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극장의 첫 동양인 종신 오페라 코치인 피아니스트 김정운 씨는 라 스칼라 아카데미에서는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물론이고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오페라까지 섭렵하며 성악가들에게 노래의 음정과 박자, 딕션부터 가사의 미세한 뉘앙스까지 지도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코치는 무대에 오르지 않을 뿐, 오페라 제작의 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오페라 코치 김정운 씨를 만나보세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제가 졸업한 건 마에스트로 콜라보라토레, 오페라 코치 과정인데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성악하는 아이들이에요. 기본적으로 음정, 박자, 딕션, 음악적인 것, 일반 음악 코치들이 하는 것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김수현 기자 : 오페라 코치가 성악가들한테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하는 거잖아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프레이징 하는 거라든지, 딕션을 이렇게 하라든지, 다이내믹을 좀 더 살리라든지, 크레셴도· 디미누엔도 하라고 한다든지. CD를 듣거나 옛날 가수들을 듣고 익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악보를 보면서 정확하게 공부하는 거에 익숙하신 분들은 많지 않아요. 발성을 신경 쓰다 보면 음정, 박자를 지키기가 어렵거든요. 그런 것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카덴차를 불러'라고 알려준다든지 발음 틀리면 발음을 알려준다든지, 그런 식으로 가르치죠.
김수현 기자 : 어찌 보면 이탈리아어를 이탈리아 본토 사람보다 더 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그런 부담이 있죠.
김수현 기자 : 내가 외국인인데 '이탈리아어 발음 그렇게 하면 안 돼' 하는 거잖아요. 특히 노래할 때.
피아니스트 김정운 : 바로 그겁니다. 처음에 들어온 아이들은 저를 보고 아마 '뭐야 이 동양인 여자' 했을 거예요. 근데 저희 피아니스트 과정이 2년 과정, 가수 과정도 2년 과정으로 한 해씩 번갈아 하다 보니까, 제가 첫해 맡았던 학생들은 같이 학생으로 만났다가 제가 갑자기 선생님이 된 경우여서 저를 다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아는 거 위주로 얘기하고, 음정 틀렸다든지 가사를 더 뒤에 붙여야 된다든지, 그런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었고요.
제가 아는 게 없으니까 처음에는 가르치는 게 많이 힘들었는데, 외부 극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니까 보이는 게 다르고 경험이 쌓여서 가르칠 게 많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가르치는 게 조금 더 수월해졌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죠.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가르치나' 이런 느낌.
김수현 기자 : 이탈리아어는 평소에 말하는 것과 노래할 때는 발음을 다르게 해야 된다든지 신경 써야 된다든지?
피아니스트 김정운 : 이탈리아어는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가는 편이에요. 노래할 때는 더 과장해야 되기도 하는데, 말하는 발음과 노래하는 발음은 프랑스어가 많이 다른 걸로 알고 있고, 이탈리아어는 웬만하면 적힌 그대로 클리어하게 읽어주면 가능하긴 한데.
오래 살다 보니까 알게 된 게, 처음에는 읽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개음이 있고 폐음이 있고 모음이 열린 것도 있고 닫힌 것도 있는 등 이탈리아 표준어의 음성학 법칙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몰라서 못 가르쳤는데 공부해서 가르치게 되고, 극장에서 계속 활동하다 보니까 지휘자들 만나서 배우면서 예전보다는 더 다양하게 가르치게 된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이니까 이탈리아 오페라를 제일 많이 하겠지만 독일어 오페라도 있고 프랑스어 오페라도 있고 많잖아요. 그런 경우에도 다 오페라 코치를 하세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저희 극장에 합격하기 전 오스트리아에서 3~4 시즌 정도를 하면서 바그너 오페라를 다 했었어요. 그래서 리허설 할 수 있을 정도의 독일어를 익히게 됐죠. 유학 가기 전에 독일어를 조금 공부했었던 것도 있고.
그리고 프랑스 오페라의 프롬프터를 하면서 프랑스어는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있고, 얼마 전에 러시아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반주를 하기 위해서 러시아어 공부도 조금 했었고요. 다양한 언어를 공부해야 되는. 모르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알면 접근이 좀 더 쉬워진다고 해야 되나.
김수현 기자 : 모르고 가르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보이는 대로 읽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들 괜찮아요. 근데 제가 있는 토리노는 프랑스와 붙어 있는 피에몬테 주여서 프랑스어를 영어보다 훨씬 더 잘하는 동네예요. 웬만한 프랑스어는 다 알아듣고, 저는 몇 안 되는 못 알아듣는 사람 중 한 명이더라고요. 얼마 전에 프랑스 오페라를 하는데, 심지어 제 역할이 프롬프터였거든요.
김수현 기자 : 가사를 계속 알려줘야 되잖아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지휘자 프랑스인, 가수 프랑스인과 프랑스어 쓰는 캐나다인. 프로덕션 전체 스물몇 명 중에서 영어와 이탈리아어만 되는 사람이 5명 정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저였던 거예요. 충격받아서 계속 발음 공부해서 결국 마지막에는 무리 없이 하긴 했는데.
김수현 기자 : 그러면 가사가 다 머릿속에 있어야 돼요? 아니면 대본을 놓고 읽어주는 거죠?
피아니스트 김정운 : 악보를 보면서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외워서 부르지만 저는 안 보이는 곳에서 관객석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약한 불을 켜놓고 모니터 켜놓고 프롬프터를 하는 거죠.
김수현 기자 : 읽는다고 해도 어쨌든 머릿속에 웬만큼 오페라의 윤곽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무한 반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요. 제일 어려운 거는 위치가 계속 바뀌어요. 가수가 여기로 움직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다른 데 가 있기 때문에 실수로 다른 위치를 주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리허설 하면서 그 사람 위치를 적어요.
그리고 자주 틀리는 곳을 체크해서 무조건 큐를 줘야 되는 부분이 있고, 프롬프터에 익숙한 분은 프롬프터를 먼저 쳐주면 좋아하는데 프롬프터에 익숙하지 않은 국적의 가수는 입 모양으로 보여주는 게 더 도움이 돼서 가수마다 또 달라요. 오페라마다 다르고 가수마다 다르고. '절대로 나 쳐다보지 마. 나는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런 가수도 있어요.
김수현 기자 : 이중창, 삼중창 되면 어떻게 돼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그러니까 정신이 없죠. 쳐다보고 있다가 움직이면 화살표를 적는다든지 빨간 펜으로 '여기는 어디에 큐를 줘라'라는 식으로 적어서 하기도 해요. 몇 번 하다 보면 동선이 파악되고, 갑자기 점핑해서 들어오지 않는 이상 동선이 거의 안 바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어쨌든 다 음악은 아셔야 되는 거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