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것으로 추정하는 태극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서울 종로구 소재 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을 개막했습니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태극기와 함께 걸은 긴 여정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장면, 기억해야 할 마음을 되새기고자 기획한 전시"라고 소개했습니다.
전시장에서 다양한 태극기가 관람객 시선을 끌었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강렬한 열망이 담긴 '독립'의 상징부터 히말라야 마칼루 정상에 꽂은 깃발까지 태극기와 관련 자료 210여 점을 모았습니다.
전시는 1945년 광복 직후의 희망을 노래하며 시작됩니다.
그해 12월에 펴낸 '해방기념시집' 속 김달진(1907∼1989)의 시 '아침'은 "집집마다 추녀 끝에 태극기가 나부낀다 / 거리마다 지축을 울리는 함성"이라고 노래합니다.
박물관 측은 "태극기는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을 넘어 우리를 이어주고, 역사를 기억하게 하며, 마음을 모으게 해주는 '함께의 기호'"라고 설명했습니다.
125년 전 이역만리에서 세계인과 만났을 옛 태극기도 눈길을 끕니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이 소장한 태극기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 소개됐습니다.
19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태극기는 1990년대 국립문화유산연구원(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이 해외의 한국 문화유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파악됐습니다.
파리 중심가에 있는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은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53∼1922), 탐험가 샤를 바라(1842∼1893) 등이 한국에서 수집한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이도원 학예연구사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던 태극기로 추정된다"며 "오늘날과 달리 태극기의 4괘를 푸른색으로 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람객들은 1900년 박람회 당시 '대한제국관'에 전시했던 향로,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기메박물관에 기증한 삼층탁자장과 함께 태극기를 볼 수 있습니다.

태극기에 담긴 저마다의 사연도 흥미로운데, 근대식 군함인 광제호(光濟號)에 게양됐던 '광제호 태극기'는 1910년 8월 29일 국권피탈을 하루 앞두고 함장인 신순성(1878∼1944)이 내린 뒤 남몰래 보관한 것입니다.
그의 손자 신용석 씨는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의 당부로 태극기를 1년에 한 번씩 햇빛에 말리시며 소중하게 보존해 오셨다고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1908년 동덕여자의숙 개교 당시 교정에 걸렸던 태극기는 상자에 담아 장롱과 장독대 밑에 숨긴 덕분에 3·1운동 직후 일제의 수색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형 불화를 보관하는 상자 깊숙이 숨겨둔 전남 장성군 백양사의 태극기,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찍어내기 위해 쓴 것으로 알려진 목판 등도 공개됐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함께한 태극기 3점도 관람객을 맞이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의회(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붕준(1888∼1950) 일가가 보관해 온 태극기는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들었다고 합니다.
박물관 3층 전시실을 모두 활용한 특별전에서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 여러 태극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주한 한인들이 정착한 '명동촌'에서 쓴 태극 문양 기와, 6·25전쟁에 참전하는 장병들이 조국 수호를 맹세하며 서명한 태극기 등을 선보였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 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1953∼1982) 열사의 관을 덮은 태극기는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1945년 열린 '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에서 태극기를 든 채 눈물 흘리는 손기정(1912∼2002) 선수를 포착한 사진 등 다양한 자료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한수 관장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세계인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 태극기에 담긴 기억을 나누며 우리가 지닌 힘과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전시는 11월 16일까지 열립니다.
(사진=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제공, 연합뉴스)