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극장의 첫 동양인 오페라 코치이며, 라 스칼라 아카데미 유일의 한국인 교수인 피아니스트 김정운 씨를 만나봅니다. 리허설 피아노 반주와 성악가 지도, 연습 지휘, 무대 큐 사인, 프롬프터까지, 오페라 코치는 오페라 극장을 움직이는 '숨은 손'이죠.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는 오페라 코치 김정운 씨와 함께, 피아니스트이면서 노래까지 해야 하는 오페라 코치의 세계를 만나보세요.
김수현 기자 : 오페라 코치가 뭔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협업을 하는 사람, 콜라보라레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피아니스트 김정운 : 마에스트로 콜라보라토레가 무엇인가. 공연이 이루어지면 우리가 보는 사람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과 가수들이지만, 무대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있거든요. 의상 하는 사람, 조명하는 사람, 분장하는 사람처럼 저희는 오페라 리허설 시작되는 순간부터 피아노를 쳐요.
지휘자와 가수가 처음 만나서 프로바 무지칼레라고 하는 리허설을 하면, 피아노를 위해서 작곡된 오페라는 없어요. 다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작곡돼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피아노를 위해 리덕션 된 걸 치면서 오케스트라와 할 수 있을 법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리허설부터 시작하고요.
음악 리허설이 끝나면 연출자가 연기 연습을 시키거든요. 말하자면 주크박스 역할이죠. '몇 마디부터 합시다' 하면 '네' 하고 그런 식으로. 리허설에 지휘자가 실제로 있기도 하고, 보통 지휘자들이 바빠서 프로바 무지칼레 음악 연습하고 다른 데 갔다 와요. 지휘자가 연습하고 성악가, 연출가와 일하다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나서, 오케스트라가 따로 연습을 해 와서 합쳐지면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되는 거죠. 독일 극장은 거기까지 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근데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이탈리아 극장은 실제 공연 때 무대 뒤에서 합창단원이나 가수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큐 사인을 주기도 하고, 악보를 보면서 어느 마디에 정확하게 들어가야 될지, 왜냐하면 연출가들이 어느 타이밍에 딱 나오는 걸 원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가수들 큐를 주거나 무대 장치 움직이는 사람한테 큐를 줘서 정확하게 어느 순간에 움직이게 한다든가, 조명 기사한테 큐를 준다든가 그런 것도 하고요.
김수현 기자 : 감독을 도와주는 역할?
피아니스트 김정운 : 예, 그것도 하고 인사이드 뮤직, 그러니까 무대 뒤 음악을 연주할 때 지휘하기도 하고 연주하기도 하고, 오르간을 무대 뒤에서 치기도 하고, 정말 잡다한 모든 역할을 다 하거든요. 오케스트라 안에서 첼레스타 같은 특수 악기를 치기도 하고. 아직 저희 토리노 극장에 남아 있는데 프롬프터 역할, 스칼라랑 저희 극장이랑 몇 안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병희 아나운서 : 프롬프터 역할이라는 게 어떤 거예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무대와 오케스트라의 안 보이는 사이에 조그마한 집처럼 만들어 놨어요. 딱 한 사람 들어갈 수 있을 사이즈로. 거기 들어가서 가사를 먼저 쳐주는 거예요.
연기를 하다 보면 오케스트라를 잘 못 보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음악이 어그러지거든요. 그럴 때 저희가 박자를 쳐준다든지, 가사 까먹으면 저를 쳐다봐요. '나 가사 줘' 그러면 가사 쳐주고. 까먹으면 제 입을 보고 하는 거예요.
김수현 기자 : 프롬프터 하실 때도 박자를 맞추고 계시던데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그렇죠. 왜냐하면 지휘와 오케스트라 연주가 다른 경우가 있어요. 지휘자가 잘 이끌고 좋은 분이면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딱 붙어 있거든요. 근데 몇 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오케스트라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가요. 그러면 실제로 보는 것과 들리는 것과 사운드가 완전 다르죠.
