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 시 행동요령을 재치 있게 설명하는 영상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괴상한 선글라스를 쓴 채 벤치 위에 올라선 소방관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소방관 삼촌, 누구의 사주로 이런 영상을 찍는 것이냐"는 물음에 소방관은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는 답합니다.
"더 위다."
이어 야외활동 자제·통풍 잘 되는 옷 입기 등 '더위' 관련 행동요령이 5초간 떠오르며 영상이 끝납니다. (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 조회수 52만 회)
공공기관의 유쾌한 홍보 콘텐츠가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에서 탈피한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도 청년세대에서 유행하는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과 형식을 적극 차용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2021년 11월 개설된 '소방관 삼촌'(@sobang_uncle)은 충북소방본부 안전체험관 소속 안전체험교관인 나경진 소방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입니다.
다양한 분장과 밈을 활용해 안전 정보를 유쾌하게 전달합니다.
지난해 10월 게시한 '노래로 배우는 아파트 화재 발생 시 행동요령'에서 나 소방교는 가발을 뒤집어쓰고 헤비메탈 가수로 변신했습니다.
조회수 36만 회를 넘긴 이 영상 속 노래의 가사에는 '집으로 연기가 밀려오면 빠르게 대피해', '창문에 손 흔들며 구조를 기다려' 등 아파트 화재 시 행동요령이 포함됐습니다.
이에 "솔직히 정부에서 만드는 노래보다 훨씬 친화적이다", "요즘 공공기관 채용 컷 말도 안 되게 높아졌네" 등의 호평이 달렸습니다.
나 소방교는 지난 7일 서면 인터뷰에서 "현장에 출동하며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를 많이 목격하고는 안전에 대한 관심 제고를 고민했다"며 "충주시 김선태 주무관의 영상을 보며 안전과 소방조직 홍보에 대한 콘텐츠도 재밌고 트렌디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채널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안전교육은 의무라고 생각해 많은 이들이 지루해하거나 다 아는 내용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같은 내용이라도 재미있고 찾아보고 싶은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습니다.
2015년 개설돼 구독자 12만 명을 보유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유튜브 홍보 채널인 '코레일TV'(@korail_official)도 꾸준히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영상을 게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4일 게시돼 약 690만 조회수를 기록한 '의외로 부정승차인 것?'은 음성 TTS(텍스트-음성 합성), AI 사진, 밈 등을 활용해 표 없이 탑승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와 함께, 표를 무더기로 구매하고 취소하는 등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올해부터 부가운임이 증가한다는 내용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에 "이게 공식 채널이라고요? 양산형 쇼츠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했네"(o_o***)·"공식 채널인데 깜박 속았다"(그레***)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양산형 쇼츠는 특정한 양식과 유혹적인 제목, AI 등을 사용해 클릭을 유도하는 숏폼 영상을 주로 통칭합니다.
홍원우 코레일 SNS팀장은 8일 전화통화에서 "코레일 TV의 영상을 차별화하고 빠르게 국민께 정보를 알리고자 '양산형 쇼츠' 스타일을 도입했다"며 "그동안은 빛을 덜 보았던 해당 스타일 영상이 최근 높은 조회수를 얻으며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알려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재미와 함께 국민께서 알면 유익한 정보와 꿀팁을 소재로 삼고 있다"며 "'좋은 정보를 빨리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널리 알릴 수 있을까'를 수도 없이 고민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울주군은 홍보 분야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6일 울주배를 홍보하기 위해 '이번 추석 선물 고민 중이라면? 울주배가 정답!'이라는 제목으로 울주군 공식 인스타그램(@ulju_love)에 게시된 릴스 영상은 1천500만 조회수를 넘겼습니다.
울주 배를 한 입 베어 물자 온몸이 과즙으로 흠뻑 젖어버리는 연출된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렵기로 유명한 게임 '게팅 오버 잇 위드 베넷 포디'(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속 주인공이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다는 점을 패러디하기도 했습니다.
