 환경과 새로운 경제·통상 질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양국 간 전략적 소통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2008년 발표문은 각 분야별 추진 일정과 국제협력 카테고리, 구체적 협력사업까지 매우 세밀하고 장문 형태로 구성되었으나, 이번 2025년 발표문은 핵심 5대 주제 중심으로 미래 산업, 사회문제, 인적교류, 안보, 그리고 글로벌 협력 등 전략적 키워드 위주로 간결하게 압축되었습니다.

● 역사 인식,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 강조

역사 문제와 관련해 이시바 총리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을 강조했습니다. 발표문에는 "이시바 총리는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포함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함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가 언급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의미합니다. 이 선언은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출발점으로 평가되며,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한 피해와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지난 15일 패전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이시바 총리는 일본 총리로서는 13년 만에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전쟁의 참화와 반성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기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이시바 총리가 지난달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퇴진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당내 보수파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한 정치적 환경이 일본 정부가 한국에 추가 양보를 하기 어려운 현실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미래산업·사회문제·인적교류 협력

양 정상은 또한 공동언론발표문에서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해 한일 양국이 중요한 협력 파트너임을 인식"하며, "인도·태평양을 포함한 역내 환경 변화와 새로운 통상질서에 맞추어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또한 수소, AI 등 미래산업 협력 확대와 저출산, 고령화 같은 구조적 사회문제 공동 대응을 위한 협의체 신설, 워킹홀리데이 참여 횟수 상한 확대 등 인적 교류 활성화 방안도 담겼습니다.

●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 명기

북한 문제와 관련해선 발표문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는 이시바 총리의 모두발언에서 나온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는 다소 표현 차이가 있는데,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즉, 비핵화의 대상이 북한에 국한되며, 북한은 이 용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해왔습니다.

반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한반도 전역에서 핵무기와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포괄적 의미로 해석됩니다.

한국과 미국은 사실상 북한 비핵화를 지칭한다고 이해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 철회, 주한미군의 핵 전력 배치 금지, 나아가 미군 철수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또한 공동발표문에서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이행,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 및 러시아·북한 군사 협력 심화에 공동 대응할 것, 핵·미사일 문제는 대화와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됐습니다.

●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표현은 제외

이시바 총리는 회담 중 육성으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발언했으나, 이 내용은 공동언론발표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부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나 남중국해에서의 항행 자유 침해에 대응하는 외교적 표현입니다. 냉전 이후 서방 국가들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영토 확장 및 강압적 행위를 경계하며 사용하는 용어로, 일본과 미국이 사실상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시바 총리 발언은 일본의 대중 견제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재명 대통령이 같은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중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납치 문제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에 감사한다"고 밝혔으며, 발표문에는 "양 정상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별도의 육성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공개적으로 다룰 경우 대북 협상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기존 판단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정상회담과 공동언론발표문은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직접적 언급 없이 미래지향적 협력과 전략적 소통 강화에 방점을 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민감한 과거사 현안보다는 실질 협력과 우호 관계 증진에 주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의 공동언론 발표문 전문입니다.

『 한일 정상회담 결과 공동언론발표문 (2025년 8월 23일 도쿄)
이재명 대통령 내외는 2025년 8월 23일 일본을 실무방문하였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내각총리대신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 정상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해 파트너인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이고, 상호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였다.
양 정상은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한일관계의 기반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시바 총리는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1. 정상 간 교류 및 전략적 인식 공유 강화
(1) 양 정상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약 2주 만에 캐나다에서 첫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된 데 이어, 약 2개월 만에 일본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됨으로써 양국 간 셔틀 외교가 조기에 재개된 것을 평가하였다.
(2) 양 정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한 역내 전략 환경 변화와 최근 새로운 경제·통상 질서 하에서 양국 간에 전략적 소통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안보·경제 안보를 포함한 각 분야에서 정상 및 각급 차원에서의 소통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2. 미래산업 분야 협력 확대 및 공동 과제 대응
(1) 양 정상은 경제·산업 분야에서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바탕으로 협력해 나갈 때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수소·AI 등 미래산업 분야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하였다.
(2) 양 정상은 저출산·고령화, 인구감소, 지방 활성화, 수도권 인구집중 문제, 농업, 방재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사회문제에 함께 대응해 나갈 필요성에 공감하고, 서로의 정책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가기 위한 당국 간 협의체 출범에 의견을 같이하였다.

3. 인적교류 확대
(1) 양 정상은 한일 청년들이 서로의 문화·사회를 체험 및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토대를 강화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한일 워킹홀리데이 참여 횟수 상한을 기존의 총 1회에서 2회로 확대하기로 하였다.
(2) 양 정상은 양국 관계의 긍정적인 기조 하에 올해 6월에 실시한 한일 양국 전용 입국심사대 운영을 환영하였다. 또한 앞으로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교류사업을 지원해 나가는 것을 포함하여, 양국 간 교류·상호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보다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 나가기로 하였다.

4. 한반도 평화와 북한 문제 협력
(1) 양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정책에 있어 양국 간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2) 양 정상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가 충실히 이행되도록 국제사회와 협력을 지속해 나가야 함을 확인했다. 또한,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이나 러북 간 군사협력의 심화에 대해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와 더불어, 대화와 외교를 통한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3) 양 정상은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5. 역내 및 글로벌 협력 강화
(1) 양 정상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흔들림 없는 한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한일관계 발전이 한미일 공조 강화로도 이어지는 선순환을 계속 만들어 나가자고 하였다.
(2) 양 정상은 국제사회에서 각종 과제에 대응해 나감에 있어 양국이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는 점을 재확인하였으며, 오는 10월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와 일본에서 열릴 한일중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상호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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