그래서 제가 모니터를 오른쪽에, 악보를 여기에 놓고 들으면서 '기다려' 주고, 느리면 '빠르게', 빠르면 '천천히', 이런 식으로 큐를 하는 거죠. 음정 떨어졌으면 이렇게 하고, 높으면 이렇게 하고.
김수현 기자 : 너무 중요한 역할인데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이렇게 잘 가자, 이런 느낌으로.
김수현 기자 : 모든 걸 다 거의...
피아니스트 김정운 : 모든 것까지는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면에서는 전혀 안 보이는데 흥분하면 손이 나오긴 해요, 너무 엉망이 됐을 경우. 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존재이긴 하죠. 근데 있으면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지휘자들이 다들 '너희 극장에 아직 이 시스템이 남아 있어?'라고 묻기도 해요.

김수현 기자 : 요즘은 거의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네,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다른 극장은 잘 모르지만.
이병희 아나운서 : 왜 없어지는 거예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돈 아끼려고. 그리고 연출자들이 싫어해요. 무대를 깨끗하게 밀고 다른 걸 설치해야 되는데 저희 앞에 뭐가 설치돼 있으면 가수 시야 방해 되니까, 그런 것 때문에 많이 싸우거든요. 연출가들이 싫어해서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말로만 듣던 그 프롬프터를 지금 하고 계시고.
피아니스트 김정운 : 네. 그것도 합니다. 무대에 불이 밝아지면 그제야 불을 켜고 하죠. 여기서 가수랑 눈이 마주치니까...
이병희 아나운서 : 아주 환하게 웃으시네요. 옆에 지휘자 화면이 있고
김수현 기자 : 그거랑 맞춰야 되니까
이병희 아나운서 : 입 모양으로 노래를 하시는
피아니스트 김정운 : 네. 저한테 와서 '난 네 입만 보고 있어' 하는 가수들과 합창단원들이 있었어요. 이 지휘자가 굉장했거든요.
김수현 기자 : 가장 바쁘겠어요. 성악가들은 오히려 자기 역할 아닌 사람들은 좀 쉬잖아요. 근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하셔야 되는 거예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간주할 때 너무 좋습니다. 그때 휴대폰 보고 (웃음)
김수현 기자 : 노래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가사를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내용에 따라서 표정도 달라질 것 같아요. 연기하듯이.
피아니스트 김정운 : 맞아요. 실제로 웃는 표정 하다 보면 하게 돼요. 예를 들어 키스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렇게 한다든지 하면, 보고 직관적으로 알아들으니까. 그런 식으로 하면 굉장히 빨리 알아들어요.
그리고 무대가 굉장히 덥거든요. 조명 쏘고, 덩치가 크거나 옷도 두껍고, 옛날 옷들을 잘 차려입으면 많이 덥거든요. 가발에 모자도 쓰잖아요. 땀 뻘뻘 흘리고 하다 보면 정신이 나가요. 그러면 완벽하게 하던 사람도 가사를 갑자기 까먹기도 하거든요. 평소에 한 번도 안 틀렸으니까 편안하게 듣고 있다가 갑자기 틀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놀라서 가사 쳐준다든지. 절대 안 틀리던 사람도 틀리게 되는 게 본방이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굉장히 입을 정확하게...
피아니스트 김정운 :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살 빠질 것 같은데.
피아니스트 김정운 : 한 번 하고 나면 아파요.
김수현 기자 : 그렇죠. 이걸 하면서 노래하시는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실제로 하다가 노래를 완전 틀리면 저희가 노래를 하기도 해요. '나(의 노래) 듣고 너희가 해라' 이런 느낌으로. 제일 끝 좌석에 앉아 있어도 프롬프터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요. 완전 어그러지면 제스처 하다가 안 되면 부르기도 해요. 저도 공연 때 부른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럼 노래도 잘해야 되겠네요.
피아니스트 김정운 : 이 직업은 무조건 노래를 할 줄 알아야 해요. 일단 시험에 노래가 같이 있어요. 피아노 치고 노래를 하는 시험이에요.
김수현 기자 : 진짜 만능으로 다 하셔야 되는 거네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