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연장 서류들로 우리를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다른 베트남 사람들이 더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국적 기술연수생/인신매매 피해자)
지난달, 김해의 한 경찰서에서 두 베트남 청년을 만났습니다. 한국에 오면 용접 기술도 배우고 조선소에 취업도 할 수 있단 말에 거액을 들여 입국한 기술연수생들입니다.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품고 한국에 온 두 사람은 한국에 온 지 불과 2년 만에 '인신매매' 피해자가 됐습니다. 노동력 착취를 당해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로 공식 인정된 겁니다.
"현장 이탈하면 비자 취소"…'노동 착취' 인신매매 피해 인정
![[취재파일]'코리안 드림' 베트남 기술연수생,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다](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816/202101351_1280.jpg)
두 사람은 직업학교에서 용접 기술을 배우면 조선소에 취업할 수 있단 현지 유학원 설명을 듣고 2년 전 기술연수생 비자(D-4-6)를 발급 받아 입국했습니다. 학원비, 기숙사비, 이탈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2천만 원 가까운 돈을 냈는데 베트남에서 4~5년은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입니다. 브로커의 손에 이끌려 처음 도착한 곳은 김해의 한 직업학교, 기대는 금세 악몽으로 변했습니다. 시설은 열악했고 제대로 된 교육도 없었습니다. 일부 연수생들은 용접 교육 강사가 없어서 자율학습으로 용접을 익혀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목포의 한 공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이었습니다. 체류 기간 6개월이 지나야 현장 실습을 허용하는 기술연수 비자 관련 지침을 위반한 겁니다. 한국어능력시험 2급 이상을 소지해야 하고, 실습 기관은 교육기관에서 50km 이내에 위치해야 한다는 지침 역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취재파일]'코리안 드림' 베트남 기술연수생,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다](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816/202101353_1280.jpg)
용접도 한국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서 투입된 현장, 일하다 다치기 일쑤였고 약속 받았던 월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학교로 돌아가 교육을 받고 싶다고 사정하면 "이탈하면 비자를 취소하겠다"는 직업학교 관계자의 협박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비자를 취소하고 업무방해로 고소까지 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지자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이 밖에도 해당 직업학교는 기술연수생들에게 체류 기간을 연장해 주겠단 명목으로 6개월 치 교육비를 받아간 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 여권과 신분증도 돌려주지 않아 일부 연수생들은 졸지에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됐습니다.
가까스로 공장을 탈출한 두 청년을 국내 활동가들이 도왔고 최근 여성가족부 산하 중앙인신매매 피해자 보호기관은 이들을 노동 착취에 따른 인신매매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정부는 2023년부터 노동력 착취도 인신매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거 인신매매라고 하면 보통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만을 뜻했는데, 법이 바뀌면서 이제는 노동력이나 성을 착취하는 것도 인신매매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현재 이들과 같은 비자로 입국한 다른 베트남 기술 연수생 7명도 인신매매 피해 구제 절차를 준비 중입니다.
기술연수생 비자 이면엔…이탈 보증금 받고 노동 착취
![[취재파일]'코리안 드림' 베트남 기술연수생,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다](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816/202101350_1280.jpg)
사건을 취재하면서 문제가 된 직업학교를 찾아가봤습니다. 돌아온 건 "우린 모르는 일이다. (직업 교육을 우리에게 위탁한) 재단법인에다 물어보라"는 답이었습니다. 재단도 찾아가봤습니다. 재단 또한 "우린 행정 업무만 한다, 직업 학교나 연수생들을 직접 관리한 브로커 탓"이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재단 측과 계약을 맺고 연수생들을 관리해온 브로커도 "모두 상호 협의 하에 진행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결국 '직업능력훈련개발법인-직업학교-브로커'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연수생들은 착취당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의 기술연수생 노동 착취가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단 겁니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에 따르면 통영, 그리고 서울의 직업학교 등에서도 유사한 피해 사례가 벌써 여럿 보고됐습니다. 외국의 청년들을 초청해 한국의 기술을 가르쳐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D-4-6 기술연수생 비자, 그 이면에는 거액의 입국 비용과 이탈보증금을 받고 민간 인력업체가 사람 장사를 해 돈벌이하는 시장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직업학교 교육 환경과 임금, 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실태 조사와 관리 감독이 필요해 보이는데, 아직은 사각지대에 있는 듯합니다. 법무부는 D-4-6 기술연수생 비자를 설계해 시행하고 있고, 해당 직업학교는 고용노동부 지정 직업훈련시설입니다. 법무부 측은 "사설교육기관의 부실한 교육 진행 등이 확인되면 사증발급인정서 발급이나 체류 허가는 제한할 수 있으나, 유효한 사증으로 입국한 외국인 연수생과 연수 기관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적 계약 사항에 대해서까지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노동부 측도 "직업훈련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은 국비로 운영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한해서 진행되고 있다"며 "해당 직업훈련은 이와 상관 없이 따로 브로커를 끼고 시킨 것이고, 기술연수생 비자 업무도 법무부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애매한 부분이 있고 사적 계약 관계까지 일일이 확인하긴 현실적으로 힘들단 겁니다.
"강제 노동, 국제 제재 강화 추세"…대책 마련 나서야
![[취재파일]'코리안 드림' 베트남 기술연수생,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다](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816/202101352_1280.jpg)
강제 노동, 그리고 인신매매 피해자 공식 인정은 생각보다 국제사회에서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안입니다. 올 초 미국 정부가 전남 신안 태평염전 소금을 '강제노동 상품'이라며 수입 금지하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계절노동자에 대해서도 실태 조사에 나선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이탈리아 계열사 로로피아나가 중국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주고 노동착취를 시킨 정황이 드러나 이탈리아 법원의 사법 관리 대상이 된 사례도 있습니다. 공급망 하단부에서 발생한 노동착취 문제가 국제적인 제재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최근 국제적으로 기업 공급망에서의 강제 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수입 금지 조치가 중요하단 인식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이번 베트남 기술연수생 사례는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강제 노동을 한 건데 그렇게 만들어진 배가 미국으로 수출된다 하면 수출 금지 가능성이 생기게 되는 셈"이라고 부연했습니다. 특히 기술연수생 사안의 경우, 인신매매의 지표가 되는 입국 전 과도한 입국 수수료와 이탈보증금 납부 문제까지 얽혀 있는 만큼 관계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