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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년 전 촬영지 찾았다…산중 눈에 띈 비석에 '이백원'

<앵커>

구한말 대한제국 시기,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저항의 주축 가운데 하나는 의병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당시 외국 기자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출발점으로, 김수영 기자가 무명의 의병들의 흔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기자>

총을 든, 매서운 눈초리의 의병 13명이 담긴 사진 한 장.

구한말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해 싸웠던 이름 없는 의병들 모습으로, 1907년 영국 '데일리 메일' 기자 매켄지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드라마에 등장하고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사진이지만 실제 장소는 추측만 무성했습니다.

이 사진의 실제 배경은 이곳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로 확인됐습니다.

현재는 새로운 길과 철길이 생기는 등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진 상태입니다.

장소를 찾기까지는 사진을 들고 3년 넘게 양평 지역을 샅샅이 뒤진 향토사학자들의 집념이 있었습니다.

[이복재/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찍은 장소조차 모르고, 어디서 찍었나 (확인했으니) 그 사진 속의 인물들에 대한 조사도 그걸 기초로 해서 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

장소만 확인됐을 뿐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

근처 산등성이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비석 하나가 눈에 띕니다.

의병장 '이백원'이라고 씌어 있는 비석.

매켄지 기자가 쓴 책 '대한제국의 비극' 내용과 비석에 적힌 전사 날짜를 따져보면, 이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했던 인물로 추정됩니다.

[최봉주/양평의병기념사업회 상임이사 : 굉장히 드물고 또 이게 제보자가 아니었으면 이것 찾지도 못해요. 이런 산속에 여기가 아주 산중인데….]

[하보균/의병장 '이백원' 외증손녀 : 어떻게 보면 무명 중에 유명인 거잖아요. 마중물이라고 그러잖아요. 혹시 그런 역할 하시려고 이렇게 그래도 비가 남아 있는 게 아닐까.]

무명 의병 기록은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도 않았습니다.

의병을 폭도로 기록한 일본의 '조선폭도토벌지'에 나타난 경기 지역 전투 기록은 1906년부터 1911년까지 모두 105건, 국내 연구진이 구한말 국내외 문헌자료 50여 건을 살펴봤더니, 같은 기간, 같은 지역의 전투 기록만 771건으로 7배 이상 많았습니다.

[강진갑/무명의병포럼 대표 : 의병 운동 과정에서 한 1만 7천 명이 넘게 전사를 해요. 우리가 독립유공자로서 파악이 돼 가지고 기하는 분은 5%밖에 안 됩니다.]

'일본의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자유민으로 죽겠다', 낯선 외국인 기자에게 당당하게 결의를 밝혔던 무명 의병.

광복 80주년, 무명용사를 추모하는 미국 알링턴 묘지처럼 이름 없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오영춘·하륭, 영상편집 : 윤태호, 디자인 :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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