울주군청 홍보팀 소속 정확석 주무관이 직접 상반신을 벗고 옹기 안에 들어가 울산 옹기 축제를 홍보하는 '(원조) 한국판 퉁퉁퉁 사후르'를 지난 4월 27일 울주군 공식 유튜브 채널(@uljugun)에 게시해 조회수 80만 회를 넘겼습니다.
누리꾼 'ili***'는 "옹기 축제가 있다는 걸 확실히 각인시키고 울주가 울산인 걸 처음 알았다"며 "두 가지만으로도 할 일을 다한 홍보다"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2020년부터 유튜브 운영을 맡아온 정 주무관은 "공무원이 직접 망가지기도 하며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미지를 깨고 홍보도 하고 싶었다"며 "'옹기맨' 아이디어를 촬영감독으로부터 제안받았을 때 이건 울산 옹기축제가 아니면 시도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탈의도 불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홍보의 역할은 울주군을 알리는 것인데 이번 기회에 울주군을 전국에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습니다.
동물을 적극 활용하기도 합니다.
관세청 공식 유튜브 채널(@대한민국관세청)은 올해 엑스(X·구 트위터) 등지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짤' 속 유행어를 적극적으로 채용한 썸네일과 마약 탐지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담은 '킁킁로그' 시리즈로 인기입니다.
지난 6월 4일 게시된 'This cutie is 마약 탐지견'과 지난달 11일 게시된 '긴장감 MAX! 생후 1년 탐지견들의 생애 첫 평가! [킁킁로그 EP.2]'는 한두 달 만에 각각 조회수 40만~50만 회를 넘어섰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대변인이 나섰습니다.
전한영 농식품부 대변인은 세계적으로 히트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인물로 분장해 극 중 곡 '소다팝'에 맞춰 춤을 추며 9~10일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식량안보 장관회의를 홍보했습니다.
지난 5일 게시된 해당 영상은 농식품부 공식 유튜브와 인스타그램(@nong_ru_wahhhhh)에서 8일 현재 각각 조회수 5만 회와 3만 회를 넘겼습니다.
"전에는 찾아볼 일도 없었는데 찾아보게 된다"(유튜브 이용자 '노***')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틀을 깨는' 공공기관 홍보의 원조 격인 충주시 유튜브 채널(@Chungjusi)도 건재합니다.
2019년 4월 개설된 이 채널은 올해 3월 구독자 80만을 돌파하고 현재는 87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 지난달 29일 '호우, 이대로 좋은가?'에서 폭우 현장으로 달려가 하수구를 막은 쓰레기에 따른 배수 문제를 짚고 공무원들의 피해 복구를 위한 노력을 조명한 영상은 조회수 116만여 회를 기록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홍보 전담도 있지만, 본래 업무와 병행하며 영상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울주군청 정 주무관은 "유튜브 운영과 공문 기안·품의 등 행정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며 "행정업무는 기한을 미룰 수 없는 만큼 유튜브 영상 제작에만 집중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옹기맨을 보고 울주군 유튜브로 유입된 많은 구독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울주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계속 영상 업무를 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밝혔습니다.
충북소방본부 나 소방교는 "홍보 담당자가 아닌 만큼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나 소품 등을 모두 사비로 지출한다"며 "촬영에 필요한 차량이나 장비가 있을 때 협조를 빠르게 구하기 어려운 고충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영상을 만들면서 항상 민원의 소지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나 소방교는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영상을 재미있게 보고 안전에 관한 내용을 알아간다고 말씀해 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이다"며 "지금처럼 재미있는 안전·소방 조직 관련 홍보 영상을 오래 만들고, 언젠가는 공식적인 소방 홍보 활동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코레일 홍 팀장은 "초창기에는 '공공기관의 영상이 왜 그렇냐', '유튜버와 뭐가 다르냐'며 품격에 대한 비판이 내외적으로 일기도 했다"면서도 "품격은 딱딱하고 근엄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에게 사랑받고 관심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수없이 감수를 진행한다"며 "지하철·기차 등 코레일만큼 국민과 밀접한 곳은 많이 없는 만큼 코레일TV를 통해 더욱 가깝게 소통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유튜브 '소방관 삼촌'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